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잘하는 것들을 모아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 되는 법
명란 솥밥을 좋아합니다.
뜨겁고 무거운 솥뚜껑을 들어 올리면 보이는 뽀얗고 향긋한 솥밥. 봉긋한 솥밥에 주걱으로 펴서 잘 비비고 그릇에 덜어요. 수저로 한입 - 입에 넣으면 고소하고 은근하게 올라오는 여러 가지 맛의 여운이 참 길게 남는 저의 인생 요리예요. 제가 솥밥을 좋아하는 이유는 손이 많이 가지만 정성을 들이면 보답받는 음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 삶이 노력을 보답으로 받는 선물(솥밥)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늘 생각해왔는데요. 여러분께도 선물 같은 이 요리를 공유하고 싶어요. 그러니 여러분께 저만의 솥밥 짓는 방법을 알려드려 볼게요. 맛은 제가 보장해요. 시간을 들여도 보답받는 음식을 드시고 싶을 때 지어보시면 어떨까 해서 레시피를 이곳에 놓아둡니다.
무쇠솥에 쌀을 씻어 쌀을 불려둡니다. 그사이 물을 끓여 다시물을 만들어둬요. 불린 쌀의 물을 버리고 참기름을 넣어 뽀얀 물이 우러나오도록 볶아요. 만들어둔 다시물을 붓고 솥을 센 불에 올려줍니다. 5분가량. 끓여주고 중불로 10분간 가열 해준 뒤 약불로 줄여요. 밥을 위아래로 고루고루 섞어줍니다. 10분간 뜸 들이기 전 명란과 파를 올려줍니다. 완성된 솥밥을 위아래로 고루 저어준 뒤 그대로 먹어도 맛있지만 김과 아보카도, 달걀 프라이도 곁들이면 더욱 근사합니다.
너 이러다 죽도 밥도 안되는 거 아니야?
다소 복잡한 레시피대로 솥밥을 뚝딱 지어내는 꼼꼼한 사람이지만 삶에선 언제나 무수히 많은 시도 끝에 매듭짓지 못한 것들이 많았어요. 무언가를 시작하면 중간은 가는 듯 꾸준하게 흐름을 이어가지만 결론은 늘 대단한 성과 없이 그치고 말았거든요. 학생일 때도 적당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고 성인이 돼서도 두루두루 취미생활이 많고 재주 많은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결국 특별하게 이뤄낸 것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결혼 후에도 그 흐름은 지속적으로 이어졌어요. 서른 살 넘어서도 마찬가지. 누가 잘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글쎄요. 누군가가 마음에 상처를 준 ‘너 그러다 죽도 밥도 안되는 거 아니야.’ 대신 그저 취미 부자 정도로 저를 표현했습니다. 물론 저린 마음을 두 손으로 꾹 누르면서요. 뜨개질, 바느질, 인테리어, 글쓰기, 그림, 요리, 캠핑… 장래 희망은 대차게 추억 재벌이었지만 취미 부자인 탓에 통잔 잔고는 늘 마이너스였어요. 작년 이맘때였어요. 내후년이면 마흔이 되는데 아직도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없다니. (게다가 통장 마이너스도 늘었음.) 크게 번아웃을 겪고 마음과 몸이 상하고 나서 돌아서서 나를 다독이는 사람으로 살기로 선택하던 날. 그럼 잘하는 거 말고 그럭저럭 하는 것들을 찾아보고 리스트도 작성해보자 했습니다.
1. 그럭저럭 사진을 찍는다.
2. 그럭저럭 내 마음을 표현하는 글을 쓴다.
3. 그럭저럭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깊게 호통하는 것을 좋아한다.
첫 시도는 여기에서 멈췄습니다. 적어놓은 세 가지 ‘그럭저럭 리스트’를 보고 그만두거나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온 일이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해온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누가 보면 하소연이라 여길 푸념, 결심, 위로, 극복 같은 것들을 타닥타닥 써 내려갔죠. 누군가의 말처럼 죽도 밥도 되지 않은 어떤 것이 은근한 화구 위에서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운영했던 블로그에 접속해서 예전부터 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되짚어보았어요. 엉성하고 서툴어 보이는 바느질. 맞아요. 저는 바느질을 오래 좋아했습니다. 한 땀 한 땀 제 손을 만들어내는 무언가에 성취를 느끼고 즐거웠거든요. 돌이켜보면 저는 바느질을 그만둔 일이 없습니다. 몇 년간 바느질을 하지 않았지만 지난 크리스마스에 바느질을 했습니다. 조금 서툴렀지만 쌍둥이 아이들에게 줄 인형을 기어코 완성했어요.
