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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킬번댁 Jan 31. 2021

짐작할 수 없는 마음.

효녀 코스프레는 오늘로서 끝이예요.

알파마 지구를 구성하는 일곱 개의 언덕은 리스본에서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그중 언덕을 오르는 길 사이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골목과 그 골목을 채우고 있는 개성 있는 타일과 아줄레주는 특히나 아름다워 리스본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둘러봐야 할 감성 여행지중 하나인데 어찌나 유명세를 탔던지 식사 시간이 넘어가는 중에도 언덕과 골목은 사람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답다고 소문난 곳을, 어떤 언덕이든 그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리스본 전경은 몹시도 경이로워 여행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하다는 그곳을 지금 우린 생수를 사기 위해 오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남들은 낭만을 찾아 오르는 그곳을 나는 현실의 목마름을 충족시키기 위해 오르며 낭만 따위 집어 치고 뭔 놈의 나라가 슈퍼마켓까지 언덕 꼭대기에 냐며 욕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짐꾼을 자처한 아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그깟 생수 몇 병 사러가는 길이 이렇게 고되고 험한지 모르겠다며 구시렁거리신다. 35도가 넘는 뙤약 빛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눈을 찡그리며 힘겹게 걷는 아빠가 안쓰러워 그러길래 숙소에 계시지 굳이 따라오셨냐고 잔소리를 하자 "아 이 녀석아! 너보다는 아부지가 힘이 더 세잖아. 무거운 물을 어찌 들고 오려고 그래?" 하신다.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다 큰 딸을 환갑이 훌쩍 넘은 아버지가 챙기는 모습이 아이러니해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아버지 부심이 대단하시다고 놀리자 아빠는 늘 그렇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툭툭 치신다.

까불지 말라는 뜻인지, 걱정하지 말라는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아빠의 그런 배려는 언제나 든든하니 기분이 좋다.



앞서 걷던 아빠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섰다. 

그리고는 언덕 한편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골동품 가게 유리창 앞을 서성이더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심호흡을 하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아빠의 느닷없는 돌출 행동은 정신적, 경제적으로 버거운 결과를 동반하는 것을 알기에 (이를 제지하고자) 빠르게 아빠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매캐한 향내가 코를 자극하며 들어왔다.


가게 안은 동양과 서양, 출처를 알 수 없는 에서 들여왔음직한 물건들로 들어 있었다.

크리스탈로 만든 해골 모형 옆에 코끼리 조각의 조합과 칠이 벗겨진 타일 조각을 엮어 만든 냄비 받침과 철제 조형물이 기괴한 모습으로 놓여있었고, 내 머리 크기보다 커다란 부처님 얼굴을 한 두상이 가게 중앙에 놓여있었다.


한마디로 앤틱이라고 말하지만 한눈에도 싸구려 느낌이 나는 조악한 물건들이 가게 안에 가득했다. 뜬금없이 이런 곳에 들어온 아빠를 이해하기에 앞서 이곳에 오래 머물다가는 쓰레기를 돈 주고 사게 될 것만 같아 서둘러 나가려는데 어랏? 아빠가 이상하다.


평소엔 기념품이라도 살라치면 '뭐 그런 쓸데없는걸 사냐'며 지나쳐 걷기에 바쁜 아빠였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찬찬히 가게를 둘러보시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검정 융단이 깔린 상자 위에 어지럽게 여있는 카메오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레 손에 쥐며 가격을 물었다.


"아빠! 이걸 왜 사게. 이거 딱 봐도 가짜야. 이거 진짜 사고 싶어 그러시는 거야?"


"어.... 그게 말이다. 니 엄마한테 선물하나 주고 싶어서 그래..... 아버지가 지금까지 니 엄마 선물 한번 제대로 못해줬잖냐.... 돈은 한국 가면 현금으로 줄테니까 지금은 니가 대신 계산해줘라."


