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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 어느날 Nov 17. 2021

12) 무지를 인정하니, 그제야 책이 지혜를 주었다.

나는 문학도다.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영어까지 좋아하여 영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어릴 적부터 꾸준하게 참 많이도 책을 읽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자리 잡고 있던 우울감이 서서히 그 존재감을 키워가면서, 나 또한 '실용주의자'가 되어 책의 '실용성'에 의심을 품고 책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지금 책이나 읽을 때야?', '책 몇 권 읽는다고 당장 삶이 달라져?'와 같은 생각이 끊임없어 올라왔다.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책 읽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니면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다니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이었다.


정말 많이 고민했다. 책을 왜 읽어야만 하는가? 마음의 양식이니까? 그 당시 나에겐 헛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언어 능력과 사고력 증진? 그런 건 당장 필요한 게 아니다. 뇌 건강이나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인 근거에도 스스로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몇 개월 동안을 답을 찾고자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감조차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해답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 앞에 나타났다.


공황 장애 진단을 받은 후, 우연히 지인의 고민 상담을 해준 적이 있다. 다행히도 그가 처한 어려움은 내가 경험했었고 슬기롭게 극복했던 것이라, 그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하는 진심을 담아 조언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 어려움에 완전히 잡아먹혀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버렸고, '나는 그렇게는 못할 거야.', '그건 너니까 되는 거 아니야?', '지금 내 상황에선 답이 안 나와.' 같은 말들만 끊임없이 반복했다. 벽을 보고 말하는 듯한 기분에 슬슬 화가 났다. 그때 문득 그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다.


내가 경험한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나온 세월이 축적해온 가치관은 이미 내 안에 작은 세상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만 답을 찾고 있었다. 심리 상담을 받을 때도 그랬다. 선생님은 항상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 혹은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와 같은 조언으로 끊임없이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아, 해봤는데 안될 거 같아요.', '전 알 거 같아요.'와 같은 말로 스스로가 벽이 되어 다가오는 조언들을 다 쳐내고 있었다.


살아가다 보니 '나만의 세상' 만든 가치관이 종종 '고집' 되는  느꼈다. 게다가 나이가 들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어 나와 비슷하고  맞는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자연스레  생각은 주변 사람 모두가 공감하는 '세상의 진리' 되어갔다. 이들과의 대화는 '결국  생각이 맞아'라는 확신만 심어줄 뿐이었다. 그렇게 '꼰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나보다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했고, 내가 '맞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니'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 그 반대로 내가 '아니'라고 확신하던 걸 '맞다'라고 증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고, 이 넓은 세상에 네가 아는 건 손톱만 한 일부분이라고 일침을 가해주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결국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건 '책' 뿐이었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완전하게 인정했다. 나만의 세상에 갇혀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할 이유가 명확했고, 반드시 '책'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이후부터 상담 선생님의 조언에 '그렇게 해볼게요.'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책을 끊임없이 읽었다. 위대한 사람의 책 한 권은 나에게 그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주입해주었다. 점점 넓어진 나만의 세상은 비로소 내게 '할 수 있겠는데?'라는 희망을 주기 시작했다. 한 권에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내 뒤통수를 치며 충격을 준 그 한 문장들이 모여, 내 시야와 세상을 넓혀주었다.    


  



내 세상이 넓어지기 시작한 것은, 존 소포릭의 『부자의 언어』를 읽으면서부터였다. 이 책의 몇 문장이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끊임없이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으며 내 삶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 가지 결심을 한 게 있는데요, 전 매일 밤 삶이 달라지길 바라면서 빈둥거리고만 있진 않을 거예요."


저 문장을 읽는 순간, 나 읽으라고 일부러 써놓은 문장인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내 삶이 바뀌길 원하면서 내가 한 것이라곤 침대에 누워 눈물 흘린 일뿐이었다. 제발 내 인생이 행복해지길 기도만 했었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서 어쩔 수 없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달라지기로 다짐한 지금부터라도 나는 기도만 하지는 않겠노라 마음먹었다.


'빠른 결과를 원하면 좌절만 겪게 될 뿐이다. 하지만 5년간의 꾸준한 노력은 삶을 완전히 변화시킨다.'


'천천히,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의 위력을 나는 몰랐다. 이 지옥을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음에도 정작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하기보단, 마음만 조급하게 닦달하며 스스로를 재촉하고 다그치기만 했다. 당장이라도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에, '인생을 건 도박'이라는 비장함을 안고 받은 대출을 다 날려먹고 난 후에야 비로소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지금은 모든 것을 '10분', '30분'씩 내가 하루에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아무것도 아닌 듯 그냥 무언가 했던 내 하루의 '5분'이, 어느새 꾸준히 쌓여 '1시간' 그리고 '10시간'이 되었음을 몸소 느꼈을 때, '아,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긍정의 기운이 내 안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자주 조급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그럴 때면 항상 나에게 말한다.


'또다시 아프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천천히,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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