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르셀로나
Vacaciones
스페인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직장인들은 일 년에 24일의 연차를 기본적으로 보장받는다. 회사에 입사한 달부터 매월 2일씩 연차를 받는데 대부분은 24일을 한꺼번에 붙여 한 달 동안 휴가를 다녀온다.
바르셀로나에서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휴가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한국과 다른 휴가에 대한 시스템에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스페인 국경일과 카탈루냐 국경일이 모두 휴일이고 공휴일이 주말에 있는 경우 그다음 주 월요일로 휴일이 이어진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대체휴일 제도가 있지만 5년 전 스페인 회사에 처음 입사해 이런 시스템을 처음 누려본 나에게는 대체휴일이 정말 감사한 휴일이었다.
스페인과 카탈루냐의 공휴일에 24일의 연차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까지 모두 합치면 바르셀로나의 직장인은 일 년에 40~50일 정도는 휴가를 갖게 된다.
8월의 바르셀로나
8월이 되면 현지인들은 바르셀로나를 관광객들에게 내어준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관광객들로 복잡한 도시를 떠나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거주하고 일하는 동네는 훨씬 한적해진다.
메트로폴리탄이자 관광 도시인 바르셀로나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그 수가 비교적 적긴 하지만 현지인을 상대로 하는 동네의 바, 레스토랑, 상점들은 8월이 되면 한 달 동안 가게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난다. 회사들은 8월이 되면 한 달 동안 아예 업무를 중단하고 직원 전체가 휴가를 떠나거나 8~9시부터 2~3시까지만 일하는 호르나다 인텐시바 La Jornada Intensiva, 한국어로 '집중 업무'이라는 제도를 실행한다.
호르나다 인텐시바 La Jornada Intensiva, 집중 업무 기간에는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서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 없이 6시간 동안 쭉 이어서 일을 하고 일찍 퇴근한다. 8월 바르셀로나의 퇴근 버스가 오후 4시부터 붐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밤 10시가 가까워질 때까지 해가 지지 않는 바르셀로나의 여름 덕분에 집중업무를 하는 직장인들은 바르셀로나의 여름을 퇴근하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휴양지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한 달 동안의 긴 휴가를 어디서 어떻게 보낼까? 가까운 유럽부터 먼 아시아까지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
각 지방에 흩어져 있던 온 가족이 스페인 남부의 할머니 댁에 모두 모이거나 친구의 가족과 함께 코스타 브라바 해안 근처에 있는 별장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휴양지로는 Sa Tuna, Llafranch, Blanes와 같은 코스타 브라바 해안가의 작은 마을 혹은 이비자, 마요르카, 포르멘테라 와 같은 발레아스 제도의 섬들이 있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휴가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휴가는 온전한 휴식이다.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기 위해서 색다른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바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여러 번 여름을 보냈던 그곳에서 가족, 친구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
아침 9시 10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하몽을 올린 빤꼰또마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천천히 해변으로 나간다. 원하는 자리에 파라솔을 펼치고 자리를 잡으면 모래사장에 누워 책을 읽다가 혹은 시원한 맥주를 한 캔 하고서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거나 각자의 방식대로 해변을 즐긴다.
태양이 심하게 뜨거워지기 전 숙소에 돌아와 가족 혹은 친구들과 함께 빠에야를 만들어 먹고 시에스타를 즐긴다. 오전에 특별히 한 일은 없지만 확실히 쉬어주어야 한다. 자고 일어나 강한 햇볕이 한 풀 꺾이면 숙소 주변을 산책하거나 파티오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저녁 8시가 넘으면 슬슬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밤 9시 해가 넘어가기 시작해 10시가 되면 식탁에 모두 둘러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모두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하는데 그렇게 2~3시간 동안 와인이나 맥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는다.
휴가 동안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는 게 조금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해변, 계곡 등이 자연을 만끽하며 느린 일상을 보내다 보면 오랫동안 긴장되었던 몸이 손 끝 발 끝까지 풀어지면서 완전한 휴식을 취하게 된다. 휴가 동안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방 여유로운 시간들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인 친구들로부터 진정한 휴식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갈 수 없고 계속해서 내리는 비 때문에 국내여행도 쉽지 않은 요즘 조용히 느린 일상으로 바르셀로나 사람들처럼 휴가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