"아이고... 아빠! 뭐야.... 여기 온 이유가 엄마 때문이었어? 엄마는 이런 거 싫어해. 아빠는 아직까지 엄마 취향도 모르면 어떻게 해? 평소엔 엄마 부려먹는데 1등 공신 이면서 이런 거 선물하면 엄마가 좋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망한 듯 고개를 숙이는 아빠가 보였다. 아차차.... 실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우리 엄마 말마따나) 말을  멋대가리 없이 한다. 모른 척 아빠 말에 동조할 수도 있는 것을 꼭 그렇게 뾰족한 한마디를 뱉고야 마는지. 아니나 다를까 네 말이 다 맞다 고개를 끄덕인 아빠가 이내 축 처진 어깨를 하고는 말없이 가게를 나가셨다.



생수를 사고 숙소로 돌아오는 그 얼마간 아빠는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혹시 삐지셨나? 싶어 아빠의 얼굴을 힐끔 바라봤지만 어째 오늘은 아빠의 기분이 짐작이 안된다. 어찌해야 하나 싶어 눈치만 보고 있는데 아빠가 조심스럽게 입을 떼시며 말씀하신다. 


"내일 말이다. 니 엄마랑 데이트 줌 하려고 하는데, 니 생각은 어떠냐?"


"데이트? 뭔 데이트? 엄마랑? 둘이서? 어디서? 아니 왜?"


"아! 이 녀석아 왜긴 왜야? 니 엄마랑 둘이 오붓한 시간 보내고 싶어서 그렇지. 생각해봐라. 내가 그동안 니 엄마 고생이나 시켰지 호강 한번 시켜준 적 없잖냐. 모레면 집으로 가는데 가기 전에 너만 괜찮다면 단 얼마간이래도 엄마랑 추억 만들고 싶어 그러지. 자식이 아무리 잘해도 남편 사랑에 비하겠냐? 이왕이면 선물도 주려고 했는데. 그거 가짜라고 하니 니 엄마한테 가짜를 줄 수는 없고. 아무튼, 허허."


아빤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더니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아니 이 애절함 돋다가 뜬금포 터지는 계획은 대체 뭔가. 우리 아빠, 나이 들고 호랑이 기운 쑥 빠지더니 진짜 로맨티시스트 되신 거야?


아빠의 순수한 소년 같은 모습이 대견해 보여 어떠한 계획이든 확실히 밀어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데 입이 어찌나 간질 거리는지. 진이 빠졌다. 하지만 내 경솔함으로 아빠의 원대한 계획을 망칠 수는 없는 .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고 있는데 수상함을 눈치챈 엄마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너..... 이상해. 아까 니 아빠랑 나갔을 때 둘이 사고 치고 들어왔지? 시간도 이른데 벌써 잔다고 누운 니 아빠도 이상하고 저녁 먹을 때부터 실실거리는 너도 이상하고.. 또 뭔 사건을 꾸미길래 그래? "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면 분명 입 밖으로 분비물을 쏟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참아야 하느니라. 모른척해야 하느니라. 목소리를 가다듬고 표정을 관리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엄마에게 되물었다.


"엄마! 엄마는 아빠랑 결혼해서 행복 ㅎ?"


" 아니! 후회해!!"


"(잠시 침묵) 에이.. 엄만 무슨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대답을 해? 음.... 엄마는 아빠랑 다음 생에도 결혼할 거야?"


"얘가 무슨 귀신 똥 따리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누가 누구랑 다시 결혼을 해?! 나보고 다음 도 니 아빠 만나 그 고생을 다시 하고 살라는 거야? 어이구! 야야! 아무리 니 아빠라지만 뭔 무서운 소리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행여 그런 일 생길까 겁나니까 말도 꺼내지 마. 맘 같아선 이 결혼도 물리고 싶은데 니들 봐서 참고 사는 거야!"


악! 단전 깊숙한 곳에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아빠의 꼰대 마인드에 질력이나 황혼 이혼 카드를 거침없이 꺼내신 분 아니었던가. 그런 분에게 낯선 이국땅에서 그것도 아빠와 두 손 잡고 둘만의 로맨틱한 데이트를 하라고 하면.... 당연히 좋아할 리 없는데.


그제야 아빠의 로맨틱한 계획에 빠져 정작 중요한 당사자의 마음을 놓친 사실이 떠올랐다.

'아.. 대박!! 망했다.'


