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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Sep 05. 2020

경주마


함께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을 열고 들어갈  혼자였지만, 나갈 때는 함께였다.  직장이었다. 하하호호까지는 아니어도, 평일 퇴근길은 미소로 가득했다.


퇴근길이라는 점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다 같이 회사를 나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한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일종의 한 배를 탔다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걸어가는 길은 짧았다. 그 시간 내 모든 이야기를 다 나눌 수 없었다. 수습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경청이었다. 질문을 하고 싶어도 빵빵 거리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에 묻히기 마련이었으니까.


하루 반나절 시간을 한 공간에서 함께 보내고, 동일한 장소에서 서로에게 작별인사를 나누는 관계.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그 관계는 처음엔 낯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관계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첫 회사였다.      


착륙 전, 비행기 창문을 통해 바라본 미국 전경


“혹시 젓가락 쓰세요?”      


크리스마스 당일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내 옆 자리에는 동양 여자가 앉아 있었다. ‘한국인이겠지’ 하고 지레짐작하며 젓가락 사용 유무를 물어봤다. 그는 기내식과 함께 나온 젓가락을 방치해두고 있었다.    


“아뇨, 안 쓰는데...”      


젓가락 획득 후 자연스럽게 그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물론 1분도 안 된 채 끝났지만. 그는 뉴욕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었다. 가족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한 달 정도 머문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당일 비행기 값이 싸다고 덧붙였다.


‘아, 그래서 쌌구나....’


몰랐다. 그저 우연히 값싼 티켓을 얻었다 생각했다.


12월 25일, 한국에서는 모든 연인들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다. 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터인가 애인이 없는 나는 집에서 줄곧 시간을 보냈다. 맛있는 것을 와인과 함께 곁들여 먹었다. 그게 크리스마스였다.


그런 크리스마스를 한두 해 보내고 있었다. 그랬던 나에게 ‘크리스마스날 뉴욕행 비행기 탑승’은 타이틀 조차 멋스럽게 다가왔다. 사연이 있는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젓가락을 얻었던 그때.


나와 그의 사이에는  좌석이 하나 있었다. 그는  좌석에 다리를  뻗었고, 그의 발가락들이 꼼지락  허리살과 여러  맞닿았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불편함이었다.


잠을 청하려는 그와 달리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영화 여러 편을 번갈아 돌려보며, 맥주를 마셔댔다.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맥주는 꽤 운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비행기 안에서 먹는 맥주가 땅 위에서 마시는 맥주보다 더 맛있게 느껴진다.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도 나름대로 맥주를 마시며 잠을 자지 않는 내가 불편했을 것 같다.


최대한 살살 캔을 뜯었다.



“언니!”      


뉴욕에 사는 사촌동생과 오랜만의 재회였다. 그럼에도 사촌동생이 찍은 영상 속 나는 사촌동생을 보았는데도 계속 갈 길을 가고 있다. 직진 중이다. 공항 출국장에서 펜스가 쳐있고, 나는 펜스 구멍을 찾아야 했다. 그래야 나갈 수 있었으니까.


영상 속 나는 꼭 앞만 보는 경주마 같았다.      




“이번 주말에 공연이 있는데, 000 페스티벌과 000 콘서트. 가고 싶은 사람 있어?”


눈치를 봤다. 아무도 가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한 공기 속 수줍게 손을 드는 자가 있었으니 그건 나였다.


“저 혹시 가도 되나요?”


나름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생각했는데 그건 눈 밖에 나는데 일조한 셈이었다. 이미 눈 밖에 났는데 더더욱 눈꼴셔 보이도록 한 걸지도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콘서트 날짜는 평일이 아니라 주말이었다. 직장인에게 주말은 꿀 같다. 그런 주말에 일한다는 것은 힘든 것이었다. 주말 콘서트는 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가고 싶다고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주말이든 평일이든 나는 힘들지 않았다. 주말에 일을 해서 누구의 눈에 띄니 뭐니 하는 건 관심이 없었다. 그냥 일에 관심이 많았다.


일만 보고 달리는 나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      




“동생! 오랜만이야. 얼마만이야 이거. 잘 지냈어?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 (아마 여기서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우버 불러야 하는데 이거.”


“언니, 잠시만 기다려 봐. 나 우버를 포함해서 다른 택시들 앱이 두 개 정도 더 있는데 가격 비교할 수 있어. 여기서는 우버보다 이게 더 낫다.”     


부지런한 사촌동생 덕에 뉴욕의 생소한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탔다. 택시는 제법 커서 내 짐을 다 실을 수 있었다.



“언니, 그래서 얘기해 봐 봐.”


“뭐가...”


“아니, 갑자기 뉴욕 온 게 어쩐 일이야? 나야 좋지만.”


“그게...”


“그.. 년들 때문이지?”


(맹세코 나는 사촌동생에게 회사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정확히 기억한다. 그날의 기억. 6시가 아직 안 됐을 무렵. 나는 대표 사무실에 불려 갔다.      


“너, 어쩌냐. 선배들이 너랑 일하기 싫대.”      




2019년 12월 25일, 나는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했고, 같은 날 뉴욕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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