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너프엘라 Aug 09. 2021

무척 주관적인 가난에 대해서

돈을 미워하면서 사랑하면 벌어지는 일








태어나 처음 만나보고
배워본 가난







 12년 만에 출근하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전에 12년 전으로 돌아가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시작을 아신다면 저의 지금을 더욱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여러분. 돈을 미워하며 살아보셨나요? 어릴 적 가난을 경험해보지 못한 저는 결혼 후 아주 오랫동안 돈을 그리워하면서도 미워했습니다.


돈에 대해 결핍이 없이 자라온 저는 늘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반듯하게 자란 남편을 동경하듯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런 남편과 함께 있으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라 생각했습니다. (가난에 대한 경험이 없었으니 그 당시 저는 가난이 형체모를 무색무취의 무언가라 추정했던 것 같습니다.) 자라는 내내 물 한 방울 묻지 않도록 보송 거리는 손으로 지내게 해 주셨던 엄마께서는 딸이 그토록 좋은 사람이라니 결혼을 반대하지 않으셨지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 너도 살아보면 엄마 마음 알 수 있을 거야.' 라구요.


그렇게 흙바닥에 반듯하게 깔아놓은 예쁜 피크닉 돗자리 같은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흙바람이 입이며 코며 온 얼굴을 뒤덮는 생활. 예상보다 훨씬 고달픈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중한 첫 아이 와니가 저희에게 왔어요.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손에 쥔 소중한 유리구슬처럼 손바닥을 펼치면 바로 들여다볼 수 있는 애틋하고 투명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보통 아이들보다 자라는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던 첫 아이에게 발달 재활 치료가 필요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최소한의 치료만으로도 빚이 쌓여갔어요. 남편의 벌이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이가 차차 성장 나아지고 있어서 나중에 우리에게 남는 것이 가난뿐이 아닐 거라는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의 고난이 처음에는 불편했고 어느 시점부터는 고통스러웠으며 나중에는 포기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도무지 극복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치료실에 다니느라 온 하루를 아이와 붙어살아야 하는 엄마라 돈을 번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애꿎은 돈을 미워하며 살았습니다. 정치인을 탓했고 사회의 구조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능한 제 처지를 비난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저를 미워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도 나아지지 않은 상황이 제탓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상황이 나아졌냐고요? 아니. 전혀요. 감정적으로 절벽 끝으로 끌려가고 있었으며 재정적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태어나 처음 만난 가난은 아주 주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안에 아주 많은 강박을 만들어냅니다. 이를테면 마트에서 눈을 반짝이는 아이에게 '하나만. 하나만 살 수 있는 거야.' 하고 언제나 아주 무섭게 이야기하곤 했어요. 절약은 삶에 유익한 것이지만 제 절약은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한 겨울에 아기를 키우면서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춥게 살았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늘 참아야 했습니다. 옷이 없고 차비가 없어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적도 있어요. 축의금만 간신히 보내고 내 스스로는 친구 결혼식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나은 가난은 무척 아프고 슬펐습니다.










 저는 요즘 오래된 옷을 잘 입고 다녀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주눅이 들어 살았지만 제 옷엔 주눅이 뭍어나지 않거든요. 오래되었지만 좋아하는 블라우스를 입은 저는 행복한 마음으로 친구를 만났어요. 기꺼이 커피도 사고 밥도 샀습니다. 저는 여전히 돈을 아끼지만 아껴야 할 때와 써야 할 때를 이제는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친구는 제 얼굴에 그늘이라곤 찾을 수 없다고 같이 손을 꼭 붙잡고 기뻐해 주었습니다.


예전의 그 가난의 불편함이 제 삶에 아직도 존재하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아직도 제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벼락 거지인데다 부채가 자산보다 훨씬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종종 불편합니다. 그렇지만 그 불편함이 저를 이끌어준 방향을 좋아합니다. 어렵고 낯선 곳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 불편함이 고맙습니다.


저는 세 달 전 첫 월급을 받았을 때를 기억합니다. 저는 그램수가 가격에 의존하지 않고 보기 좋은 고기를 샀어요. 와니가 저에게 월급이 얼만큼이냐고 물었을 때 저는 웃으며 와니가 좋아하는 음료수 몇 가지를 냉장고에 채워두고 말했습니다. 늘 하나만 고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월급을 받는다고 말이죠. 냉장고를 열며 웃는 와니 표정에 늘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서도 주름졌던 제 마음도 다림질이 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큰 아이가 저에게 말합니다. 하나만 고를 수 있는 것도 좋았다고. 하나만 고르라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다고요. 제일 좋아하는 것을 고를 수 있었으니까. 라구요. 저의 주관적인 가난은 제일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방법을 알게 했고 주어진 한계를 확장하는 법을 배우게 했습니다. 이제 주관적인 가난이 불편할 뿐 아프지 않은 이유입니다. 12년 만에 출근하는 일이 어렵고 힘들지만 더 이상 불가능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첫 월급을 모으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는 건. 첫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그동안 나를 부양해준 누군가를 위해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누군가의 선견지명 아닐까요?


12년 만에 출근하는 저의 첫 월급 플렉스 리스트


1. 엄마에게 네일아트 해드리기.

2. 그동안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커피 사주기.

3. 이모들에게 작은 용돈 봉투 나눠드리기.

4. 똑같은 것 고민하지 않고 세 개 구입해서 아가들에게 선물하기.

5. 남편이 갖고 싶었지만 구매를 망설이던 것들을 망설임 없이 구매해서 선물하고 이렇게 말하기.


12년 만에 출근하는 제가 생각하는 일하는 게 좋은 이유 중 단연 첫 번째는요. 월급은 사라질지언정 분명하고 확실한 자부심이란 감정이 제 마음속에 확고하게 자라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무색무취의 정체모를 가난이라는 애매한 녀석이 어찌해볼 수 있는 흐릿한 감정이 아니라는 걸 저는 알아요.






이전 02화 여러분이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