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러던 어느날 Dec 04. 2021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에서 나를 이겨보려 한다.

『죽음의 소용소에서』 by Victor E. Frankl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이 문장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거나 충격을 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 순간 내 행동에 관여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각인되어버린 이 한 구절이, 나를 참 많이도 변하게 해 주었다.


나의 하루는 늘 크고 작은 자극과 충동을 연료 삼아 흘러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감고 싶은 충동.

아무 생각 없이 보던 유튜브 영상에서 나온 음식을 갑자기 먹고 싶은 충동.


오늘도 술 한잔을 자극하는 빗방울. 

소비를 자극하는 내 맘에 쏙 드는 옷.


과거에 나는 그런 자극 및 충동과의 사투에서 늘 패배했다. '아니 나도 어엿한 직장이 있는데, 이런 것도 못 사?' 하며 욱하는 마음에 굴복했다. 꽤나 진지하게 충동에 맞서 하루, 이틀을 싸운 적도 있었다. 그래도 결과는 패배였다. '아니 이렇게까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데, 이건 사야 내 정신 건강에 좋은 거야.' 하며 합리화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과감하게 퇴사하기 위해, 나의 재무 상태를 건전화 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의 가장 강한 적은, 항상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에서 벌이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야식으로 만 원짜리 떡볶이 세트가 너무나도 먹고 싶던 날이었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나의 소비를 계획적으로 잘 통제해왔는데,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온 충동은 실로 강력했다. 배달 어플에 메뉴를 담았다가 빼기를 열 번 넘게 반복하며 자신과의 혈투를 펼쳤다. 역시나 '공간 안의 적'이 나에게 말했다. '아니 지금까지 잘했는데 이 정도는 포상으로 줘도 되잖아?',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만원도 못써?'와 같은 묵직한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십 분이 넘는 사투 끝에 나는 승리했다. 과거의 나와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누구나 안다. 야식으로 먹는 떡볶이가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 하지만 그 순간의 행복은 강렬하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같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나는 '순간의 행복'보다 '내일의 편안함'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자극적인 야식을 먹지 않은 덕에, 적당히 배고픈 상태에서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많이 먹고 자면 느껴지는 그 아침 특유의 불쾌감도 없었다. 매운 것을 먹으면 늘 요동치는 속도 편안했다. 어젯밤의 혈투에서 어렵게 쟁취한 승리가, 나에게 이런 편안함을 안겨준다는 것을 경험했다. 전리품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실감하면서, 나는 혈투에서의 승률을 높일 수 있었다. 


이제는 웬만한 자극과 충동을 담아내고 다스릴 만큼 나의 '공간'은 많이 넓고 깊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온전한 성장의 길로만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의 부작용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자극의 종류와 충동의 퀄리티를 가리지 않았다. 그것들과 무조건적인 혈투를 벌여 승리하고자 했다. '돈을 쓰게 하는 자극과 충동'은 반드시 꺾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박인 덕분에, 나의 성장에 필요한 자극이나 충동도 전부 쳐내고 있었다. 


스스로가 세운 3개월 간의 목표를 전부 달성했을 때,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사투를 벌이는 나를 발견했다. 이럴 줄 알고 나의 액션 플랜 첫 줄에 '만약 성공한다면 충분한 보상은 무조건 할 것'이라고 써놨음에도, '보상한다고 성공이 더 값지게 되나?', '보상을 안 한다고 성공이 실패가 되나?'와 같은 잔인한 말들이 '공간'에서 나를 공격했다. 


책을 사는 것과 교육을 받는 것에도 피 튀기는 내면의 싸움을 했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의 삶이나 가치관, 전문 지식을 단 돈 몇만 원에 접할 수 있는 것이 책인데, '이거 사면 네가 다 읽어?', '꼭 사야 돼?, 영상 찾아보면 있을 텐데..'와 같은 생각이 어김없이 '공간'을 채웠다. 인터넷 교육을 듣고 공부를 하고자 다짐한 그 순간에도 곧바로 '공간'에서의 사투가 시작됐다. '이 큰돈을 꼭 써야 돼?', '네가 공부를 한다고?' 같은 폭격이 시작됐다. 


물론 양질의 충동과 자극에는 무조건 긍정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다면 결국 그 충동과 자극도 양질이 아닌 게 되어버리니까. 그래서 나의 성장을 위한 자극과 충동에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 보다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나에게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샀지만, 충분히 그 값어치를 내가 누려야만 그제야 나의 승리인 것이다. 학구열에 불타 몇십만 원짜리 강의를 결제했다. 하지만 그 강의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나의 승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질의 자극과 충동에는 훨씬 신중해지고 진지해졌다. 


물론 이 또한 승리의 경험이 쌓일수록 쉬워질 것이다. 과거보다 지금의 내가 더욱 강해지고 성장했음을 느끼는 것은, 이미 여러 번의 승리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은 인생 또한 자극과 충동으로 가득할 것이며,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나의 순간과 평생이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는 행복과 만족, 그리고 성장과 성취가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치러지는 자극과의 혈투에서 나를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전 05화 '내 인생도 달라질 수 있어'가 착각이고 망상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