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최고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건강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새벽부터 근육통이 심하게 왔는지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저 어깨가 요즘 많이 뭉쳐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학교에 출근했다.
도착하자마자 몸에서 열과 두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업 중간에 나갈 수는 없었기에 버티고 진행했다.
보통은 훈련을 마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집까지 걸어갔지만 그날만큼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떨리면서 두통도 점점 심해져왔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생각하고 진통제를 먹은 뒤 바로 침대에 누웠다.
잠은 오지 않고 오한과 구토 증세까지 오기 시작했다. 침대는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고, 내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기에 '밤만 버텨보자' 라고 생각하며 진통제 2알을 더 먹고 다시 누웠다.
역시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밤 11시에 도저히 버티지 못해 밑에 층에 사는 간호사분께 연락을 했더니 바로 올라와주셨다.
당시 체온은 41도였고 걷기도 힘든 상태였다.
해열제 주사를 맞으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가시고 20분뒤에 바로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구토로 화장실에서 1시간 동안 나오지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키우던 고양이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내 손을 계속 핥아주었다.
진통제 두 알을 먹고 거실 소파에 누웠다. 결국 잠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옷을 입고 병원으로 갔다.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또 두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빨리 치료를 받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기다린 지 2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내 머리에서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1시간째부터 몰래몰래 새치기를 하거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예약을 했다면서 먼저 진료를 받는 것이 화근이 되었다.
참지 못하고 간호사한테 따졌고 다음 순번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체온과 혈압이 높아 바로 피검사를 하러 갔다. 역시나 예상했듯이 검사 결과를 받는 데까지 1시간이 걸렸다.
진단 결과가 나왔고 의사 선생님은 장티푸스 확진을 내렸다.
진료가 끝나고 항생제 주사를 맞고 약을 받은 뒤 나왔다.
오기 전 장티푸스 예방주사도 맞고 왔는데 걸려서 의문이었다.
밤이 되고 또다시 열은 40도에서 내려가지 않고 구토에 이어 복통까지 시작되었다.
밤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SOS에 연락을 취했고 수도까지 밤에 일반차를 타고 이동하기에는 위험이 커서 앰뷸런스를 연결해주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1대의 앰뷸런스가 있는데 현재 캄팔라(수도)에 있고 오려면 3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수도에서 이곳으로 오는데 3시간이면 금방이네’ 생각하고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새벽 3시 반이 지나서야 소리가 들려 내려갔다.
타려고 보니 앰뷸런스 뒷문에 큰 글씨로 ‘인천병원’이 쓰여 있었다. 아파도 전국에 한 대있는 앰뷸런스가 우리나라 것이라는 게 신기하긴 했다.
혈압과 체온 체크를 한 뒤 링거를 해줬다. 그 뒤에 안 떨어지게 꽁꽁 묶기 시작했다.
미라가 된 것 같았다.
한국 글씨가 차 안에 가득해있었고 마침 내가 한국인이니깐 이 친구들은 이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었는지 가는 내내 질문을 쉬지 않고 했다.
도착할 때쯤에는 내 앞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오전 8시가 돼서야 국제 캄팔라 병원에 도착했다.
바로 응급실로 향했고 항생제와 링거를 맞음과 동시에 검사를 진행했다.
응급실에 들어갈 때 간호사들은 나를 보고 ‘칭쳉총 니하오’라고 놀렸지만 난 대응할 힘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본 뒤 바로 입원을 해야 한다며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입원실로 안내했다. 입원실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하지만 베개와 이불이 없었고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었으며 모기가 굉장히 많았다.
저녁이 되고 병원식이 나왔는데......
현지식이 나왔다.
이틀 만에 밥을 먹는 사람에게 먹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래도 약을 먹어야 해서 조금 먹었다.
밤이 찾아오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한숨도 못 잤으니 제발 오늘만큼은 통증 없이 자고 싶었다.
밤이 깊어가는 동안 옆에 있는 환자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는과 동시에 불을 환하게 키고 잤다. 모든 게 신경 쓰여 늦은 새벽에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래도 불과 몇 시간이었지만 잠을 조금 자고 간호사분들이 새벽마다 약과 항생제를 해주어서 그런지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퇴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퇴원을 하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가 나왔는데 삶은 계란 2알, 식빵 2개, 소시지 2개 그리고 밀크티가 나왔다.
계란을 까는데 이럴 수가! 액체가 내 바지에 흘렀다.
당연히 삶은 계란인줄 알았는데 날계란 이었다.
화장실로 달려가 바지를 갈아입고 밀크티만 먹었다.
다 먹었을 때 마침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검사 결과 브리핑과 아직 증상이 많이 호전되지 않아 하루 더 지켜봐야 된다고 했고 할 수 없이 하루를 더 있게 되었다.
있는 동안 주변 환자 가족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주었다.
사실 한국에서 장티푸스 환자는 격리조치를 시키는데 다행히 여기는 하지 않아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밤이 찾아왔다. 점심 때 간호사에게 옆에 사람이 너무 시끄러워 잠을 못 잔다 말했는데 이게 효과가 있었다.
‘아, 이제 마음 놓고 잠을 잘 수 있겠구나’ 싶어 일찍 누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반대편에서 라디오를 틀고 노래까지 부르는 것이다. 정말 이곳이 너무 싫었다.
우리나라 병원이 정말 좋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지옥 같은 밤을 보내고 퇴원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오전 9시에 준비를 끝마쳤다. 의사 선생님이 늦게 오셔서 결국 12시에 하게 되었지만 수속절차가 빨라서 다행이었다.
차 안에서 영수증을 보니 어마어마하게 많은 금액이 나왔다. 보험이 없었으면 큰일날뻔했다.
6시간이 걸려 음발레에 도착했다. 돌아오니 집이 엉망이었지만 너무 힘들고 지쳐 청소를 하지 못하고 씻자마자 잠을 자기 위해 누웠다.
누워서 왜 걸렸는지 무엇을 먹고 걸렸는지 다시 생각해보는데 하도 많이 먹어서 추측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음날 일어나 몸이 개운해서 기분은 좋았다.
역시 건강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