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nsic unit [법정신의학 입원 병동]에서 일한지 5주가 되었고 이제 다음주가 마지막이다. [글을 마무리하는 건 6주를 모든 마친 후다] 학교 다니던 시절 내내 정신과 지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노출되어본 적이 없던 영역. 한국에선 정신과 레지던트 조차도 경험해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일하면 할 수록 보통의 의대생이 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낀다. 정신과 진료는 환자와 어떤 맥락에서 만나는 지에 따라 정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 증상의 급성도가 다르고 가능한 치료적 수단이 다르고 치료의 목적이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혈압이 높으니 혈압약을 준다, 는 기본적 전제가 때로는 흔들린다. [이건 또다른 주제] 미디어의 자극적 상상과 상징적 묘사에서 벗어나 실제 주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병원에 오고, 치료 받고, 나아지거나 나아지지 않는지에 대해 보면서실습이 어떤 선입견을 깨는 역할만 하더라도 훌륭한 것 같다. 약물 조절이나 치료적 면담에 있어 자신의 추론과 판단 근거를 갖추는 일에 대해 이해하는 건 수련 과정 내내해도 모자랄 것 같다.[이제 1년차 마쳐가는 레지던트의 아무말] 입원병동, 외래, 응급실, 컨설트 같은 다양한 세팅에서 치료적 목표와 방식을 어떻게 달리할 것인지 [미국은 이걸 남들한테 말로 설득해내는 일이 너무도 중요하다], 본인의 심리치료 방식을 어느 방향으로 조율하여 균형을 잡을지도 큰 고민이고 말이다. 여하튼 그런 의미에서 법정신의학은 정말 남다른 세팅이라고 하겠다. 무얼 기대해야할지도 모르고 로테이션을 시작했다. [로테이션은 몇주 단위의 근무 세팅 배정을 의미한다. 내과 입원병동 로테이션 6주, 소아정신과 병동 로테이션 8주와 같다.]
대학교 2학년 땐가, 법학개론이란 교양 과목을 신청했다가 중간고사를 앞두고 주저 없이 수강취소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내 진로에 있어서 그리고 최소한 앞으로의 수강신청에 있어서 평생 법 근처에도 가지말자고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왜 ㄱ이 ㄱ이고 ㄴ이 ㄴ인지에 대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 설명하고, 구분하고, 이해해야하는데, 그렇게 에너지를 쏟는 대상이 인간 그 자체도 아니고 인간이 만든 규칙이라는 점이 당시의 나에게 너무나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법철학이라면 차라리 좋아했으려나. 부연하자면, 우주의 신비라든가, 수학이라든가, 물리라든가, 예술이라든가, 인간의 심리라든가 그것들에 대해서 깊이 탐구하는 건 나에게 힘들지언정 시간을 쏟고 에너지를 쏟을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데, 사람이 만든 규칙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에너지를 쏟는 게 [애초에 규칙을 그렇게 만들지 말든가] 너무나 동기부여가 안 됐었다. 최소한 나의 영역은 아니라고 느꼈다.
지난 6주간은 정말 너무 훌륭한 어텐딩 [미국은의대 임상 교수를 '어텐딩'이라고 부른다] 을 만나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아, 나는 좋은 선생님께뭔가를 배우는 걸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 애초에 어텐딩과 내가 일대일로 붙어서 근무하는 환경에서, 너무나 배울 점이 많은 선배 의사의 임상적 의사결정 과정, 환자인터뷰 [보면서 내 마음이 힐링], 다른 스태프들과의 의사소통 그 모든 것들을 관찰하고 배울 수 있었던 데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일대일로 질문할 수도 있었고, 질문을 할 때마다 너무나 통찰력있는 답변을 듣는 것이었다! 하, 정말 이것이 배움의 희열인가... 더구나 가장 좋았던 점은, 미국인으로서 미국 밖에서 보는 미국에 대해서 고민해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은 아닌데 [그 사람의 학력, 교양 수준과 꼭 상관없이도] 미국 밖에서 보는 미국에 대한 통찰이나 다른 문화권/나라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이 있는 분이라 너무 편안했다. 영어도 문화 적응도 벅차 버겁고 외롭던 이 1년차 한국인 정신과 레지던트가 어쩌다 미국 땅에서 남의 나라 말로 정신과 환자들을 보는 이 상황을 덕분에 처음으로 마음 깊이 긍정하게 됐다. 중간중간 주시는 과제들도 하나하나 너무나 나의 교육에 말이 되는 것들이었고 덕분에 법정신의학에 아무 관심도 없을 뻔했던 나는 이 법정신의학 입원 세팅에서의 진단, 평가와 치료적 맥락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이곳의 우리 환자들은 대게 중범죄 [미국으로 치면 felony 이상]로 기소가 된 상태다. 이곳에 오는 건 크게 주로 두가지 경우인데, 일단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되어 [아직 선고를 받기 전], 형사재판을 하려고 보니, 아니, 이 사람이 자신이 기소된 혐의점에 대해서나, 법정의 다양한 역할들 [판사, 배심원, 변호사 등]에 대해서, 정신 질환을 이유로, 지금 현재 롸잇나우 합리적 수준의 이해를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스스로 스스로의 변호를 도울 수 없는 상태에서는 일단 재판을 진행하지 않고 이런 병원에 보내서 치료를 받게 한다. 이건 범죄 혐의점 자체가 무죄인지 유죄인지와 전혀 관련이 없다. 우선 치료를 받아야 사건이 진행될 수 있겠다는 취지. 치료를 받고 나아진 사람은 구치소로 돌아가서 재판을 진행하고, 혹 그 재판에서 "Plead not guilty by reason of insanity" 즉 정신질환을 이유로 [엄밀하게는, 범죄 당시 시점에 정신질환을 이유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했거나, 자기 행위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무죄를 선고 받았을 경우, 하지만 아직 민간 사회로 돌아가기에는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될 경우, 다시 이런 정부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는다. 그 다음은 생략!
