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를 생각하면, 우리네는 이렇게 생각한다. 진보는 깨끗하며 보수는 부패하였다고 우리의 뇌에 인식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2020년이 가까워져 오는 이 시국에서도 이러한 반분법이 통하는 것이다. 보수가 지금까지 정국을 유지하면서 우리 뇌에 부패한 고리를 만들었고 진보는 이러한 부분을 차단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고 생각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보수는 기득권 집단이고 이 집단은 현실에 안주하여 미래가 없다고 봅니다.
진보는 유능하고 보수는 무능하다고 하기도 하고 반대라고 이야기도 한다. 실제로 이상향을 꿈꾸는 진보가 정책을 집행하면서 실패는 더욱더 많이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이 꿈꾸는 사회는 누가 봐도 이상향이 되는 것은 맞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가 백가쟁명을 하면서 자기의 이상을 펼쳐보려고 노력을 하였고 그 결과 각 제후국이 모두가 잘살았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각 제후국이 이상향에 따라 잘된 국가도 있지만 어려움을 겪은 나라도 많다. 잘된 국가의 경우 이상향이기보다는 위정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갖추고 부국강병을 모색한 후 이를 실천한 것이고 실패한 경우는 이상향을 펼치면서 그 이상향에 매몰되어 있고 그것이 가져올 병폐와 그것에 따른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여 발생하였다고 본다. 가장 이상향을 꿈꾸는 제후로 송나라의 양공의 예를 든다. 초나라 군대 맞서서 싸움에 있어 초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기 전에 섬멸하려고 제안하였으나 ‘적군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공격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라는 이상형에 의하여 초군이 강을 건너 정비를 다 한 후 공격을 하였으나 패해 자신의 목숨마저 잃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송양지인이라는 사자성어로 회자하는 만큼 이상형에 매몰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최근에 우리의 현실은 송양지인이 되는 것 같다.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소득을 보장한다는 이상형이다. 하지만, 급여체계가 아닌 호봉체계인 한국의 현실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도미노 현상으로 상위 호봉의 급여까지 동시 상승하여 기업체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여타 부분의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가령, 우리와 임금체계가 다른 서구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근로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해당 급여를 받는 최저 소득자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고 같은 회사 임금근로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본다. 이 부분을 그대로 실천한 경제학자 출신 대통령 참모는 서구의 학문을 연구하였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이를 진행하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고 본다. 현실은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그대로 진행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보수적인 기업체도 참 재미있다. 자기의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다양한 노력을 한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한다. 호봉체계에서 기본급을 최소화하여 기본급을 기준으로 하는 4대 보험 부담률을 낮춘다. 이것은 근로자들도 동의한다. 왜냐 자기들이 부담하는 비용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경우 기본급에 따라 보험료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꼼수라고 하다. 정당하지 않다고 하며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 본인이 꼼수를 쓸 때 수혜자면 말을 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이러한 꼼수를 쓰면 비난을 한다. 이것이 인간이다. 그러면서 이것이 보수의 민낯이라고 한다.
최근 언론에서 우리의 정책을 만든 사람이 나는 이상주의자라고 독백한 글을 보았다. 그는 ‘젊었을 때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미래, 무지개가 있다고 믿고 무지개를 쫓아다녔다. 이제 세월이 흐르고 경험도 생기고 하다 보니 무지개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감히 계속해서 철없이 무지개를 쫓는 소년으로 살고 싶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기득권층이 되며, 현재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든 사람을 보수계층으로 분류한다. 사실적으로 나이가 든 사람들은 보수층으로 대표가 된다. 젊은이들은 반대다. 기득권층이 쌓아놓은 아성을 깨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한계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창업가들은 기존의 임금체계가 아닌 창업으로 세상의 물꼬를 여는 젊은이가 많은 것은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세계보다 새로운 세계를 엿볼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행위로 기업을 일으킨 사람을 혁신가라고 한다. 혁신가에 박수를 치고 있지만 실패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든 사람 중에도 진보가 있다. 이들은 청년 시절에도 진보였든 사람이 있고, 보수였든 사람도 있다. 처음부터 진보였든 사람은 보수에 환멸을 느꼈든 사람이며 보수였든 사람 중에 진보로 바뀐 사람은 내가 주변 사람을 보건대, 보수적 사람이나 보수적인 기관으로부터 피해를 보거나 그들의 행동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사람이 본다. 내 주변에 이러한 사람들이 좀 있다.
나는 중도보수를 표방하고 있는데 박쥐가 아닐까 생각한다. 진보층이 있는 곳에 가서는 진보처럼 말을 하고 보수층이 있는 곳에 가서는 보수처럼 말을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의 은연중에 보수적인 말이 있어 다른 사람들이 보수라고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골똘 보수는 싫다. 극단적인 말을 하는 극우도 싫고 극좌도 싫다.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라 할 것이다.
보수는 전투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전쟁에서 진다. 하지만, 물량전으로 이긴다. 물량전은 보수들이 가지는 전략이고 전술이다. 누구는 사회주의 진보, 자본주의를 보수로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보수는 사회주의이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수는 자본주의이다. 그 집단을 영위하는 것이 보수인 것이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진보끼리 만났는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만나서 문제를 유발하는 것이다. 환경론자, 인권론자를 진보로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국내를 벗어나면 그린피스를 제외하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국수주의적 환경론자, 인권론자라고 할 수 있다. 국내 환경과 인권을 보호하는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이웃 국가의 인권과 환경에 대하여서는 그렇게 말을 하지 못한다. 왜냐 내정간섭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울러, 그 국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들에 대하여 무척이나 반감을 품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어서도 유사하다. 원전에 대하여 대단히 반감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하여 우리나라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 결과 현 정부는 원전 설치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웃 국가인 중국에서 중국의 동해안에 원전을 많이 설치하는 것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못 한다. 사실 우리나라 원전은 우리에게 있어서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었을 경우 원전 폐기물이 문제가 된다. 원전을 반대하는 진보주의 사람들은 원전사고를 이야기하면서 원전이 문제다 한다. 중국의 원전이 문제가 되었을 경우 이야기를 하면 우리 원전의 폐기물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를 한다. 중국 원전은 안전하고 폐기물은 중국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문제없고, 우리 원전은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원전사고가 날 우려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의 원전이 안전하다고 하면 원전 폐기물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 보수도 같다. 진보의 약점을 잡고서 언론을 통하여 물량 공세를 한다.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발생하는 비용 문제를 갖고 이야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