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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Dec 09. 2020

대만 스쿠터 면허 취득기

무사함에 감사함

2016년, 처음 가 본 대만은 더웠다. 30도는 쉽게 넘는 날이 많았다. 길을 걸어 다니면 옷은 금세 땀에 젖고 진이 다 빠졌다. 나나 아이나 사우나에서 갓 나온 것처럼, 머리카락까지 축축이 젖어 있었다. 아내는 얄밉게도 땀을 거의 안 흘렸다. 몸에 땀구멍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땀이 안 난다. 별게 다 얄미운 날씨였다.

아이가 열사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스쿠터가 마려웠다. 몇 년은 있을 곳인데 사실 진작에 사야 했다. 차를 살 고민도 해봤지만, 대만 사람들 모두가 타는 스쿠터를 타보고 싶었다. 그전에, 스쿠터 면허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렇게 대만에 산지 6개월 만에 대만 스쿠터 면허 시험을 봤다. 운전면허 소지자는 다행히 필기가 면제였다. 남은 것은 실기. 실기시험장에서 2번의 연습 주행 후 실제 시험도 마찬가지로 2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좁은 선을 벗어나지 않고 10초 이상 주행해야 한다. 

첫 관문은 폭이 30cm 남짓 되는 10m 길이의 좁은 선로를 10초 이상 주행하는 코스다. 균형감각과 스트롤(손잡이) 조절 능력이 요구됐다. 2번의 연습 주행은 반도 못 가서 발을 땅에 닿는 바람에 모두 실패했다. 10초 이상 주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속도를 너무 낮춘 나머지 균형을 못 잡은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실제 시험도 실패했다. 속도를 살짝 높이니 발은 안 닿았으나 10초도 안 돼서 도착한 것이다. 마지막 기회만이 남았다. 긴장됐다. 여기서 떨어지면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돈도 더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험장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 더위를 생각하면 무조건 붙어야 했다. 앞에서 3번의 주행으로 영점 조절은 끝났다 셈 치고, 속도와 균형감각이라는 숙제를 가지고 마지막 주행을 시작했다.


결과는 다행히도 합격이었다. 절실하게 노력해서 얻는 결과는 늘 달콤하다. 

실기 시험에 합격한 후, 1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 1시간의 교육은 영상으로 대체가 되었는데, 주된 내용은 실제 스쿠터 사고 영상이었다. 차가 박고, 차에 박고. 스쿠터끼리 박고, 전봇대에 박고, 스쿠터가 날아가고,  스쿠터가 박살이 나고, 사람이 날아가고, 사람이 쓰러져 있는 영상. '여러분들은 이렇게 되지 마세요.'라는 영상을 보고 나니 두려워졌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고가 다가오면 어쩌지?'


내 앞자리에 아이가 타고, 내 뒤에 아내가 타야 했기에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집에서 복습한다고 스쿠터 사고가 나는 이유라는 영상을 찾아보다, 베트남의 한 사고영상을 보게 됐다. 트럭에 깔린 한 남자의 하체가 분리된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다짐했다. 트럭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내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절대 과속은 안 된다. 신호 없는 교차로에서는 감속했다 좌우를 살피고 간다. 녹색불에 바로 출발하지 않고 몇 초간 기다렸다 간다. 주행 중에는 앞뒤 스쿠터와 안전거리를 유지한다.' 

면허를 따고 다음 날 바로, 중고 스쿠터를 구매했다.


모든 곳은 스쿠터와 함께

'그러던 어느 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사고가 벌어졌다.'는 뻥이고. 휴~이런 일이 안 일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 가족은 작은 사고 하나 없이 1년 반 동안 대만 여기저기를 스쿠터로 다녔다. 위에 원칙들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그 원칙 때문에 막은 사고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간 무사함에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한 달에 1,000km가량 달리며, 1년 반이나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준 스쿠터를 떠나보내야 했을 때, 조금 서운했다. 그래서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사고 없이 달려준 고마운 녀석. 

중고로 팔기 전 기념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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