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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Oct 16. 2020

 음원협회 직원의 친절 혹은 위로

 나의 성격을 남편은 좋게 말하면 긍정적, 나쁘게 말하면 태평한 성격이라고 한다. 그렇다 나는 물건을 읽어 버려도 금세 잊어버리는 편이고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과 다투거나 따지는 것도 싫어하는 편이다. 대체로 긍정적이고 대체로 느긋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몇 시간째 전화기를 붙잡고 이렇게 질척거리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하루 전날 발생했다. 휴가를 내고 방에 있는데 아들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 방문을 여는 소리, 거실을 쿵쿵거리며 걸어오는 조심성 없는 발걸음, 그리고 방 문 앞에 멈춰서 '똑똑'하는 짧은 순간, 나는 아들이 들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들은 문을 열고 짧게 말했다


" 엄마, 저 공모전에 당선되었어요. 상금도 50만 원이나 있어요. "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당선이라니 그것도 공모전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지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한 번도 상을 받거나 남들 앞에서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 본 적이 없었다. 손이 서툴러서 학교에서 늘 혼나기 일쑤였고 모둠 수업에서는 같은 모둠을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왕따까지 오랜 시간 당했던 아이다. 자존감을 위해서 칭찬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가도 도대체 무얼 칭찬해야 할까 고민하게 했던 아이가 공모전에 당선이 되었다고 하니 내가 허둥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 그 공모전 주최한 곳이 이상한 곳인가?'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든 생각은 ' 그 공모전이 미달이 났나?' 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머쓱해하며 ' 음원 문제가 있기는 한데 1~2만 원이면 해결이 된다고 하니 걱정할 것은 없을 것 같아요'라고 하더니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바로 소설로 치면 복선이었다.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쁜 복선 말이다. 분명 아들은 음원 문제라고 했고 걱정할 것은 없다고 했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뭔가 문제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고 걱정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복선을 눈치 채지 못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남편은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 그 공모전 이상한 공모전이야? 아니면 출전한 사람들한테 무조건 다 상을 주는 곳인가?'

부부란 오랫동안 살면서 사고도 어느새 비슷해져 있는 모양이다. 하여간 우리는 둘 다 너무 놀라고 너무 신기해서 얼이 빠져 버렸다. 공모전 주최기관이 공신력 있는 기관이고 경쟁률도 높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그제야 기쁨이 몰려왔다. 이게 웬일인가.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는 게 이런 건가. 맨날 한심하다고 퉁을 주는 저 아이에게 혹시 천재성이 있어서 나중에 봉준호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하게 이름을 날리는 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남편은 과도하게 흥분한 목소리로 곧장 집으로 갈 테니 파티를 열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너무나도 짧은 순간, 행복은 끝나 버렸다. 아들이 인쇄를 해서 가지고 온 종이는 음원 저작권 사용 동의라는 신청서였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금액을 보니 최소 30만 원에서 100만 원이 넘는 금액들이 기간별로 산정되어 있었다. 아이는 그 신청서를 자기 혼자 작성하다가 그 금액 부분에서 턱 막혀서 나에게 봐 달라고 들고 온 것이다. 나는 신청서 아래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한국음원협회라는 곳이었다. 전화가 두 번쯤 돌려진 후 담당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로 짐작해 보건대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그는 친절과 불친절의 그 중간 어디쯤 되는 목소리로 나를 응대했다. 공모전에 당선이 되었는데 영상에 사용된 음원을 사용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내가 신청서에서 보았던 금액을 다시 안내했다. 그 신청서는 보았는데 그 금액을 내야 하는 거냐고 묻자 그렇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는 차분하게 나의 전화를 응대하고 있었는데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내 쪽이었다. ' 남의 일이라고 이렇게 차분하게 원칙만 얘기하는구나'


  나는 학생의 신분이고 당선 금액이 제세공과금 제외하면 40만 원 조금 넘을 텐데 이렇게 큰 금액을 예상 못했다, 그리고 해당 공모전은 공익 성격의 공모전인데 방법이 없냐고 읍소하듯이 매달렸다. 그는 팀장님한테 상의는 드려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대는 말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가 사용한 음원이 두 곡인데 한 곡은 유니버설 음원협회라는 곳에 문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둘 다 외국 음악이었는데 제목을 듣더니 한 은 한국음원협회 관리 음원이고 한 곡은 유니버설 음원협회에서 관리하는 곡이라고 했다. 다음날 전화를 주겠다는 그의 이야기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인터넷을 뒤져 보고 알게 되었다.  