지금 우린 산 조르제 성 입구로 들어가는 아치형 문 아래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뜨거운 태양을 등에이고 서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랑 니 아빠만 여길 갔다 오라는 거야? 아니! 너는 그럼 어쩌고? 그럼 윤이만 같이 보내지 뭘 복잡하게 팀을 나눠! 나누길!"


어설픈 거짓말을 했다. 아빠의 계획을 엄마에게 설명하면 분명 화내며 도망치실게 뻔했으니 끝까지 비밀에 부쳐야만 했다.


"어! 엄마.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 이기도 하니까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그래.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엄마 아빠 수발드느라 나도 힘들었단 말이야. 나를 위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그때였다. 날 보는 엄마의 싸늘한 눈빛에 번쩍! 섬광이 일었다. ( 진짜다! 진짜 봤다! )


"이노무 기지배. 너 니 아빠랑 또 작당했지? 어제 이상하다 싶었어!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야! 왜 사람 몰래 작당을 하고 그래? 뭐 좋은 게 있다고? "


" 아이고.. 이 사람아.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얘는 잘못 없어. 내가 부탁했어, 내가! 당신 호강시켜준다고 데려와 놓고 결혼 내내 고생이나 시켰지 어디 한 번을 맘 편히 해줬나? 이러고 한국 들어가면 우리 처지에 또 언제 여행을 갈까 싶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에 뭐라도 주고 싶은데 여기서 살건 없고. 그래서 어차피 하기로 한 관광 당신하고 둘이 보내고 싶어 그런 거지. 그리고 또..."


아빠의 떨리는 목소리 틈새에 엄마의 맹공격이 떨어졌다. 겁을 잔뜩 드신 아빠가 보인다. 하지만 난 안다. 앞으로 몇 분 뒤, 늘 그래 왔듯 엄마는 아빠의 계획을 눈감고 따라 줄 것이고,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아빠의 기분을 맞춰 줄게 분명하니 이럴 땐 잠시 참아야 하느니라.



알파마 지구에 있는 상 조르제 성 (Castelo de Sao Jorge)은 리스본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로마인의 흔적이 담긴 요충지이며 무어인의 지배부터 리스본 대지진에 이르기까지 사연이 많은 고성이다.


이곳에 올라 둘러보는 리스본의 전경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던데 막상 못 간다고 생각하니 왜 이리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 이럴 줄 알았음 어제 혼자라도 가보는 건데....

아쉬움을 달래고 미리 준비해놓은 입장료와 비상금이 들어있는 가방과 카메라 가방을 아빠에게 건네주었다.


소매치기 걱정도 그렇고 막상 두 분만 성에 들여보낼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자나 깨나 주변 사람들 의식하시고 조심하시고 핸드폰, 카메라, 비상금 잘 챙기시라 당부를 드리며 남는 건 사진밖에 없으니 사진 많이 찍으셔야 한다고 거듭 말씀드리자 '우리가 애니?'라는 타박이 돌아왔다. 하긴... 엄마, 아부지가 어린애도 아닐진대 뭘 그리 호들갑인가 싶었지만 막상 성 입구를 향해 나란히 들어가는 부모님의 뒷모습에 살포시 내려앉은 세월의 흔적을 보자니, 부모님이 아니라 마치 품 안의 자식을 손 놓아 보내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짱짱하고 든든한 모습이 아닌,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두 분의 모습이 애처로워 코를 훌쩍이며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데 어랏? 성문을 나와 되돌아오는 두 분의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야야! 이거. 다시 가져가라. 아무리 생각해도 거추장스럽다. 사진을 얼마나 찍겠다고! 이거 신경 쓰느라 되려 니 엄마한텐 신경도 못쓸 것 같아. 입장료랑 커피값만 들고 가면 충분할 듯싶다. 사진은 아부지가 마음으로 찍어 올게. 그래도 정 아쉽다면 인터넷으로 찾아봐라. 그거 치면 다 나오드라. "


아... 그럼 그렇지. 우리 부녀 사이에 눈물 젖은 감상은 사치지, 사치야. 귀찮다며 가져간 짐을 털어내는 아빠를 보자 고여있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니 그럼 사진은 어쩌고, 나는 보지도 못하는데 사진까지 없으면 난 억울해서 어쩌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로서 상 조르제 성의 전경은 가질 수 없는 그것이 되고 말았구나.'


