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대체 좌우 어디에 있는가

by 김기만

한동안 유행한 말 중에 '빨갱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공산당을 말하는 것인데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빨간 놈이 있고 수밀도 모양으로 거죽도 희고 속도 흰데 씨만 빨간 놈이 있고 토마토나 고추 모양으로 안팎 속이 다 빨간 놈도 있다. 어느 것이 진짜 빨간 놈인 것은 몰라도 토마토나 고추 같은 빨갱이는 소아병자일 것이요.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붉은 것은 기회주의자일 것이요. 진짜 빨갱이는 수밀도같이 겉과 속이 다 희어도 속 알맹이가 빨간 자일 것이다.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고 규정짓는 그 자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인 것이다. 이 자들이 민족분열을 시키는 건국 범죄자인 것이다.(독립신보 1947년 9월 12일자) 이러한 말에 유추하여 보면 일제강점기 때보다는 해방 이후 극심한 혼란기에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말이 지금은 논쟁 중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 전쟁을 겪은 나라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군(경찰포함) 63만명, 유엔군 15명을 포함 78만명이 전사․전상․실종되었고, 북한국 80만명, 중공군 123만명 등 약 203만명의 손실이 생겨 군인피해만도 총 281만명에 이르고 있다. 민간인 피해는 남한 제조업은 1949년 대비 42%, 주택의 16%가 파괴되었고, 북한은 1949년 대비 전력의 74%, 연고 공업의 89%, 야금업의 90%, 화확공업의 70%가 파괴되었다. 민간인 피해를 보면 남한측인 민간이 사망 37만 여명, 부상 22만 여명, 실종 38만 여명이며, 북한측은 민간인 사망 40만 여명, 부상 160만 여명, 실종 68만 여명이다. 전쟁으로 인하여 남한 반공이 북한은 반미가 강화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반공이 1986년 서슬이 퍼렀던 전두환시절에 어느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연설한 내용임에도 구속되는 사례도 있었다. 반공이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전쟁을 겪은 세대가 절반이상이었던 1986년에 그때에는 국민들에게 인정되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빨갱이란 말은 그래도 아직 70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아킬레스이며 전가의 보도이다. 일본 패망이후 소련과 냉전 중인 미국이 남한에 진주하면서 사회주의 계열의 사람들이 미군정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미군정 입맛에 맞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친일파들이 사회주의 계열사람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하여 반공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것에 빨갱이란 용어가 등장하였다고 관련 자료들은 보여주고 있다. 국회 프락치 사건, 여순사건 등에서 등장한 반정부주의자들을 공산주의로 매도하면서 빨갱이란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고 자기의 적대세력을 공격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1948년 12월 통과되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반공이데올로기가 심화되면서 이제는 독재자들이 그들의 반대세력을 지칭하였다. 조봉암씨가 이렇게 희생되었다. 2000년 이후에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전쟁은 겪지 않고 있지만, 극우세력이 주로 이를 사용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빨갱이란 용어는 그렇게 좋지 않은 용어이고 상대방을 비하하는 말인 만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극단적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극우도 문제이고 극좌도 문제이다. 종교도 원리주의자가 문제를 유발하는 것처럼 극우, 극좌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극우 또는 극좌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완충지대가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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