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ssible Kim Nov 16. 2020

이런 여우 같은 곰을 봤나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좋은 예 (feat. 방귀)

아이가 저녁밥 먹는 양이 평소보다 많기에, 오늘 요리가 참 맛있게 잘됐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이는 트림과 방귀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제 먹은 밥이 소화되고 똥으로 나오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앗~ 지독한 방귀 맨이다!"라고 놀리거나

아이 옆에 슬쩍 다가가서 집에서는 안 쓰는 마스크를 쓰는 내 모습을 보여 주며

이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아이를 표정을 보고는 풋 웃으며 아이의 엉덩이를 쳐다보고는 했었다. 


그렇게 두 시간에 한 번씩 하다, 한 시간, 30분에 한 번씩 점점 더 트림과 방귀를 횟수가 늘어나게 연달아 내뿜었다. 이거 자연적으로 나아지겠다 싶은 정도를 벗어나 보여 그날 바로 소아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일시적으로 소화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니 약 처방받고 일주일 정도 먹게 먹으면서 지내면 저절로 나아질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나왔다. 다행이군. 


그런데 웬걸, 일주일이 가까워지는데 크게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집에서는 기본이고, 학교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인데, 트림이야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그나마 완충작용이 되지만, 방귀가 문제였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남에게 뒤집어 씌울만한 약은 성격은 아닌지라. 혹시나 방귀 때문에 놀림을 받으면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하교 후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은 "오늘 방귀 어땠어?" 였는데.


"뀌기는 했는데 애들 떠드는 소리 때문에 괜찮아."

-떠드는 소리에 맞춰 뀌었다면 상황에 따른 적절한 임기응변


다음 날은

"뀌고 바로 다른 자리로 갔어."

-36계 줄행랑 시전


다음 날은 

"애들 없는데 가서 뀌고 자리로 돌아왔어."

-전술적인 포지션 변경


다음 날은 

"뀌기는 했는데, 쉬는 시간이어서 책상 두드리는 소리 내는 척하면서 꿨어."

-수업시간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다음 날은 

"나 방귀 뀌는 거 한 명이 알아챘어. 애들하고 같이 노는데 갑자기 나오더라. 

 걔가 나한테 '너 방귀 뀌었지?'라고 했는데, 내가 '무슨 소리지?'라고 모른 척했어."

- 방귀소리에서 유사한 다른 소리로의 인식의 전환 시도


다음 날은 

"아빠 오늘도 한 명 추가(체념한 듯, 조금 우울한 표정), 아침에 조용히 책 읽을 때, 

 내 뒷자리 애가 '너 방귀 뀌었지?'라고 했는데, '나 아닌데'라고 했어 "

- 상황만 딱 들어봐도 넌데, 침착하게 딱 잡아떼기 시전, 당시의 아이 표정이 너무도 궁금함


방귀가 아이의 처세술을 가르쳐 준 것 같아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래 인생은 그렇게 배우는 거지. 

그래도 아이가 혹시나 의기소침해질까 봐.

"방귀는 자연스러운 거야. 일부러 참지 말고 차라리 시원하게 뀐 다음에 '아~ 시원하다' 해버려. 남자답게."  

"방귀 뀌었다고 누가 뭐라 그러면 '너는 방귀 안 뀌냐? 방귀 안 뀌어?'라고 말해."

아이는 한바탕 웃으면서도 "어차피 자기 엉덩이 사정 아니라고 아빠 쉽게 말하네."라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같이 귀가하던 중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도 예외는 아니었고 혹시나 했던 엘리베이터 방귀가 터졌다.

마침 한 명의 여성분이 함께 타고 있었다. 

"뿡우웅~" 

명확한 발음의 이 소리는 누가 들어도 방귀였고, 방귀 소리에 애, 어른이 따로 없었기에 그 여성분 머릿속의 용의 선상에는 나와 아이, 둘 중에 하나였다. 

나는 아이의 자존감을 살려 주기로 했고, 그 여성분이 오인할만한 어떠한 제스터나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놀리지 않고 친구 같은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아닌 어른 같은 아버지가 되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는 그간의 방귀로 인한 고난의 시간에 복수라도 하듯

내 쪽으로 고개를 크게 돌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리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좋은 예


이런 여우 같은 곰을 봤나

이전 02화 받아쓰기 100점 맞는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