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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표 Oct 22. 2023

내 별명은 "이기적인 년"

나의 친애하는 우울(中)

'나'는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지만 답을 쉽게 내릴  없었다. 단호한 것 같으면서도, 마음이 약해 물렀고 또 어떨 때는 착한 것 같은데 동시에 영악하게 굴기도 한다. 말 그대로 모순적인 인간 그 자체랄까.


스스로를 비하하는 부정적인 평가로 들릴 테지만 사실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까. 좋든 싫든 입체적인 면을 지닌 인간은 흑백논리에 따라 좋다, 나쁘다는 말로 재단하거나 분류할 수 없다.


그런데 아빠는 한결같이 나를 이렇게 칭해왔다. "싸가지 없는 년", "이기적인 년", "싹수가 노란 년". 그놈의 년년년. 난 우리 집의 3대 년이었다. 오랜 시간을 끈질기게 쫓아다닌 별명. 그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난 꽤나 공부에 소질 있는 학생이었다. 중학교까지는 애매한 순위권을 기록했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반에서 늘 1, 2등을 다투었고 내로라하는 대학까지도 교과 전형으로 넘보고 있던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그 배경에는 아빠의 채찍질이 있었다.


아빠는 내가 1등이 아니면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 덕에 낮은 점수를 받거나 조금이라도 성적이 떨어지는 날에는 이딴 걸 성적이라고 가져오냐며 효자손이 날카롭게 부서질 때까지 밤새 흠씬 두들겨 맞았다. 겨울에는 팔이고 다리고 할 것 없이 여기저기를 맞았지만, 여름에는 반팔 교복에 가려지는 부위만 골라 때렸다.


그러니 시험기간은 고역이었다.  아빠에 매 맞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빠지고 코피가 나도 멈추지 않았다. 있는 거라곤 쥐뿔도 없는 어린 내가 돈을 엄청나게 벌 수도, 도망칠 수도 없으니 조금이라도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늘 우리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던 그였기에 학원을 보내달란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했다가 욕만 처먹었다. 너는 스스로 해보려는 노력 하나 기울이지 않냐고, 결국에는 "부모님 등골 빨아먹는 이기적인 년"이라는 소리를 백 번 정도는 듣고 나서야 내 방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괜한 욕을 들어먹을까 싶어서 불안했던 나는 문제집 사달라는 말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공부는 잘해야 하지만 이를 위한 지원은 부재하는 아이러니한 환경에서 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바로 교통비를 아껴서 문제집을 사는 것이었다.


당시에 용돈도 넉넉지 않았던 터라 매일매일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갔다. 약 1시간 걸리는 거리를 걷다 보면 발에 물집이 잡히고, 살갗이 쓸려 아팠지만 몇 주 정도만 참으면 버스비를 모아 가장 약한 과목인 수학 문제집 정도는 살 수 있었다. 다행히 국어, 영어 같은 과목들은 교과 선생님들을 찾아가면 하나씩 나눠주셨기 때문에 괜찮았다.


나는 내 나름대로 조용히 살 길을 찾으려 늘 발버둥을 쳤다. 새 문제집을 한 아름 들고 오고, 야자가 끝나면 늘 부모님이 데려오시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약점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질투하는 나 자신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다행히 성적이 좋았기에 선생님들에게는 신임을, 친구들에게는 부러움을 샀던 나는 어느새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꽤나 나쁘지 않은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마치 백조의 다리처럼 겉으로는 동요하지 않는 고요한 사람이었지만, 물 밑에서는 누구보다 가삐 헤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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