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회사 생활
스페인을 3개월 동안 여행하는 중 한 달을 머물렀던 바르셀로나를 잊지 못하고 8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스페인 친구가 지원해보라며 보내준 구인 광고는 한국인을 필요로 하는 회사였고 밝고 활기 넘치는 젊은 분위기가 가득한 글로벌 회사라 마음에 들었다.
두 번의 면접을 거쳐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고 바르셀로나에 온 지 3개월 만에 운 좋게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발랄한 분위기에서 즐겁게 일하며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바르셀로나에 확실히 정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잠시 꿈꾸었던 것들은 그렇게 꿈에서 그쳤다.
개인주의
출근을 시작한 첫날 내 책상 위에는 입사를 축하한다는 내용의 카드와 작은 선물 그리고 초콜릿 상자 한 박스가 놓여있었다.
새로운 직원이 입사한다는 소식이 팀원들에게 전해지긴 했지만 내가 입사했다는 사실을 내가 직접 쓴 메일로 알려야 했다. 입사 선물과 함께 받은 초콜릿 한 박스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팀원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인사하며 건네주는 용도로 주어진 것이었다.
팀원들에게 나를 처음 소개하는 방식이 내가 직접 쓴 메일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해 너무 당황스러웠다. 간단한 내 소개와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아주 간단한 내용의 메일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콜릿을 들고 팀원들 자리로 찾아가 인사하는 건 도저히 할 수가 없어 포기했다. 내 자리 주변에 있던 동료들에게만 겨우 인사를 건네며 나눠주었다.
팀 리더나 팀원들이 나를 다른 팀원들에게 소개해 주는 일은 없었다. 철저하게 나 혼자 움직여야 한다는 걸 입사 첫날부터 혹독하게 배웠지만 퇴사하는 날까지 완전히 익숙해지지 못했다.
바르셀로나의 회사는 간단한 내용을 전달받는 팀 미팅 말고는 팀원들과 얘기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고 홀로 일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개인 업무 이외에도 여러 부서와 협업하고 동료들과 서로 챙겨주며 일했던 한국 회사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였다.
무관심
오랫동안 기다렸던 런던 본사 워크숍에 초대받았다.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는 여러 후보들 중에서 영어 원어민 네 명과 나를 한 팀으로 보냈다.
본사가 런던이라 그랬는지 세네 가지 언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친구들보다도 영어 원어민들이 항상 우대를 받았다. 그들은 스페인어 한 마디 못해도 모국어가 영어라는 이유로 항상 우쭐해있었다.
우리 팀원 모두가 그런 건 절대 아니었지만 나와 함께 워크숍을 갔던 팀원들 중에 그런 애들이 있었다. 그들 앞에서 내 영어는 언제나 주눅 들었다.
런던을 구경할 시간도 없이 2박 3일 동안 런던의 다른 팀원들과 같이 여러 수업 들을 들어야 했다.
50명 정도 되는 사람들 중에 나 혼자 동양인이었는데 식사시간이나 뒤풀이 시간이 되면 간단한 인사 이외에는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와 얘기를 나누다가도 갑자기 가버리거나 누군가가 끼어들어 내 말을 가로챘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연스럽게 뒤로 빠져있게 되었다.
큰 관심을 기대한 적도 없지만 서양인이 아니라 대화에 낄 수도 없는 상황이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고 이야기를 이끌어내려 노력하는 걸 포기한 지 꽤 시간이 지난 뒤였지만 무관심이 큰 상처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차별
내가 일했던 팀의 80명 정도 되는 팀원들은 15개 정도 되는 국가 출신이었다. 팀과 자리 배치를 국가 별로 나누고 자리 배치도를 나눠주던 날이었다.
아일랜드, 영국, 스코틀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아시아 이렇게 자리 배치도가 그려져 있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각각의 국가별로 나눠서 표시해 주었는데 한국, 중국, 일본은 그냥 아시아였다.
서로 다른 언어를 활용하며 일하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아시안으로 뭉뚱그려 불렸다. 내가 혹은 다른 동양인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전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이미 익숙해진 구분법이라 우리는 욕 한 마디씩 하고 그냥 넘겼지만 얼마나 그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지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애매한 경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조차도 느끼지 못했을 은근한 차별들이 많았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나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을 수 있다. 그만큼 정확한 정의도 경계도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해주는 작은 배려들을 나는 받지 못한 적이 많다. 내가 부족한 것으로, 내가 이해심이 없는 것으로 잊어보려 해도 반복되는 행동들로 나에게 되새겨 주었다.
동양인으로서 유럽인들 사회에 끼어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오랜 시간 도전과 거절을 받으며 깨달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재밌는 경험들도 많이 했고 좋은 친구들도 분명 있었다. 회사 끝나고 맥주 한 잔 같이하던 아일랜드 친구, 언니처럼 안부를 물어봐 주던 중국 친구, 회사에서 또 회사 밖에서도 큰 힘이 되었던 한국 친구,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던 다른 팀원들까지...
그러나 아직까지 바르셀로나의 회사 생활을 떠올리면 아픈 기억들이 먼저 생각난다.
그 애매한 경계가 사라져 좋은 기억들이 먼저 떠오르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