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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Nov 24. 2020

아내와 각방을 쓰는 이유

나는 아내가 무섭고, 아내는 내가 무섭다

각자 떨어져서 자야 방해 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다거나

아내나 나의 코골이가 심하다거나 

누구의 퇴근이 너무 늦어서 먼저 잔 사람이 깰까 봐 

잠자리가 소원해져서

각방 쓴다고 할 거면 쓰지도 않았습니다.


먼저 배경지식을 알려 드리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9살 아들은 혼자서는 잠을 못 잡니다. 겁쟁이입니다.

아이방을 마련해 줬어도 혼자서는 죽어도 못 잔답니다. 

엄마, 아빠가 버젓이 거실에 있는데도 무섭다고 난리입니다.


게다가 어두운 곳에서 혼자 자면 귀신과 접신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마, 처음에 제가 놀린다고

눈까지 뒤집고 신들린 접신 연기를 한 번 보여주고 나서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혼자 자려면 방문을 활짝 열고. 거실의 불빛이 방 안으로 들어와야 그제야 안심하고 겨우 잡니다.

전에는 방의 불을 켜야 잔 거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진 겁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셋이 함께 잡니다. 

나. 아들. 아내 순으로

가끔은

나. 아내.      아들 순으로 자고 싶지만 싶지가 않네요. 

밖에 나가 자는 게 아닌 게 어디입니까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퇴근이 늦은 날

그 말인 즉, 아내 신경이 날카로울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을 때

더욱이 그 달 아내의 그날까지 겹친 날

그 말인 즉, 아내 신경이 날카로울 때로 날카로워졌을 때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아내의 용안을 살피며 우리 셋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내는 많이 피곤했을 몸임에도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나 부엌에 나가 물을 한 잔 마시고 있었습니다. 

컵 내려놓는 소리에 저 또한 깨어났고 피곤한데 왜 벌써 일어났냐고 물어보았습니다.

"我做怪梦了"  ‘나 이상한 꿈 꿨어’

평소에 한국어로 대화하는 아내가 중국어로 얘기하는 것을 보니

꽤나 진지해 보였습니다. 


아내는 또렷하게 꿈속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한 정체불명의 남자가 자리에 앉아 몸을 움츠린 채였습니다. 

암흑 속이라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으나 

남자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꿈속의 아내는 그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들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허나 단발성의 몇 가지 단어를 끝으로 그대로 누워 버린 남자는

다시 앉았다 눕기를 두어 차례 반복하다 

남자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흔적도 사라지는 것을 보고

이내 다시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내가 악몽이었을까 걱정해 주었지만

꿈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섭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혹시? 

영화 인셉션(Inception)에 나온


자각몽

[ Lucid dream, 自覺夢]

자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꾸는 꿈을 말한다.


다음 날. 아내는 또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아내가 이불속에 숨어 지켜본 꿈속의 남자는 다시 어제의 그 남자였고 

이번에도 남자는 몸을 움츠린 채로 뜻을 알 수 없는 괴상한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오늘은 기필코 이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어 나의 꿈에까지 나타나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괴롭히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이불을 박차고 나와 남자가 어제처럼 사라지기 전에 붙잡고 싶었습니다.

그 남자의 어깨를 잡고 

드디어 그가 누구인지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찰싹"

제 뒤통수가 뜨거워졌습니다.

"야~ 잘 자는데 왜 때려! 아오 아파!"


우리는 다음날부터 당분간 각방을 쓰기로 했습니다.


저의 잠버릇을 가벼운 잠꼬대 수준으로 알고 있던 아내에게도 

이제 사실을 밝힐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앓던 병이 있습니다. 

이 정도면 재발한 걸까요?


수면 보행증(몽유병)

[ sleep-walking , 夢遊病 ]

수면 도중 잠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는 각성 장애      

[네이버 지식백과] 수면 보행증 [sleepwalking]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어릴 때는 자다가 일어나서 거실은 걸어 다니며 소리치는 것은 예사고

한 번은, 할머니 집 앞마당에 나가 달빛 아래에서 미친놈처럼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군대 이등병 시절, 몽유병으로 혹여나 2층 침대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손을 침대 난간에 묶고 자던 시절입니다. 

2층 침대에서 자던 저는 바로 아래 1층서 자는 병장의 침대를 두들기다, 

다음날 병장에게 두들겨 맞을 뻔도 했습니다. 


깨어 있을 때도 

자고 있을 때도 

사는 건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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