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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 어느날 Nov 29. 2021

내 소중한 삶을 걸고, 내가 하려는 건 무엇인가.

『The Summer Day』 by Mary Oliver

누가 세상을 만들었을까? 누가 백조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검은 곰은?
누가 메뚜기를 만들었을까?
바로 이 메뚜기, 방금 풀밭에서 튀어나와 내 손바닥의 설탕을 먹고 있는 이 녀석을.
위아래가 아닌 앞뒤로 턱을 움직이며 엄청나게 크고 복잡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 녀석을.
이제 메뚜기는 연한 색 앞다리를 들어 올려 얼굴을 철저히 닦고 있다.
그러고는 재빨리 날개를 펼쳐 멀리 날아간다.

나는 기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떻게 주의를 기울이고
어떻게 풀밭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는지, 어떻게 한가롭게 노닐며 축복받는지
어떻게 들판을 산책하는지는 안다.
그것이 내가 오늘 하루 종일 한 일이었다.
말해보라, 내가 달리 무엇을 했어야 했는가?
결국엔 모든 것이 죽지 않는가, 그것도 너무 일찍?

말해보라, 당신의 계획이 무엇인지
당신의 하나뿐인 이 야생의 소중한 삶을 걸고
당신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류시화 옮김-


나는 이 시를 오늘 우연히 접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려 펼친 순간, 그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한 인용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이 시의 한 구절이었다. 그래서 이 시를 찾아 읽었고, 한동안 내 삶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들어준 이 시에 관하여 오늘 꼭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늦은 퇴근 후 집에 들어온 지금, 남은 작은 과제들을 내일로 미루고 이 시와 내 삶에 관하여 다시금 곱씹고 있다.


내가 불안과 공황 장애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겠다고 다짐한 이후, 이따금씩 조급함과 우울감이 몰아쳐 올 때마다 내가 시도한 방법이 있었다. 그냥 나 자신을 멀리 떨어져서 보는 상상하기. 마치 드론으로 나를 촬영하듯, 저 멀리 떨어진 채로 서있는 나를 지켜보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더 나아가 하늘 위에서, 또 달에서 나를 지켜보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아주 심각하고 절망적인 지금의 나는 작은 존재에서 작은 점으로, 결국은 보이지도 않는 입자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상상력의 힘을 빌리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오늘 이 시를 접한 순간, 지난 세월 내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한 후회가 다시금 밀려왔다.  

저 멀리서 보는 나는, 마치 잠시 반짝였다가 꺼지는 별빛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왜 내 작은 실수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자책하여 자존감을 갉아먹었던가.  

왜 타인의 말 한마디에 우주만큼 넓은 상상을 해가며 불안해하고 죄책감을 느꼈던가.

왜 짧은 내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우려 노력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왜 온갖 이유를 다 찾아서, 진정 원하는 삶을 사는 건 사치고 욕심이라며 나를 어린애 취급했을까.

도대체 왜 더 넓은 세상을 갈구하는 나 자신을 사춘기 청소년 취급했을까.

도대체 왜 맘 속 깊숙이 올라오는 나의 열망과 내가 그리는 미래를 망상이라 단정하였을까.


무엇 때문에 '너무 늦었어', '나는 안될 거야'라고 스스로 내 인생의 틀을 씌웠을까.

무엇 때문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워했을까.

무엇 때문에 인생은 짧고 도전은 무모하다며,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어른이라고 자위했을까.




늘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변화는 무모한 것이었다. 번듯한 직장에서 괜찮은 월급을 받는 것에 성공했으니, 이대로 주변 사람들처럼 많은 것을 포기하고 굴곡 없이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삶이 이건가?' 같은 생각이 들 때마다, '사춘기 애도 아니고 무슨...', '그러다 망하는 거야...' 라며 나를 다그쳤다. 그런 생각을 단칼에 잘라내는 게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후회한다. 정말 강한 소망이 있었던 그 순간에라도 천천히 시작했다면, 지금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의 그림이 갑자기 머릿속에 그려졌을 때, 그 때라도 도전했다면 지금 내 삶은 어땠을까?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게 아무것도 안 해본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5년 좀 넘게 한 게 고작이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훨씬 많으며, 여전히 한해 한해 커가고 있다. 그런 내 안에서 자라나는 소망과 바람을 칼 같이 쳐내는 것이 정답일까.


모든 소망과 바람을 단념하고 맘 속 깊숙이 집어넣으면서, 먼 훗날에 미련을 갖는 것이 맞는 걸까.

내 삶이 소중하고 내 인생이 값지다는 걸, 꼭 몸과 마음의 병을 얻고 나서야 깨달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쩌면 이제야 세상을 마주하고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그릴 능력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단 한번 내 모든 것을 갈아 넣을 수 있다면, 반짝하고 사라질 내 인생에, 나의 행복을 위해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나에게 진지하고 경건하게 물으려 한다.

내 계획이 무엇일까. 내 하나뿐인 소중한 삶을 걸고, 내가 진짜 하려는 건 무엇일까.

이전 03화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늘 내 삶은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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