저는 저의 중요한 속성을 발견했습니다. 뭐하나 확실하게 딱 잘라 무언가를 그만두지 않는 저를요. 꾸준하게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고 무언가를 배울 때 남들보다 오래 걸리지만 마음속에 잘 간직하고 담아두었다가 언제든 꺼내 쓰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제 삶에서 가장 오랫동안 좋아하고 배워온 것이 글쓰기이고 사진 찍는 일이고 소통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글과 사진과 소통은 대체로 실패로 귀결되는 일들은 아니죠. 무엇인가를 구현하기 위한 툴에 가깝습니다. 이 세 가지를 모으면 어쩌면 나… 라는 브랜드를 두루두루 원만하게 운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어요.
오래 뜸을 들여보기로 결심했어요.
매일 한 장의 사진을 찍고. 손바닥만 한 글을 써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합니다. 이 세상에 사진을 끝내주게 찍는 사람은 정말 많죠. 저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물론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나 나만의 주제로 그만두지 않고 꾸준하게 이일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 겨울날 한 스타트업 기업의 콘텐츠 에디터님께 메시지를 받습니다. 캠핑이라는 주제로 글을 한편 써줄 수 있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한 겨울의 바다 앞에 카라반을 대놓고 창문을 열고 추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고 차가운 어묵꼬치를 입에 넣으면서 아이들과 웃었던 경험에 대해 썼습니다. 그리고 원고비로 받은 반찬거리 한번 사면 소진될 만큼의 돈을 인출해 제가 가진 가장 좋은 지갑에 넣어두었습니다. 일주일 뒤 매주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회와 에디터라는 이름도 생겼습니다. 누군가 요즘 뭐하고 지내?라고 물으면 질문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죽도 밥도 안될 것.’에 대해 ‘돈을 받는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기쁨이 나를 휘감았고 말이죠.
몇 달간 행복이라고 여긴 상태가 저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네. 스쳐 지나갔어요. 일하던 스타트업 플랫폼 상황이 틀어지면서 일이 끊어졌습니다.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돈을 벌지 못하는 낙담의 골짜기에서 허우적 되고 있을 때도 인스타그램에 매일 한 장의 사진과 손바닥 만한 글을 썼습니다. 누군가가 꼭 나를 발견해 줄 것만 같았거든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쌀을 원재료로 한 유기농 식재료로 기업 공식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는 일로 한 스튜디오 대표님께서 저에게 연락을 주셨어요. 해당 기업은 푸드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 만드는 요리 콘텐츠 말고 특별한 콘셉트를 찾고 계신다고 했어요. 요즘 붐인 캠핑 콘텐츠를 제가 만들고 있으니 거기에 엄마의 관점으로 간단 캠핑 요리를 제작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시는 겁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하겠어요! 저 잘할 수 있어요!’ 하고 일단 손을 번쩍 버쩍 들고 제가 대표님께 하나 여쭈었어요. ‘전문가가 아닌 저에게 연락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고요. 대표님은 오래전 제가 아토피를 앓는 첫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기억한다고 하셨어요. 밀 알레르기가 있어 어묵도 두부도 모두 빚어 먹이던 저를요. 블로그에 올려진 사진과 글만으로 저를 생생히 이미지화해서 기억해주고 계셨어요. 그렇게 죽도 밥도 아닌 어떤 사람도 누군가에게 정성 어린 명란 솥밥처럼 기억될 수 있는 거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죽도 밥도 안될 것 같다면요. 조금 뜸을 더 들여보시면 어떨까요? 아니면 물을 더 부어볼 수도 있고요. 다시물이나 재료의 선택을 바꿀 수 있어요. 다만 내가 좋아하는 재료, 지금 현재 나의 상태를 잘 알아야겠죠?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은 상태가 ‘이미 무언가가 될 수 없는 상태’라고 단정 짓지 말아야겠구요. 이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근사하지만 낯선 재료보다는요. 나라는 재료를 은근하고 꾸준하게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나의 과거를 되짚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나라는 상태에 물을 더 넣어 죽을 만들지 아니면 불을 조절해 진밥을 만들지 위에 어떤 고명을 얹어 특별한 밥이 되고 싶은지 선택할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죽도 밥도 아닌 나를 특별한 음식으로 만드는 건 ‘나’라는 요리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