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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니 Oct 30. 2022

우리들의 다큐멘터리

1. 지하철에서 공연을 하는 오케스트라

우리들의 다큐멘터리


대학생 동아리에서 시작된 단체여서, 메리오케스트라는 자연스럽게 한 학기를 기준으로 기수제를 운영하게 되었다. 첫 번째 기수는 전적으로 우리 학교 동아리원끼리 운영을 했다. 창립 멤버라 부르는 재원, 주영, 민지는 각각 대표, 지휘자,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함께했었는데, 단체의 실질적인 운영을 위한 총무와 연주자들은 모두 학교 오케스트라 중앙동아리 단원들이였다. 그래서 2기에 서울 및 수도권으로 확장하며 활동을 전개한 것은 사실상 단체 활동을 리셋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첫 번째 기수는 어느정도 실력이 보장된 동아리원들이 5회의 연주 봉사를 이행하는 형태로 함께했다면, 2기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방식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메리오케스트라를 설명할 때 실질적 전신으로 2기를 언급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서울수도권 지역으로 확장하여 청년 대학생을 모집한 기수이기도 하고, 창립멤버들이 단체의 운영 방식을 새롭게 규정하게 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메리오케스트라'라는 단체 이름도 2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는데, 1기 활동을 마무리 할 쯤인 2015년 말에 다큐멘터리 제목을 <We Wish You a Merry Orchestra!>라고 지으면서부터 '메리'라는 단어를 사용해서였다.


다큐멘터리에는 대학 중앙동아리원들이 어떻게 생활예술로서 클래식 악기를 즐기고 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메리오케스트라라는 프로젝트성 문화봉사를 기획하게 되었는지를 인터뷰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15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비올라를 연주하게 된 민혁을 섭외했고, 다큐멘터리 기획자인 나와 동아리 방에서 삼각대와 DSLR 카메라를 두고서 다양한 질문에 답변을 하는 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인에게 메리오케스트라는 무슨 의미인가요?"

"내가 악기 연주를 잘 못 하다보니까 무대에 설 기회가 별로 없는데, 이거(메리오케스트라) 통해서 무대에 설 기회도 많이 얻고 서툰 연주지만 또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 보람도 있고..."


악기를 처음 시작하는 단원도 함께할 수 있는 문화봉사라는 것에 방점을 두려던 것은 아닌데, 민혁의 인터뷰는 그런 기획의도가 잘 담긴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메리오케스트라는 이후에도 청소년과 대학생이 함께하는 문화봉사단이라는 컨셉을 유지하면서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를 추구했다. 개인의 실력 편차를 고려한 맞춤형 악보를 제공하거나, 인원이 많은 바이올린이나 플룻의 경우 일반적인 오케스트라 편성보다 세분화한 파트를 구성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의 특성 상 결과론적으로 많은 인원이 모여서 내는 화음이 중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지하철 역이라는 공공 장소에서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대중적인 레퍼토리를 선곡한 것도 우리의 아쉬운 실력 편차를 커버할 수 있는 비법이기도 했다. 훗날 메리오케스트라를 브랜딩하는 과정에 '생활예술'이라는 키워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사실은 첫 번째 기수에서 부터 드러났다는 생각도 든다.


얼떨결에 메리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하게 된 작곡과 전공의 주영에게는 "전공생이 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을 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전공 과목보다 교양 과목을 더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전공과목은 음악을 하는,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하지만 교양에는 다양한 생각의 사람들이 모여서라고 했다. 그러던 중 교양 과목에서 알게 된 친구가 '같이 오케스트라 중앙동아리 하자'라고 제안을 했었다고.


"솔직히 처음에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음대생인 내가 해야하나? 괜히 쓸 데 없는 음대 자부심 때문에 막 무시하고 그랬는데, 막상 와보니까 너무 잘하고 음악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아서 음대생이라는 것을 떠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함께하게 되었지."


