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이다.

by 김기만

우리는 전설의 고향에서 구렁이와 선비 그리고 까치가 나오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치악산은 그 영상이 나오는 상원사가 있다. 친구 셋이서 가을날 단풍시즌에 오르면서 치악사의 한자. 치자가 무슨 '치'자일까 논쟁을 한 것이 그렇게 먼 추억이 아니다. 상원사에 도착했을 때 그 전설을 형상화한 것을 보고 잘못 알았네 하였다. 치악산의 '치'자는 꿩'雉' 자다. 치악산의 상원사를 가서 가람에 걸려 있는 현판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사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사진을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다. 4년 전에 갔다 온 기록을 여기에서 찾다 보니 그런 것이다..


영상이 우리를 왜곡시키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이 거의 없다. 그 영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뉴스에서 tv는 동시에 모두를 속일 수 있기도 하고 모두에게 사실 그대로 전달하기도 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신문은 동시에 발간되지만 독자는 순차적으로 접하고 그 신문에서 그것을 읽으면서 독자가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왜곡이 있어도 독자가 취사선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영상매체와 활자매체를 비교한 글을 보면 "영상매체는 텔레비전, 영화, 비디오 등을 말하고, 활자매체는 신문이나 잡지, 책 등을 말합니다. 영상매체는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전달하는 매체로서 정보의 대중화에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여론의 형성과 사회적인 계몽을 통해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기여하며, 동일한 정보를 동시에 여러 지역에 전달하기 때문에 지역 간의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여 사회통합을 이루어 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상매체는 현대인에게 즐거움을 주고 생활의 활력소로 작용하여 건전한 취미생활과 여가활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활자매체는 영상매체에 비해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원할 때 다시 볼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정보를 한눈에 파악한 뒤에 관심 있는 분야만을 골라서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영상매체가 시간적인 제한 때문에 정보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는 데 비해, 활자매체는 정보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따라서, 영상매체보다 정보 분석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치악산은 여름에 한번 가을에 한번 걸어 보았다. 이번은 겨울이다. 겨울산은 종주가 힘들다. 국립공원 공단에서 산불조심기간을 설정하고 등산로를 폐쇄하기 때문이다. 산불조심기간에 국립공원 등을 갈 때에는 등산로가 개방된 곳으로만 다녀야 한다. 치악산은 부곡, 황골, 구룡산 이렇게 3곳에서만 들어갈 수 있다. 구룡사는 입장료 3000원을 내어야 해서 안내산악회는 이곳보다 황골을 선호한다.


사당역은 오늘도 산행 버스로 만원이다. 도로가 서있는 관광버스를 아침에 그렇게 문제도 없는데 경찰은 몰아내고 있다. 30분이면 끝이 나는데 이곳저곳에서 경찰차 사이렌이 울리면서 이동하라고 한다. 버스들이 이동을 한다. 시간이 많이 남은 버스들은 유턴해서 다시 돌아와야 하므로 교통체증을 유발한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30분의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우리 버스는 3분을 남겨두고 양재로 간다. 일찍 온 산객들이 벌써 자리 잡고 있어서 문제없이 진행하고 있다. 양재역에서 뒤늦게 온 다른 버스에서 추가로 산객이 탑승하고 고속도로를 들어서는데 관광버스와 승합차가 접촉사고를 일으킨다. 버스기사 아저씨의 신경이 날카롭다. 오늘 하루가 무사하기를 기도를 할 뿐이다. 버스의 뒷부분과 승합차의 앞부분이 접촉하였는데 어느 자동차의 과실비율이 높을 것인지는 모르겠다.


비몽사몽으로 부족한 잠을 해소하는데 산행대장이 오늘의 등산로를 안내한다. 황골에서 입석사까지는 포장된 도로이지만 가파르며 입석사에서 삼거리까지 2km는 가파르다고 한다. 그 가파르기를 밀양의 얼음골에서 올라가는 가파르기에 비유하며 힘들다고 한다. 삼거리에서 비로봉까지는 힘들지 않고 비로봉을 올라가는 200m가 힘들며,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고 한다. 지난주 소백산을 가서 고생을 한 얘기를 한다. 소백산의 칼바람은 어디에서나 유명하다. 하산은 사다리병창길을 이용하여 구룡사로 나오면 된다고 하면서 사다리병창길도 예전의 사다리병창길이 아니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버스는 주차장에 있는데 구룡사에서 25분을 걸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그 의미를 하산을 하고 구룡사에서 주차장을 간 후 알았다.