'저작권의 세계는 어렵고 복잡하구나'


내가 그 젊은 직원에게 저작권법이 너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따질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워졌다.


유니버설 음원협회는 연결부터 어려웠다. 9시부터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서 인터넷으로 다른 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했더니 9시 30분부터 출근이라고 했다. 9시 30분에 전화를 했더니 조금 전 받았던 여직원이 한숨을 쉬면서 " 9시 30분부터 출근이긴 한데 일은 10시부터 하니까 10시쯤 전화를 하세요'라고 했다. 이해가 잘 가지는 않았지만 그런 걸 따질 입장도 아니라서 공손하게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여직원 말도 일리가 있다 싶었다. 출근해서 커피 한잔 마시고 직원들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하루 일과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런 문의 전화가 걸려 온다면 오히려 더 비협조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10시에서 일부러 10분을 더 넘기고 그녀가 이제 출근하고 커피 한잔 마셨겠거니 짐작될 때 전화를 걸었다.


  유니버설 음원협회는 더 까다로웠다. 곡 제목을 듣더니 '그 곡은 천 달러부터 시작하네요'라고 했다. 천 달러라면 120만 원쯤 되는 것이다. 사실 저작권을 사야 한다면 수상금을 제외하고 20~30만 원쯤 더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한 번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한테 이 상이 주는 의미는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혹시 공익 영상인데 할인을 받거나 할 수 없냐고 하자 그녀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사실 국내 공모전에 그 곡을 쓰는 게 문제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상황이 그러네요'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


전화를 끊고 났는데도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언제나 쉽게 이해하고 빠르게 포기하는 내가 아이 문제 앞에서는 이렇게 미련을 버리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치 어릴 때 핫도그를 사 달라고 시장 바닥에서 떼굴떼굴 구르던 꼬마처럼 억지를 부리고 싶었다. 안 될 일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확인했을 때 저작권법은 방대하고 엄격하고 촘촘한 거미줄처럼 빠져나가기가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공모전 주최 기관에 전화를 걸어서 수상 포기 의사를 밝혔다. 그러고 나자 조금 정말 포기가 되었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자기 입으로 포기하겠다고 말을 하고 나니까 마음도 그 말을 다 들었는지 이제 포기하겠다고 얌전하게 머리를 숙였다. 가능성을 타진하며 마음 졸일 때보다 오히려 시원한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수상전 당선이 해프닝으로 끝나고 하루가 지났을 때 한국음원협회의 그 젊은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 어머니, 팀장님께서 공익 UCC이니 영상의 성격을 보고 혹시라도 비용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십니다.  메일로 영상을 보내 주실 수 있으신가요?"


" 아. 유니버설 음원협회에서 얘기하는 금액이 최소 백만 원 단위여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아 수상을 포기했습니다. "

" 아. 네 그러셨군요. "

그렇게 우리는 짧은 용건을 나누었다.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그에게 말했다


" 아이가 한 달 넘게 밤을 새우면서 준비한 공모전이라서 제가 미련을 못 버리겠더라고요.

전화도 여러 번 드리고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알아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통화를 끊었다. 나는 그 젊은 남자에게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어린 목소리, 단정해 보이는 말투, 건조한 응대, 그가 엄마의 마음을 알기는 알까. 아이를 위해서 규정과 법적 허용의 예외를 갈구하는 구차하고 다급한 목소리의 절박함을 알기는 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전화를 다시 주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전화를 다시 드리겠다고 하고서는 걸려오지 않는 수많은 전화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은 정말로 그가 방법을 찾아보고 전화를 걸어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그는 정말로 방법을 찾아보았고 잊지 않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나의 미련과 아쉬움이 위로받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전화 한 통에 나의 기분은 정말로 괜찮아졌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그저 조금의 관심과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 꼭 문제가 해결되거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나의 간절함을 알아주고 그것을 같이 고민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아들은 음원 저작권의 중요성을 배웠고 나는 젊고 무미건조해 보이는 목소리를 가진 남자 직원의 예상치 못한 친절을 경험했다.


삶은 끊임없이 배우고 느끼는 학교다. 오늘도 이 학교에서 예상치 못한 친절에 가슴 따뜻해져서 집으로 돌아간다. 참 괜찮은 하루였다.



    


사진출처: https://www.iphones.ru/iNotes/59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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