매번 단체의 시작을 회고할 때마다, 나였다면 과연 주영처럼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활동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를 더욱  존중하게 된다. 어렸던 나와 함께해주어서, 아마추어 단체를 이끄는 데 함께해주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하루는 동아리 방에 주영, 재원, 민지가 테이블을 펴고 앉아 회의를 했다. 첫 번째 문화봉사로 화랑대역에서의 공연을 마친 직후였다.


"화랑대역 문화봉사 했잖아, 어땠어?"

"이벤트가 정신 없이 진행되어서 아쉬웠던 점? 그래도 호응은 좋았어요."

"그런데 우리 취지가 시민들과 호흡하는 오케스트라잖아요. 화랑대역 봉사가 그런 면에서 호응은 좋았는데 좀 더 시민들이 참여하고 우리 연주를 함께 만들어 가는게 부족했던 것 같아서 아쉽기도 했어요."

"왜냐면 소통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연주를 보여준다는 느낌이 더 강해서..."


그 때 주영이 의견을 냈다. 당시 우리는 태릉입구역에서 열리는 <지하철 문화 축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두 번째 공연을 할 계획이었다.


"시민들이 직접 우리를 지휘하는 거지."

"아, 우리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면?"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 중에서 쉬운 곡으로 하는 거야."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쉬운 곡으로 일정한 마디를 지정해두고, 시민관객이 지휘를 할 수 있도록 참여형 이벤트를 열어 함께 호흡하는 순간을 만들어보자는 말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공연 부터는 '지휘 이벤트'를 위한 판넬을 제작했다. 문화봉사 중반 부에 지휘자 주영이 공개적으로 "우리를 지휘해주세요!"라고 외치며 시민 관객을 섭외하고, 직접 지휘봉을 건네어 4분의 4박자를 알려줬다. 


즉석에서 섭외된 지휘자는 퇴근 길 집으로 향하던 30대 회사원이었고, 함께하는 청소년 단체(고등학교)를 졸업한 사회인이었고, 또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때때로 단상 위에 올라도 맨 뒤에 앉은 연주자에게 보이지 않는 꼬마 지휘자님이기도 했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문화봉사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기획하는 메리의 시그니처 이벤트가 되었다.




<We Wish You A Merry Orchestra!(2015)>


다큐멘터리에는 일련의 과정이 기록되었다. 우리가 '지휘 이벤트'를 논의하는 장면도, 한국삼육고등학교를 방문해서 청소년 단원을 만나는 모습도, 지하철 역사로 이동하는 모습까지 시간 순으로 기록한 사실적인 컷 편집이 많이 이뤄졌다. 매 합주마다 무겁게 카메라 장비를 들고 있었던 것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한 편, 반 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을 압축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 시간을 많이 쏟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 편집을 하는 2주 정도의 기간에는 재원, 민지가 거의 매일 밤샘 작업을 하기 일쑤였다.


고생한 끝에 2015년 11월, 학교 영상 학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무사히 상영회를 할 수 있었다. 암전 된 상영 공간에서 메리오케스트라의 첫 등장을 알리는 것은 'Hooked on Classics'라는 클래식 곡 메들리의 첫 소절로 우렁찬 호른 소리였다. 비트에 맞춰 등장하는 '김재원, 신민지', '메리오케스트라' 등의 오프닝 크레딧은 편집할 때도 수 십 번은 돌려본 것 같다. 수개월 간 고생해서 제작한 영상이었기에 제법 기분 좋은 긴장감과 함께 상영회를 마칠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라는 소재가 흔하지 않았을 뿐더러 실체가 있는 프로젝트로 지하철역을 비롯한 다양한 공간에서 문화봉사를 이행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다큐멘터리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청소년, 대학생 오케스트라, 지하철역 그리고 시민관객까지 포함하여 메리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주 요소로 언급했는데, 각 요소가 상징하는 바가 있어서 상호 작용을 통해 문화봉사활동이라는 선순환구조가 완성될 수 있다는 맥락이였다.


그렇게 메리츠아츠봉사단으로 촉발된 프로젝트성 문화봉사단 메리오케스트라의 활동이 끝나가는 듯 했다.




참고 영상: We wish you a 메리 오케스트라(2015)


https://youtu.be/D4w8TddUy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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