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르셀로나
까냐 Caña
스페인어 글씨체도 발음도 귀여는 까냐는 사탕수수, 갈대, 줄기와 같은 뜻을 갖고 있는데 스페인에서는 탭에서 바로 따른 생맥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바르셀로나의 바나 레스토랑에서 1.5유로~2 유로면 까냐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파인트처럼 큰 용량보다는 주로 330ml 작은 잔으로 생맥주를 즐긴다. 마시기 바로 전에 따른 맥주는 더 시원하고 싱싱하다.
스페인에서 생맥주를 즐기는 시간
바르셀로나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학원에 가는 이른 아침에 집 앞 바에서 까냐를 즐기는 아저씨들을 보고 '아침 8시에 맥주를 마셔?' '알코올 중독인 건가?' 생각하며 놀랐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다음 해 일찍 해가 뜨는 여름날 아침, 일어나서 목이 말랐던 나는 그 아저씨들처럼, 스페인의 다른 사람들처럼 집 앞에 있는 그 바에서 차가운 까냐를 주문했다.
바르셀로나의 물은 석회가 많고 청량감이 없는 데다가 심지어 가격도 맥주보다 비싸다. 이런 이유로 바르셀로나에서 맥주를 마시는 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아침, 점심, 저녁 상관없이 물보다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맥주를 선택하게 된다.
이른 시간부터 더워지는 8월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차가운 잔에 담긴 맥주가 더욱 생각난다. 회사 점심시간에 마시는 까냐 한 잔은 남을 하루를 잘 견디게 하는 위로가 되었고 퇴근 후 밤 9시에 본격적인 저녁식사를 하기 전 타파스와 마시는 까냐는 허기를 달래주었다.
어디서든 까냐 한 잔
원한다면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까냐는 장소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바,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베이커리, 카페,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맥주를 주문할 수 있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면서 콜라, 사이다가 아닌 맥주를 주문할 수 있다는 건 맥주가 탄산음료보다 건강하다고 믿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옵션이다. 많은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맥주는 술이 아닌 음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시우타데야 공원, 바르셀로네타 해변 같은 야외에서도 빨간 에스뜨레야 맥주캔을 들고 마시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까냐를 즐길 수 있지만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적당히 마실 줄 안다. 과하지 않게 딱 한두 잔 정도, 까냐 한 잔을 놓고 두세 시간 얘기하는 엄청난 스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맛있는 안주
바르셀로나의 다양한 타파스는 까냐와의 궁합이 언제나 좋다. 같은 메뉴라도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맛보는 재미도 있다.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먹는 감바스 알 아히요 혹은 치즈 플래터도 자주 먹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안주는 싱싱한 올리브이다. 캔에 담겨 물컹물컹한 올리브와 달리 식당에서 내어주는 올리브는 단단하고 신선하다. 올리브에 따라서 꽤 짤 수 있지만 맥주 한 모금 마시면 짠 기운은 금방 사라지고 올리브의 맛이 느껴진다. 탱글탱글하고 상큼한 올리브는 까냐와 딱이다.
여름은 맥주
언제 마셔도 맛있는 맥주지만 차갑게 마시는 맥주의 특성 때문에 더운 여름과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화이트 와인보다 레드 와인을 더 좋아하는 나의 취향도 한 몫하는 듯하다.
건조한 여름 날씨에 목이 마를 때 테라스에 앉아 얼려둔 잔에 담긴 까냐를 한잔 마신다. 바르셀로나의 해변에서 태닝을 하다가 뜨거운 바르셀로나 태양볕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치링기또에서 까냐를 한잔 마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함이 퍼지면서 얼굴에 미소를 짓게 된다. 태양, 해변 그리고 까냐는 바르셀로나의 여름을 완벽히 즐길 수 있는 조합이다.
따갑게 느껴질 정도로 강한 바르셀로나의 햇볕과 차가운 까냐 한잔이 그립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