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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표 Apr 26. 2023

나의 친애하는 우울

나의 친애하는 우울(上)

주체 못 한 우울이 흘러넘쳐 너울친다. 그 사이 눈물이 겹겹이 흘러 창조해 낸 심해를 한 마리의 고래가 떠돌았고, 광활한 깊이 때문인지 길을 잃은 듯 방황하고 있었다. 이 어둠은 어디까지인지 햇빛 한 줄기조차 용인되지 않은 깊숙한 허공에서 지느러미를 마구 허우적거려 본다. 작은 몸짓이 일으킨 물보라만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할 뿐 아무리 헤엄쳐도 늘 그 자리에 있는듯한 기분은 착각일까.






오늘도 같은 꿈이다. 아무도 없는 심연의 끝자락에 몰리는 상황. 홀로 견뎌내야 하는 사무치는 외로움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나날이 커져간다. 꿈에서 깨는 이따금씩 현실에서의 스스로가 낯설어질 만큼 허상의 존재는 강렬하다.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린 마음은 마땅히 둘 곳도 없다. 그저 어디 한 구석에 투박하게 방치하고, 언젠가 처리해야 할 미래의 몫으로 남긴다.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과 즐거운 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찰나의 틈이 생기는 지점에 우울감은 친근히 존재를 드러내곤 한다.


그렇게 일상에서 무거운 공기가 가라앉는 순간 내면의 작은 바다에 다시금 이끌려온다. 현실의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저 너머 한편에 쌓인 모래성에 슬그머니 기대면 소리 없이 우는 파도가 들린다. 물결치는 얕은 장벽에 일렁이는 내 모습도 보인다. 마치 실제 바다를 거닐듯이 곧이어 물 밀듯 짠내음이 훅 덮쳐온다. 꽤나 오래 머금은 듯 가볍게 부는 바람이 흩뿌린 바다의 잔향에도 코끝은 찡해지고 눈은 매워진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눈물 흐르니 또 다른 바다를 이루어 내 마음 철썩이는 듯했다. 아니, 휩쓸었다.


가끔 내 존재의 이유가 우울이 아닐까 하고 멋대로 세상의 섭리를 감히 유추해보곤 했다. 누군가 행복해지면 덜어지는 절망의 그릇을 늘 같은 양으로, 혹은 충분하게 유지하기 위해 나를 빚어낸 건 아닐지. 나름 합리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행복하지도,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았으나 슬프지도 않았다. 단지 존재에서 기인하는 모든 고통을 오롯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 벅차 어지러웠다.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나에게만 야박하게 구는 것이 틀림없다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멋모르는 어린 시절을 지배한 생각은 인생의 대부분에서의 나를 현존하는 우울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

.

.

아니, 우울한 사람으로 끌어내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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