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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던 어느날 Dec 11. 2021

공황과 무기력의 여정 끝에 훨씬 성숙해진 내가 있기를.

『문제는 무기력이다』 By  박경숙

무기력했던 시간도 당신의 인생에 가르침을 남길 것이다.
아름다운 영혼으로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 없이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숱한 어려움과 아픔을 겪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기치 않은 인생의 복병을 만나 고통을 겪고 우울의 골짜기를 지나온 사람은
깃발 나무처럼 남이 갖지 못한 귀한 것 하나를 더 가졌다고 믿길 바란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공황장애. 그것으로부터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던 4개월. 또 그것으로부터 맞서 싸워 보자고 안간힘을 쓰던 6개월. 일 년 남짓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인생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순간과 인생 가장 성숙해진 순간을 함께 겪었다.


평생 본 적 없는 온몸의 두드러기,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조여 오는 가슴과 가빠지는 호흡, 급속도로 불어버린 몸무게, 굽어지는 자세 등의 신체적인 고통이 나를 절망케 했다. 또한 끝없는 불안과 좌절에 눈물 흘리던 날들, 바닥으로 내려가는 자존감과 작은 것에도 몰려오던 자책, 희망은 없다고 확신하던 부정,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던 무기력 등의 정신적인 붕괴가 나의 삶은 실패했다고 소리쳤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나를 옥죄던 것들을 하나둘 내려놓고, 내게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 되찾기로 결심했다. 회사에서의 평판과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포기했다. 휴직으로 잠시나마 일과 동떨어졌고, 꾸준한 운동으로 몸 건강을 되찾았다. 독서로 내 인생의 불안을 위로받고, 삶에 희망이 있음을 깨달았다. 되찾은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으로 삶의 방향을 재정비했다. 거기에 작은 실천과 조그마한 성취로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물리적인 환경은 그대로이다. 같은 집에 살고 있고, 같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여전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고, 출근길은 매일 지옥 같으며, 매일 퇴사를 꿈꾼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바꾸고 말겠다는 의지가 지금의 내 마음속에 가득하다. 더 이상은 갑자기 가빠지는 호흡에 당황하지 않는다. 가슴이 조여 오면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다. 물리적인 환경은 그대로일지언정,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삶이 아직은 너무 멀다. 하지만, 너무 멀게만 느껴져서 좌절하고 포기한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은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과연 내가 공황 장애를 겪지 않았다면, 인생 최대의 무기력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있을까? 현재의 삶과 꿈꾸는 삶의 괴리에서 좌절하고 고통받으며 무너져 내렸다. 그런 괴리를 느끼지 않았다면, 과연 내 삶을 바꿔보자는 발버둥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타인 혹은 회사가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노력과 투자를 해보자고 다짐하며 실천하고, 또 성취를 경험하며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 있다. 지금 현재 나의 시간은 쳇바퀴 돌 듯 살아가며 현실에 안주하던 과거의 내 시간보다 훨씬 값어치 있다. 180도 바꾸고 싶은 내 삶의 방향을 오늘도 난 0.1도씩 돌리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이 외롭고 힘든 시간에 끝에, 그때보다 훨씬 행복하고 성숙한 내가 있을 테니까.




고난을 통과한 사람만이, 무기력의 처절함을 겪어낸 사람만이
그 고통의 골짜기에서 울고 있는 다른 사람을 볼 수 있고,
무기력하기 이전의 자신 즉 진짜 자기를 찾고자 노력할 것이며,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을 점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언젠가는 지금 당신이 겪은 무기력을 감사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지나온 여정, 그 모두를 긍정하라!

내가 가장 성숙해졌다고 느끼는 부분 중의 하나는,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의식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차단하며 살았던 나는, 그 모든 고통을 버티고 살아온 나 자신이 몇 안 되는 자랑거리였다. 때문에 힘듦을 호소하는 타인의 감정을 겉으로만 이해하는 척했다. 말로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버티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곤 했다.


회사에는 그런 '어른'들이  많다. 구성원이 정말 많이 힘들어할 때도, 말로만 위로하며 어른인 척하는 사람들. 본인만 산전수전  겪었고,  끝에 회사에서 살아남았음이 유일한 자랑거리인 사람들. 그런 정신적 고통을 그대로 대물림해주고 있음에도,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한심해하는 사람들. 그걸 억지로 버텨내는 것이 정신력이고  사람 됨됨이라고 판단하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을 보면 이제는 괜히 슬프다. 나중에 똑같이 대접받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절대로 저런 어른은 되지 않겠노라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나는 회사에서 '진짜' 어른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분은 나의 아픔을 전부 이해하는 것처럼 말하지도 않았고, 본인의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정도만 표현했다. 그렇다. 본인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모든 열정과 노력을 불태워 높은 위치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간 사람. 어느 날 갑자기 삶에서 놓쳐버린 것과 소중한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작된 마음의 갈등. 그것을 지키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순간들. 그럼에도 삶은 불행해지지 않으며,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희망을 주는 어른.


이제야 나도 다른 사람의 아픔에 조심스러워졌다.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괜찮아'하며 쿨내 나는 반응은 더 이상 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으며, 그 순간까지 혼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아왔는지 이제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고통에 좌절하여 발버둥 칠 힘도 없는 사람들에게, 나는 조심스레 나의 경험을 공유한다. 나를 보며 조금의 희망이라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훌륭한 본보기이자 큰 희망은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조금의 가능성은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확신할 수 있다. 고작 반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훨씬 더 성숙한 사람이라고.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입으로만 지껄이던 과거의 나는 없다. 내가 십수 년 버텨왔듯이, 그들도 십수 년을 버텨내며 살아온 것이다. 내가 결국 무너졌던 것처럼, 그들도 잠깐 쉴 때가 된 것이다. 또한, 내가 새로운 희망을 찾아 꾸역꾸역 버티고 나아가는 것처럼, 그들도 충분히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것에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더 좋고.


인생 최악의 순간을 돌아보며 내가 감사함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또한 지금은 큰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말해도, 반년이 더 지난 후의 나는 어떠한 모습일지 잘 모르겠다. 다시 또 과거로 돌아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내가 느끼는 이 확실한 성숙함이, 아직은 끝나지 않은 나의 공황과 무기력의 결말이 비극은 아닐 것이라는 강한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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