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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28. 2020

관리비 절약의 극단적 사례

살다 보면 이런 일도 겪는다.

   관리소에서 들이닥쳤다. 관리소에서 온 사람은 모두 3명이었다. 그들은 연장공구 박스를 들고 갑자기 초인종을 눌렀다. 그들의 용건은 우리 집 관리비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 이상하다니요?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요?"


  그들은 우리 집 관리비가 너무 적게 나오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난방 계량기가 고장이 나거나 작동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은 말로는 난방계량기가 고장 난 것 같다고 했지만  우리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의심이라는 건 우리가 계량기를 일부러 고장 내거나 조작한 것으로 의심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난방계량기를 일부러 파손시켜서 난방비를 0원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기사가 심심찮게 나올 때다. 하긴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게 추위라고 하니 살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간혹은 관리비 좀 아껴 보려고 그런 몰염치한 짓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몹시 서두르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말투는 뭐랄까 나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은 싱크대 아래쪽을 열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래전에 설치된 싱크대 안쪽에는 벽에서 떨어진 회벽 먼지가 묻어 있었고 약간 물기도 있었다. 그들은 손전등을 안으로 깊숙이 넣어서 확인을 하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분주하게 문제를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들은 당연히 아무 소득도 얻지 못했다. 그들은 실망한 듯 연장공구를 정리했다.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그들은 나가면서도 계속 미심쩍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 이상하네요. 계량기는 이상이 없는데. "

그들은 아쉬움이 남는다는 듯이 머뭇거리며 관리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렇게 그들은 허탕을 쳤다.



   이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나서 우리가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긴 속았다고 하기도 뭐하다. 왜냐면 부동산 아줌마가 확인해 준 관리비 내역이 거짓말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엄격하게 말하면 속았다기보다는 철저하게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랴. 내가 하는 '돈에 관련된 일'이 늘 그렇다. 계산도 서투르고 바가지도 곧잘 뒤집어쓴다.


   하여간 이 아파트로 이사 오고 관리비 고지서를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우편함 앞에서 오랫동안 고지서를 들여다보았다. 경비비가 19만 원, 일반 관리비가 8만 원에 공동 난방비, 공동 온수비 등의 항목을 합하면 내가 그저 숨만 쉬고 있어도 내야 하는 공동의 경비가 거의 30만 원 가까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대형 평형 아파트가 34평과 전세 가격이 같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매물들이 보지도 않고 계약되는 상황에서 굳건히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 혹은 단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관리비'였던 것이다. 전년 동월 관리비를 보고 나니 더 기절할 노릇이었다. 전에 살던 가족들은 겨울에 100만 원이 넘는 관리비를 내기도 했다.


   아파트 관리비가 이렇게 나오니까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겠지. 그렇게 합리적인 사람들이 다 싫다고 고개를 저었던 물건을 덜컥 물고 이사를 온 바보들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우리인 것이다. 이건 부동산 아줌마 말대로 반전세 10만 원을 더 내고 넓은 집에서 살아보자는 한가로운 생각으로 위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한 달에 100만 원 가까운 관리비를 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했다.


    우리는 관리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온수매트를 사서 방과 거실에 깔았다. 우선 겨울 난방비를 아끼는 게 급선무였다. 온수매트는 콘센트를 꽂으면 금세 후끈후끈해졌다. 우리는 겨울에 엄청나게 추운 날이 아니면 아예 난방을 틀지 않았다. 우리의 난방은 겨우내 잠겨 있을 때도 있었다. 생각보다 참을만했다. 겨울에 털이 복슬복슬한 극세사 잠옷을 입고 온수매트를 켜 놓고 있으면 집안 공기는 서늘해도 바닥에 닿는 부분은 따뜻해서 견딜만했다. 그렇게 해서 전기세는 올라갔지만 겨울 난방비는 거의 만원 안팎이었다. 확실히 난방비 절감은 효과가 있었다.  다른 세대와 비교해서 보여주는 관리비 통계표를 보면 다른 집 난방비는 40~50만 원 수준이었다.


  그다음 겨울에도 관리소는 우리 집을 조사(?)하러 왔다. 사실 관리소에서 쫓아올만 하다 싶었다. 이렇게 대형 평형에 살면서 난방을 제대로 않는다는 걸 그들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연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아저씨의 답답한 마음을 해소해 줘야만 했다.

" 아저씨, 사실 저희는 난방 거의 안 해요. 그냥 온수매트 깔고 겨울을 나고 있어요"

그런 얘기를 하기가 조금 민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말을 하기에는 우리가 사는 동은 소문난(?) 부자들만 사는 동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도 부자들 사이에 섞여서 사는 법이다.


    처음에는 겨우내 난방을 않고 사는 우리 집 사정이 좀 부끄러웠는데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래도 겨울 내내 감기 한번 안 걸리고 겨울을 잘 났다.


그리고 바람이 따스한 봄기운을 싣고 창틈으로 불어 들어올 때 우리는 가장 먼저 봄을 느끼고 설레었다.

"아 이제 봄이 오려나 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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