버스 황골주차장 입구에서 산객을 내린다. 너도나도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고 아스팔트를 걸어서 올라간다. 스틱을 바로 꺼내어서 스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배낭에 자켓을 넣는 사람도 있다. 등산용 티만 입고 올라도 아직은 괜찮다. 바람도 불지 않고 오르막을 오르는 만큼 덥다. 입석대까지는 가파른 아스팔트 길이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걸어도 문제가 없다. 절에 가는 사람들도 없는지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다. 신도로 보이시는 분들도 스틱을 집고 올라가고 있다. 절이 그렇게 고착이 아닌 것이다. 입석대는 무등산에도 있다. 무등산의 입석대는 주상절리로 입석대이지만 이곳의 입석대는 화강암이 불쑥 솟아있다. 입석사의 대웅전 왼쪽으로 입석대 가는 안내판이 있다. 입석대 바로 옆에 삼층석탑이 있고 100m쯤에 마애불좌상이 있다. 산을 바로 가는 사람들이 있는 가하면 나처럼 이곳저곳 둘러보는 사람들이 있다. 산을 오르면서 친구처럼 호기심이 있어 무엇이든지 한번 둘러보고 간다.

마애불좌상 앞에 돌이 두 개 있다. 마음이 착한 사람만 돌을 들 수 있다고 한다. 올라온 산객들이 하나둘 돌을 들어본다. 모두 다 든다. 나도 들어본다. 그렇게 무겁지 않은데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것을 들 수 없다고 하니 스토리텔링으로 그만이다.


석탑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입석대 앞에 서있는 탑으로 현재 서로 다른 2기의 석탑 부재가 섞여서 쌓여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 몇몇 유례가 있는 청석탑(靑石塔)의 부재고, 다른 하나는 일반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 부재다. 특히 청석탑은 조선 태종이 즉위한 뒤 어린 시절에 가르침을 받았던 스승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을 자주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치악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며 나타나지 않으므로 태종이 그를 생각하며 세운 탑이라고 전한다. 원곡이 살던 곳에 가면 태종대가 있다. 원주에서 치악산을 넘어가야 한다.


입석사로 다시 내려가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비로봉으로 간다. 산은 계곡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가장 가파르다. 모르는 사람들은 계곡 끝까지 간 후 산 정상으로 가는데 어느쯤 가다가 계곡을 벗어나야 한다. 평탄한 길에서 정상으로 바로 가는 것은 힘든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입석사라는 사찰이 있고 다른 곳으로 오를 수 없기에 입석사까지 온 후 정상으로 바로 가는 길을 잡는 것이다. 600m 돌계단을 지그재그로 오르기만 한다. 한숨을 돌리려면 살짝 비켜나서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산을 오르면서 오르고 쉬고 하는 것이 기본인데 무조건 올라야 한다.

600m를 오르면 능선을 만난다. 이제는 오르고 쉬고 한다. 비로봉 정상까지 한 번쯤 힘들게 오르면 평탄한 코스가 나와서 쉬게 된다. 삼거리에 도착하니 남대봉에서 올라오는 길을 폐쇄하였다. 이곳에서도 그리로 갈 수 없게 잘 정리되어 있다. 산불조심기간에 등산로 폐쇄를 안내하는 정도였지만 이곳처럼 등산로 입구를 폐쇄한 것으로 처음 보았다.

쥐너미재에 전망대가 있는데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아 볼 것이 하나도 없다. 전망대에서 볼 것이 많아야 하나 없어 대부분 지나간다.


비로봉을 바로 앞에 두고 비로봉 정상에 있는 돌탑이 우리를 반긴다. 정상에 저것을 세운 사람은 얼마나 많이 올라왔던가 궁금하다. 그 정성이 하늘에 알려졌을 것이다. 3년 전 이곳을 지났을 때 없었던 금표관련 안내판이 있다. 이곳에 조선시대에 소나무를 함부로 벌채하지 못하도록 금표를 만들어 금하였다고 한다. 황장금표로 조선시대 황장목의 벌채를 금하였다고 한다. 치악산에 3개가 있다고 한다. 국내에 이곳에 있는 것이 유일하다고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구룡사 입구에도 있다. 왼쪽의 것이 비로봉 초입에 있는 것이고 오른쪽의 것이 구룡사 입구에 있는 것이 있다.

비로봉을 오르기 전 모두들 단장 중이다. 꽃단장은 아니고 자켓도 다시 걸치고 장갑도 챙긴다. 바람이 거셀 것에 대비하는 것이다. 비로봉을 올라가는 가파른 길을 올라서면서 재미있는 바위도 담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니 돌탑이 있는 정상이다.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보면서 경치를 즐긴다. 바로 전까지 안개로 가려졌던 능선들도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저곳에 앉아 점심을 해결한다. 이 사이 정상석 주변을 보니 줄이 길다

스스로의 인증샷을 남긴다. 햇빛이 좋고 바람이 없는 곳에 앉아 먹는 것을 즐기고 있는데 넉살 좋은 산객이 옆에 있는 부부 산객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본인은 두 번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건강이 좋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교통사고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있다가 살아났으며 소진드기에 물려서 죽을 뻔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산을 즐기기 위하여 산을 오른다고 한다.

