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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프엘라 Oct 24. 2021

오랫동안 집에서 머무른 당신에게

프롤로그













전업주부로 오랫동안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았고 집을 돌보았어요.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흘러 부모님을 돌볼 일들도 생겨났습니다. 결혼을 하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룬다는 건 이렇게 누군가를 돌보는 일의 순환이라는 걸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출근도 퇴근도 없는 돌봄에 열심히였습니다.


집과 사람을 돌보는 일은 세상에서 가짓수가 가장 많은 일이에요. 그리고 생색이 나지 않는 일이기도 하죠. 그러나 손을 떼면 어마어마하게 티가나는 일. 그렇게 집과 사람을 돌보는 일을 오래 해온 듯 해왔습니다. 반듯하게 닦인 마룻바닥, 제자리에 놓인 물건들, 유리구슬처럼 반들반들 윤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한시도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 번씩은 익숙한 길에서 있으면서도 길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랬어요. 집에 머물던 마음이 집에만 머무는 사람이라고 폄하받을 땐 시선을 집으로 두지 못하고 자꾸 먼 곳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저는요. 문득문득 억울했어요. 엄마를 통해 ‘너희 딸은 아직도 집에서 노니?’ ‘집에서 애들만 키우는 게 최고지. 편하지. 뭐’ 하는 소리를 듣고 나면 복잡한 마음이 웅얼거렸습니다. 종종 머리가 아득하기도 했어요. 머릿속으로 제가 하는 수많은 일들을 헤아리고 반박하다가도 포기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쳤어요. 나는 집에 있는 사람. 그런 것이 부끄럽냐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면서도 어딘가에 직업이 무어냐고 물으면 조금은 소심하게 작은 글씨로  ‘전업주부’라고 밖에 적을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가면서도. ‘전업주부’라는 단어 앞뒤로 무언가를 덧붙이고 싶어 늘 마음이 종종거렸습니다.











이게 다가 아닐 것 같은데






저는요. 다들 잠들고 노란불 빛의 스탠드만 숨을 쉬는 어떤 밤이면 말이에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보고 있으면 가슴 뻐근하게 행복한 날들이 있는가 하면 빈 운동에서 텅텅 소리를 내는 공이 돌아다니는 겨울밤처럼 마음이 시린 날들도 퍽 많았습니다. 언제나 다정한 가족들과 눈을 맞추고 웃다가도 혼자 있는 밤. 내 이름이 자꾸 없어져서 혹은 내 이야기가 없어 슬픈 마음을 어쩌질 못했어요.


집안에 머물지 못하고 자꾸 밖으로 새어나가던 시선과 마음은 그래서였겠죠. 그런 날들을 잘 털고 모아 글을 썼습니다. 온 얼굴이 젖도록 눈물 많이 나는 날. 고이 펼쳐서 얼굴도 쓱쓱 닦고 코도 팽팽 풀 수 있는 손수건처럼 쓰려고 그 순간들을 잘 모아두었습니다. 다들 잠든 밤 소파에 작게 쪼그리고 스탠드 불빛에 기대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면 길을 잃고 헤매던 마음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돌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집을 돌보는 일은 소소하게 즐거웠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가슴 뻐근한 행복이 있었으며 부모님과 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보살피는 일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돌보았던 시간이 부질없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과 노력이 제 인생에 스며들었으니까요. 아이 셋의 엄마이자 가정주부 그리고 때로는 공부하던 학생 한때는 일용직 노동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것들을 들여다봅니다. 저는 저를 돌보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만 머무는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책을 읽도록 글을 쓰도록 부지런히 독려하고 결국 이 자리에 있으니까요.












12년 전의 나를 돌보고 싶어요.




한 번씩 12년 전의 내가 만나고 싶어 그때의 글을 찾아봅니다. 작게 움츠린 어깨가 안되어서 꼭 안아주고 돌아와 현재에서 글을 쓰는 순간. 12년 전의 나를 만나는 그 순간을 사랑합니다. 그 순간들의 반복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작은 성공의 경험도 없는 사람이 출근하기까지 꼬박 12년이 걸렸습니다.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찾는데 걸린 시간이기도 합니다. 마음속에 드리워진 그림자들이 자꾸 당겨지고 구겨져 주름을 만들 때 주름진 곳들을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판판하게 만드는 시간들이었어요. 그렇게 조금 판판하고 편해진 마음으로 자꾸 창밖으로 시선이 새어나가는 여러분을 돌보고 싶어 쓴 이 글들을 썼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눈동자가 한 곳에 안전하게 오래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여러분은 마음은 어디에 머물러있나요? 그 마음 잠시 여기 머무러주신다면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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