부모님을 성 안으로 들여보내고 왠지 두 분이 '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겠다'며 되돌아 나오실까 한참 동안 입구 앞을 서성이다 30분이 지나도 두 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서야 아이와 성 주변을 떠날 수 있었다.



부모님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와 나는 성 주변 다른 언덕길을 올랐고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포트 와인과 쌍벽을 이루는 체리주인 진자를 마시다가 포르투갈의 특산품인 도자기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돌아다녔음에도 겨우 1시간 반이 지난 것을 확인한 뒤로는 골목에 나있는 계단에 앉아 그곳에서 만난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약속시간. 저 멀리서 데이트를 끝내고 여전히 대화와 다툼의 중간 어디쯤을 달리며 걸어오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주책맞게 또다시 눈물이 나올 뻔했다. 고작 세 시간 떨어져 있었는데 마치 3년은 떨어져 지낸 것처럼 할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뛰어가는 아이를 부둥켜안은 엄마의 모습과 로맨틱한 계획을 성공리에 마친 아빠의 만족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아부지, 어떠셨어? 즐거우셨어? "


"야... 저기 정말 끝내주더라. 우리가 갔던 그 무슨 쏠 전망대보다 분위기가 더 좋아. 포르투갈이 한눈에 보이는데, 그 성이 7세기에 만들어졌단다. 아차차! 카페에서 공작새를 봤는데 니 엄마 그거 보더니 윤이 생각난다고. 애랑 같이 오면 좋아할걸 두고 왔다고... 얼마나 아쉬워하던지. 그래서 아부지 또 욕먹었잖냐? 허허 "



손녀딸 볼에 얼굴을 비비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보며, 내 도움 없이도 충분히 행복해하시는 두 분을 보고 있자니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나는 부모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다. 

부모님의 낯을 세워주기 위해 공부하고, 또한 두 분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나를 버리며 노력했다. 

말 잘 듣는 큰딸이 되기 위해 애썼고, 때론 아빠의 몫까지, 때론 엄마의 몫까지 이뤄내기 위해 나를 감췄다. 


자식은 부모에게 의례 그래야 한다고, 장녀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만족을 느꼈기 때문에 단 한순간도 그런 행동들을 고쳐야 한다고 자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잘못된 관계는 반드시 탈이 나는 법. 만족스럽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러운 감정은 결국 터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부모님을 보호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허우적 거렸다. 내가 행복하게 해드려야 한다고, 나만이  두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강박에 빠졌고 이런 착각들은 내가 부모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병들어 아프게 만들었다.


그러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하며 그동안 내가 해온 생각들은 결코 부모님을 위한것이 아닌 나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건방진 오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 부모님의 모습이 그에 대한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두 분은 자식만 의지하는 나약한 모습 대신 두 분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하셨고, 자식의 도움도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주셨다. 하지만 나는 어땠는가?

정작 나는 부모님처럼 마음을 편히 갖지 못하고 못 미더운 어린 자식을 대하는 것 마냥 혼자서 전전긍긍하지 않았는가.


그제야 알았다. 

드폰도 없이 달랑 입장료만 들고 궁을 둘러보신 부모님이 무얼 보셨고 어떤 걸 느끼셨는지 함께 가지 못한 나는 절대 알 수 없듯이 부모님의 마음 역시 자식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 부모님은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어.' '그러니 부모님껜 내가 반드시 있어야만 해' '부모님은 이렇게 하면 좋아하실 거야, 부모님은 이건 싫어하실 거야..' 같은 섣부른 결론은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는 부모님의 사랑을 스스로 재단하며 보답하겠다는 생각도, 두 분의 인생을 내가 짊어 짐으로서 효도를 하겠다는 건방도 접어두기로 했다.

그저 즐거우셨을 거라고, 행복하셨을 거라고, 멋지다 느끼셨을 거라고 짐작하며 두 분의 삶을 응원하기로 했다. 짐작하지 않는 응원이야 말로 자식이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효도일테니.


손녀딸의 양손을 붙잡고 앞서가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이 그저 감사하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전 25화 들어는 봤나? 글루타민산 나트륨 관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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