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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 어느날 Dec 05. 2021

지금의 작은 기적을, 과거의 내가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Something Good』_The Sound Of Music OST

Nothing comes from nothing
Nothing ever could
So somewhere in my youth or childhood
I must have done something good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일어날 수가 없지
그렇기 때문에, 내 어린 시절 어디선가
나는 착한 일을 했음에 틀림없어


별다른 이유 없이 일어나는 좋은 일을 '기적'이라고 한다. 물론 나는 세상에 기적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기적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가령 내가  복권이 1등에 당첨이 된다 하여도, 그것은 원인이 분명하다. 하필 그날에 내가 만사 제쳐두고 복권을 샀기 때문이다. 복권을 사고 안사고는 나의 선택이므로.


저 문장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복잡한 인간관계에서는 불가항력의 요소가 많지만, '어느 순간, 어디에선가, 나도 모르게' 했던 행동들이 훗날 기적과도 같은 값진 경험을 선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이기도 하지만, 내가 존중받을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내 마음을 더 편하게 했다. 억지로 선을 없애고 허물없이 지내려 노력하는 것보다, 얇은 선을 두는 사이가 나는 더 좋았다. 더욱이 회사 생활 속에서는, 더욱 예의를 차리려고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편이다. 회사에서 선을 허물고 '형, 언니, 누나, 동생' 하는 관계를 나는 매우 어려워했다. 내가 친절과 예의로 범벅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게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다.   


또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최대한 돕고자 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일은 대부분 기분 좋은 일이기에, 내가 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과도하게 희생을 하여 누군가를 돕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는, '투자라고 생각하지 뭐'라고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이 그 당시에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돌아올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보답을 받을 수 있었다.


불안, 공황 장애 진단을 받고 극도의 우울증과 싸울 때, 나는 나의 상태를 숨기지 않았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다 이야기했다. 그때의 나는 충분히 지치고 연소될 만했다. 그전까지 쉬지 않고 달렸으니까. 부끄러울 게 없었다. 만약 나를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의 삶에서 적어도 한 번은 경험할 힘든 순간에 그들은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할 테니까.


누구도 내 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던 그 시기에, 나는 기적과 같은 위로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많이 받았다. 내가 늘 친절하려 노력했던 사람들, 도움을 주려 신경 썼던 사람들이 이번엔 나를 도와줬다. 그 정도의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내 이야기를 듣는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하며 눈물을 흘려주었다.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으로 하루를 버티던 나에게는 정말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비단 인간관계에만 '기적'이 일어나는 건 아닐 것이다. 오늘 내가 달성한 목표. 오늘 내가 이뤄낸 성취들 또한 분명 과거의 내가 만들어낸 기적일 것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시작했던 그 순간부터, 끝이 어딘지 모르는 막연함을 벗 삼아 노력한 그 시간들. 계속되는 실패에 몰려오는 조급함과 허무함을 이겨낸 인고의 나날들. 그 나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도 모르는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기적'의 그날이 찾아왔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이뤄낸 작은 성공들은 그러했다. 어제까지 불안했고, 당일에는 반포기 상태였다. 아무 생각 없이 일과처럼 해나가던 그날에, 올 것 같지 않던 성공의 그날이 찾아왔다.


이로써 확실히 머리는 알고 있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모든 시작은 두렵다. 내가 마음속으로 세우는 목표의 90%는 여전히 지레 겁먹고 포기한다. 그러나, 하기로 했다면 일단 한다. 뭐라도 한다. 오늘 너무 귀찮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걸 한다.


'새로운 공부를 해보고 싶은데, 오늘 당장 시작하기엔 두렵기도 하고.. 조금 미루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관련 책을 주문이라도 한다. 그게 집으로 오는 시간까지 마음을 다 잡으면 되니까. 그때까지도 내가 할 수 없을까 봐 걱정되고 그게 나를 시작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냥 목차라도 읽고 아무 데나 밑줄이라도 긋는다. 이렇게 내가 오늘 해낸 작은 행동들이 비록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상관없다. 난 무언가 해봤고, 다음에 조금 더 잘하면 그뿐이니까.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에 발밑에 한 겹씩 쌓인 노력들이, 당시에는 내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하여도, 아주 조금씩 나를 밀어 올리고 있을 테니까.


오늘 무엇인가 '작은 기적'같은 성취의 기분을 한 껏 느꼈다면, 그것은 단순한 운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의 내가,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에,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작은 노력들이 오늘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라 믿었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도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자신 없어하는 내 마음을, 할 수 있는 작은 한 가지를 해보자고 다독인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러던 어느 날'에, 혹시 모를 기적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

이전 06화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에서 나를 이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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