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돌이
죽돌이
퇴근시간을 조금 앞두고 스테판이라는 영국 동료가 신이 나 보인다. 퇴근 후 시내 펍에서 축구경기를 보며
맥주 한잔 하려는데 조인하라는 손짓을 보낸다. 잉글랜드 리그컵 4강전이 있는 날이란다. 토트넘과 리버풀의 경기.
우리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 경기라 솔깃했다. 시원한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함께 소리 지르고, 함성과 동시에
탄식하며, 분위기에 취하고, 기분에 취해서, 반쯤은 앉은 채 반쯤은 선채로 맥주잔을 기울이며 응원가를 외치 모습.
언제가 마지막이었던가. 그 아련한 기억조차 흐릿했다.
대학시절.
공강시간 그 짧은 틈을 타 서둘러 달려간 당구장에는 늘 여유롭게 그곳을 지키며 먹잇감을 찾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 시간에는 아무도 없겠지 하며 열어젖힌 동아리 방문 뒤로 늘 악기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친구들.
우리는 그들을 죽돌이라 불렀다.
스테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퇴근하며 발길을 옮긴 곳은 지하 헬스장. 오늘도 몇 명 안 되는 죽돌이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도 나를 죽돌이라 부르며 맞아 주었다. 음악 소리도 없는 조용한 헬스장.
몰아 쉬는 거친 숨소리와 드문 들려오는 날카로운 쇳소리는 서로의 대화 수단으로 충분했다.
가끔 거울을 통해 마주치는 눈빛은 서로에 대한 격려이자 위로이자 응원가임을 죽돌이들은 알 수 있었다.
죽돌이가 된 다는 것.
늘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잠시 떠난 원래 자기 자리로 복귀한다는 것.
이것은 톡 쏘는 시원한 맥주 한잔과 같다.
나의 오늘도 어제와 같은 일상에 감사하며, 행복한 하루에 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