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러던 어느날 Dec 10. 2021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나를 돌본 적이 있던가.

『나는 아직 나를 모른다』 by 허지원

'한 권에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마음의 유희를 위한 편안한 독서를 할 때의 내 마음 가짐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흡수하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읽다 보면,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는다는 느낌으로 편안하게 책을 즐기고자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장이 마치 나를 위해 쓰인 것처럼 책을 읽는 모든 순간 집중력이 자동으로 발휘되는 책이 있다. 허지원 교수님의 『나는 아직 나를 모른다』가 그중의 하나이다.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된 공황과 불안 증상이, 오로지 내 탓이라 여기며 흘러내리는 자존감을 방관하고 있을 때. 그리고 한 번 싸워 이겨내 보자고 어렵게 다짐했을 때. 이 책으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힘을 얻고 위로를 받았다.




사람들은 다리가 아픈 날이면 자연스레 다리 탓을 하고, 일을 하다 손가락이 베이면 손 탓을 하지만, 뇌에 기능에 문제가 발생해 생기는 여러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좀처럼 뇌를 탓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기력한 것, 불안한 것, 우울한 것을 그저 '나의 탓'으로 돌립니다.

나는 전형적인 '내탓러'였다.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문제가 터졌을 때도, '정말 대비할 수 없었을까? 내가 더 챙겼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며 내 부족함을 먼저 찾았다.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내가 더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건 아닐까'하며 억지로 나의 빈틈부터 찾았다. 그런 나에 대한 가혹함이 나를 더욱 성장시킬 거라 생각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덕에, 내가 예방할 수 없었던 공황 및 불안 증세가 시작됐을 때도, 당연히 내 잘못을 먼저 찾았다. '내 나약한 정신머리가 결국..', '현실을 깨부수지 못한 건 내 의지가 부족해서 아닐까..' 등의 자책으로 내 마음에 끝없이 비수를 꽂았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정신 건강의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원인을 찾으려 했어야 했다. 더는 버티지 못하는 마음을 나약하다 탓할 게 아니라 쉬어가자고 보듬어 줬어야 했다. 적어도 '나를 위한 남 탓'정도는 억지로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남 탓'을 시작해봤다. 갑작스러운 자괴감과 자책감이 몰려들 때, 그 순간은 아주 활발하게 남 탓을 했다. 난 최선을 다했는데, 적절한 가이드도 없이 일을 시키는 사람 탓. 이기적이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만든 회사 탓. 모자란 듯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 탓.


내 잘못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죄책감과 좌절을 사서 느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신나게 남 탓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더라. 그제야 현상을 이성적으로 보려 시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까지 애쓰지 맙시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을 합시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마는 겁니다.'
저 스스로도 언젠가부터 주문처럼 외는 말이기도 하고, 치료 장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표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여태 말했듯이 '어쩌라고'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어쩌라고' 하면서 기억과 사고를 다잡으세요.

최악의 경우를 끊임없이 상상하며 스스로를 불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인생을 살았다.  방법이 실제로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  맘을 편하게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데, 내일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잠도  잤다. 오늘은 쉬는 날인데, 발생하지도 않은 내일의 문제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오늘을 망쳤다. 하루하루가  편할 날이 없었다.


아직도 습관을 완전히 고쳐내진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불안이 갑작스레 몰려올 때마다 강하게 고개를 휘젓는다. 발생할 문제는 내가 불안해하지 않아도 발생하니까. 그리고는 소리 내서 말한다. '난 최선을 다했어. 할 만큼 했는데 어쩌라고.' 불안감이 가라앉을 때까지 계속 말한다. 아직 나는 모든 면에서 감정을 다루는 데에 미숙하니까, 생각만 해서는 조절이 어렵다.




다만 지금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주먹을 딱 두 개 쥔만큼의 크기로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해 준 나의 기특한 뇌를 보살펴야 합니다. 운동, 공부, 심리치료와 약물 복용 등등 그게 무엇이든 간에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다면 가용한 옵션을 최대한 확보해봅시다.

공황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몸과 마음이 급속도로 무너졌던 순간들. 가슴이 갑자기 조여 오고 숨이 가빠오던 순간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무의식적인 폭식으로 지내던 나날들. 절망과 자책만이 가득해 울기만 하던 시간들.


죽을 만큼 돌아가기 싫은 순간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했던 나의 모든 노력들을 강박적으로 지속하고 있다. 독서를 안 하면 불안하고, 엔도르핀을 선물해주는 운동에 집착한다. 세로토닌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트립토판과 몸에 좋은 음식들을 매일 챙겨 먹고 있다. 요새는 자기 전에 침대 맡에서 명상을 한다.


반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행동들이다. 그런 것들을 지금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하고 나서야 잠에 든다. 그게 나를 지옥에서 구해준 '치료제'들이었고, 여전히 나를 보살피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사실 희망을 경험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는 개인의 주체성입니다. 내가 내 삶이 애틋하고 짠해서 스스로를 잘 먹이고 재우고 입히려고 할 때, 그리고 당면한 문제에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 나서겠다 결심할 때, 어느 순간 낯설고 간지러운 기대가 생긴다면 그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아니라 '불운과 부조리 속에서도 내가 지금 뭐라도 노력하고 있어서 느끼는 가치'입니다.

성공할 가능성이 너무 낮기 때문에 희망을 버린다고들 하지만, 틀렸습니다. 심리학적으로 확률은 희망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행동만이 내 희망을 정의합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나를 돌보려 한 적이 있을까?' 살면서 내가 일궈낸 많은 성취들과 인생의 작은 성공들에 대해 온전히 나 스스로의 공으로 인정하고 칭찬한 적이 있었나? 별로 없었다.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도 다 하고 사는 건데 그 정도로 나를 칭찬하는 건 유난스러운 일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혹은 내 가족을 위한 명분에 의해서가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있을까. 정말 살아보고 싶은 인생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순간에도, 실패를 확신하며 온갖 합리화를 하는 것에 더 능숙했다.


내 인생을 스스로 설계해 나가는 힘든 여정에, 나부터 내편이 되기로 다짐했다. 나만큼은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내 작은 성공도 아낌없이 칭찬했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며, 내 몸과 마음에 해가 되는 것들을 멀리하고자 했다. 그리고는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보기 위해 천천히 도전해보기로 했다.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해나갔다.


지금회사로 출근하는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나에게 인생 최대의 고비를 선사하고 깊은 상처를  그곳을 매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나의 하루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에 희망을 느낀다. 퇴근 후의 한두 시간,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작은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30분씩 책을 읽고, 1시간씩 공부한다.  시간이 누군가에겐 짧아보일  있지만, 그렇게 지내온 나의 현재는 과거와  많이도 달라졌다.


내가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느낀다. 이건 정말이다. 가능성이 낮다고 느껴져도, 해보는 것과 시작도 안 하고 접어버리는 것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도 실패의 연속이며 그로 인한 순간의 허무함이 느껴질 때도 많지만, 무언가 노력하는 나의 오늘이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해 준다.  



이전 07화 지금의 작은 기적을, 과거의 내가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