정부 병원인 관계로 시스템이 열악하다. 대학병원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두꺼운 페이퍼 차트와, 이건 돈이 더 들겠다 싶은 혼란한 전산 시스템, 여러가지 상황과 법적 제한으로 인해서, 레지던트는 무려!! 우리 병원의 경우!! 세상에!! 노트를 쓸 필요가 없다. [사실 일할 때 큰 스트레스 중 하나가 끝없는 의무기록 작성] 하루하루 날파리처럼 버티는 레지던트에게는 바로 이부분이 정말 엄청나게 감사한, 내 에너지를 보다 근본적인 인간 정신과 정신 병리 탐구 [그리고 삶의 다른 영역]에 집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비자발적 입원 상태의 역설적 사치. 그러니까 보통의 대학병원에서 응급실에 급성 정신증, 급성 조증 등의 이유로 오면, 미국의 주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다른 비자발 입원의 기준이 있지만, 전문가 생각에, 이 환자는 좀 더 치료를 받아야 좋을 텐데 싶어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여 비자발 입원을 지속하는 데에는 여러 법적 제한점이 있다. 이것도 한 편의 얘기 거리다. 사회적 논란이 되는 문제이기도 하고 말이다. 각설하고, 그러나 범죄 혐의점 [charges]이 있는 상태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법적 의무가 된 상태로' 병원에 온 경우, 자본주의 사회의 의료 비용이든, 헌법상의 권리든, 그것들의 제한에서 아이러니하게 자유로워지게 된다. 의사 입장에선 리소스는 부족할 지언정 나름 예측 가능한 장기적인 치료가 가능해진 셈. 한 사람의 다양한 층을 알아가고, 치료적 면담을 하는데 시간을 쓰고, 시간의 압박없이 약을 조절할 수 있는 [정신과 약은 줄이고 올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런 나름의 이상 상태가 역설적으로 가장 열악한 이 정부 병원에서 다른 의미로 가능해진다.
아침에 출근하면 널찍한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이중문을 지나 레지던트 오피스에 짐을 두고, 아이디를 들고 핸드폰을 락커에 두고 [무려 일하는 중 폰없는 삶을 살게 된다] 시큐리티 수속을 지나 [매일 공항 메탈 수속 같은 것을 통과해야 한다] 병원 안에서만 쓸 수 있는 키를 픽업하고 모든 문을 열고 잠그며 이동하게 된다. 이런 높은 시큐리티의 세팅에서 환자들은 보통의 병원보다 조직화된 환경에서 일상을 보낸다. 다른 병원이 그렇듯 낮동안 여러가지 그룹 세션이 있고 응급상황을 위한 경고 시스템도 있다. 앞서 어떤 사람이 왜 법정신의학 병동에 오게 되는지 제도와 의미에 대한 설명을 잔뜩 해두었지만, 그리고 그런 제도들은 근대 영국부터 현대 미국까지 다양한 주요 판례들을 통해 정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병원의 여느 병원과 다르지 않은 합리적인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혹은 인간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제도로 인해 [물론 근본적으로는 그것의 위반으로 인해] 나름의 기간동안 높은 수준으로 관리되고 통제되는 어떤 환경에 있다는 그 사실이, 저 모든 앞서 서술한 과정을 거쳐 법정신의학 병동으로 들어가던 처음 며칠 찾아오던 마음이, 매일 출근길에 지나던 대로변 옆 건물에 있는 이 다른 세계의 발견이 자못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구치소, 교도소 등등 사법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리고 왜 있는 지도 알지만 처음 그것이 내 일상의 맥락이 되니,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 이 차원과 평행한 다른 차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아챈 것 같았달까. 환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나의 이 무척이나 사치스러운 감상은 사실 그 사치스러움을 알기에 부끄럽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프로페셔널한 영역의 고민들이 늘 우선시되고, 별개입니다.]
많은 것들을 배웠다. 폰이 없어서 작은 다이어리 뒷편이 이것 저것을 적어두었다. 법정신의학 자체에 대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앞서 언급한 법정신의학 병동의 독특한 특징 덕분에 이해하게 된 보다 근본적인 부분들, 진단 [모든 것을 과하게 정상화하여 받아들이는 나의 경향에 대한 깨달음, 과한 정상화와 overnormalize vs. 과한 병리화 overpathologize에 대한 생각들, 성격장애 vs. 다른 질환으로부터의 같은 증상 irrtability from other diagnoses], 치료 [약 쓸 때 고려할 것], 치료반응을 보는 것 [약 레벨 체크, 그놈의 cyp를 실제 어떻게 고려하는지 띠용, ratio같은 것], 인터뷰 [내 안에 그 어텐딩을 기르자!], 무언가를 개념화하기 위한 개념화의 도구들 -- 프레임워크들, 어떤 환자를 보며 느끼는 나의 마음 [보통 역전이라고 한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시간적 여유, 굉장히 드라마틱한 뉴스에 나온 사건들, 덕분에 느꼈던 재미, 연결, 이해... 개별적 사례를 언급할 순 없지만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