비로봉의 3개의 돌탑은 비로봉의 미륵불탑이라고 하며 원주시에서 제과점을 하던 용창중(일명 용진수)라는 사람이 꿈에 3년 안에 비로봉 정상에 3개의 돌탑을 쌓으라는 계시가 있어 쌓은 것으로 1962년 쌓기 시작하여 1965년 완성하였으나 1967년 1972년 무너져 용창중씨가 복원하였으며 1974년 용창중씨가 작고한 후에도 풍화에 무너져 국립공원공단이 여러 차례 복원하였고 2004년에 마지막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러 곳에 이러한 돌탑이 있는데 진안 마이산의 탑사의 돌탑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이제 사다리병창 능선을 따라 세렴폭포를 거쳐 구룡사까지 내려간다. 거리는 만만치가 않으나 시간도 충분하고 여유를 갖고 하산을 한다.

처음부터 데크는 가파르게 사다리병창 능선을 보면서 내려간다. 산세가 험악하여 예전에는 힘든 구간이었으나 요즈음은 데크로 정리가 되어 힘들이지 않고 내려간다. 어떤 사람이 미끄러지는 것을 보았다. 얼었다가 녹은 흔적이 길이 미끄럽다. 스틱을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사다리병창은 사다리를 세워놓은 것과 같은 절벽이라는 것이다. 병창은 영서지방의 방언으로 절벽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말등바위 전망대에서 뒤를 돌아보고 옆 능선을 본다. 내가 내려온 길이 싶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렴폭포는 그렇게 큰 폭포가 아니지만 구룡사까지 올라왔던 사람들이 이곳까지 올라온다. 그만큼, 세렴폭포에서 구룡사까지 길은 너무 편한 길이다.

세렴폭포에서 비로봉 올라가는 길은 매우 어려운 구간이란 표식이 세렴폭포에서 비로봉 올라가는 초입에 경고가 붙어 있다. 세렴폭포에서 세수하고 내려간다. 물에 이제는 머리는 감을 수가 없을 정도로 물이 차다. 예전에는 이곳에 화전민들이 거주할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화전민들의 삶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있다.


이제 구룡사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시절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며 대웅전이 있던 곳에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어 아홉 구의 구룡사라고 했으나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억압 정책 등으로 사찰이 퇴락하였는데 풍수지리에 밝은 노인이 절 앞의 거북바위 때문에 퇴락한 것이라고 하여 이를 깨트렸는데 도승이 나타나 절이 쇠약해진 것은 거북바위를 깨트려 혈맥이 끊겨 그렇다고 이야기하여 거북바위를 살리는 의미에서 사찰 이름을 거북 구자의 구룡사라고 명칭을 변경한 후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해가 떨어지기 직전 구룡사에 도착하였으나 오늘은 해가 중천에 떠 있다. 구룡사에서 절 입구까지 내려가는 길인 황장목 숲길이 너무 좋다. 양산의 통도사에서 일주문까지 내려가는 소나무 숲길에 진배없다. 옆의 계곡을 보니 구룡사의 용이 구비구비 돌아 소에 풍덩 빠진 것 같다.


사실 구룡사에 3000원을 내고 절을 가는 사람은 없다. 사찰보다는 치악산 정상으로 가고 세렴폭포까지 멋진길을 가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사찰땅을 지나는 요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황장목 숲길은 그래도 절 앞에 조성된 길이고 절까지 가는 길인 만큼 볼거리로 즐길 거리로 입장료의 가치가 있다.

구룡사를 들어서는 사람들을 막아서고 돈을 받는 매표소 바로 직전 구룡사 쪽으로 들어서자마자 금표가 또 있다. 황장목의 벌채를 금한다는 것이다. 저 위에 화전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곳의 소나무는 벌채를 금하였다고 아이러니하다.


구룡사 입구에서 이제 주차장까지 걸어간다.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고 그곳을 지나 돌아 돌아 내려간다. 야영장, 소형 주차장을 지나 대형주차장이다.

원주시내에서 이곳까지 시내버스가 있어 원주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 등에서 쉽게 올 수 있다. 우리도 4년 전 시내버스를 타고 이곳에서 원주로 내려간 기억이 있다. 상가 주차장이 있으며 일반인들은 이곳에 주차하려면 돈을 내어야 하고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주차장은 한참 내려가야 한다.



이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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