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도를 가고 싶은데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즉흥적으로 시작하였다. 집에서 출발하여 전철 타고 운서역까지 go다.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구나 하면서 오늘도 산길을 걷는다. 산길은 다양하다. 섬 산행이다.
누군가 5시간 트래킹이 가능하다고 하여 도전을 한다.
무서운 속도로 운서역까지 도착하였다. 그리고 버스도 마침 온다. 30분에 한대 오는 버스가 배 시간에 맞추어 온다.
집에서 출발하여 1시간 30분 만에 삼목항에 도착을 꿈꾼다. 섬 트래킹을 한다. 공항철도는 코로나 여파로 주말에 air가 가득하다. 예전의 모습이다. 사람으로 가득한 모습을 찾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가 귓가를 때린다.
여기는 환승할인이 안된다. 공항철도를 타고 와서 별도 요금을 내어야 한다. 인천 버스를 타고 인천시내로 나가면 달라질 것이다.
여기에서 장봉도 가는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교통이 좋긴 좋다. 승용차로 와도 비슷하게 걸릴 것 같다.
11시 10분 배를 타고 들어간다.
인천공항이 건설되기 전에는 영종도에서 신도 장봉도로 다녔고 이동시간도 2시간 30분 이상 소요되었는데 이제는 1시간 이내로 다니고 배편도 왕복 1 - 2회에 불과하였는데 이제는 1시간에 1회 이상 있으니 살만한 섬이 되었다. 하지만 이착륙에 따른 항공기 소음은 피해일 것이다.
장봉도 들어가는 배는 신도를 거쳐서 장봉도로 들어가며 매시 10분에 출발한다.
도착하니 10분 남았다. 배표를 사고 배에 타니 전철에 비하여 사람들이 많다.
카페리를 타본 사람들은 자동차에 앉아 있기도 하고 선실 안에 위치하기도 한다. 본인들의 취향이지만 아이들과 함께한 부모는 추억을 만들기에 바쁘다.
배에 승차 준비를 하는 자동차들이 부두에서 줄을 서서 자동차 경주 출발선에 대기하듯 서있다.
출발이다. 갈매기들도 출발이다. 갈매기들은 새우깡에 맛 들여져서 그런지 갈매기들은 여객선을 따라오고 여행객들은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유혹한다.
신도를 거친 여객선은 50분 남짓 만에 장봉도에 닻을 내리고 여행객들을 쏟아낸다.
장봉도에 대한 백과사전을 확인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지명은 섬의 형태가 길고 산봉우리가 많은 데에서 유래하였다. 신석기시대 전기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강화현(江華縣)의 속현인 진강현(鎭江顯)에 속하였다가 조선시대에는 강화 도호부(江華都護府)에 속하였고, 1717년 수군의 진(鎭)이 설치되어 교동의 통어영(統禦營)에 속하게 되었다.
산 정상에 있는 안내도에도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섬이 길고 봉우리가 많다고 하여 장봉도라 긴長자에 봉우리峰를 사용하여 장봉도라 했으며 고려 몽골 침입 당시 강화도에서 많이 이주하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장봉도 종주는 부두에서 시작하여 북쪽 끝까지 갔다고 돌아오는 길이다. 들머리에 안내표지가 있다.
처음 올라가 봉이 상산봉이다.
장봉 예림원이 있고 이를 거쳐가는 안내지도이다. 친구가 같이 있었으면 반드시 거쳐갈 것이고 그래도 경로 중에 있으니 들르자 하고 결론을 내린다. 잰걸음을 걷기 전에 그래도 주변 경치를 담아 본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산 자락이 앞에 놓여 있다. 상산봉에서 내려오다가 예림원과 응암 해수욕장을 선택하는 이정표에 망설이다가 예림원으로 방향을 튼다. 여기에서 길이 갑자기 사라졌다. 관리를 하지 않고 개인 재산권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데크는 망가져있고 마지막은 문이 있는데 잠겨져 있었다. 등산로는 보이는데 철망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돌아선다. 알바다. 하지만 오래전에 관리하면서 나무를 이용하여 예쁜 조각을 설치하여 놓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하는 알바다. 친구가 옆에 있었으면 옥신각신하였을 것이다. 10분 이상 허비하였다. 국사봉까지 1시간 남짓에 가야 하는데 마음은 바쁘다.
등산로를 찾아서 걷는데 예쁜 출렁다리가 도로를 넘는다. 도로까지 내려가지 않고 건널 수 있다. 장봉도 최고봉인 국사봉까지 오르내림이 몇 번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산객을 만났다. 그들은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배를 타고 들어와 즐기고 있다. 여유를 갖고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올 것이다.
국사봉인가 하고 올라서니 아니다. 노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고개를 내려섰다가 올라서야 국사봉이라고 한다. 내려선 고개가 말문고개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이곳에서 소를 방목하다가 왜란 이후에는 말을 키웠고 그 흔적이 대부분 사라지고 고개 주변에 석재가 있을 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고개에서 국사봉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해발 150m 남짓이 얼마나 가파를까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이 고스란히 있는 섬 최고봉을 오르는 산길이다.
국사봉 정자가 반긴다. 정자 위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동쪽과 서쪽 형세가 다르다.
서쪽은 한 폭의 수채화이고 동쪽은 물이 나간 펄이 보인다. 봉화봉에 올라섰을 때 저곳에 물이 가득하였다.
건어장해변 이정표가 보인다. 해변에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복귀할 때 갔다 오리라. 그곳에는 볼거리가 많다고 추천을 받았다.
국사봉에서 장봉 3리 뒷산으로 하여 봉화봉을 올라선다. 봉화봉 들머리에서 남진하는 산객이 나에게 묻는다. 국사봉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나는 42분 걸렸다고 했다.
가막머리 전망대까지 3km 이상 남았다. 이제는 목표가 남았다.
봉화대이다
섬에도 봉화가 있었을 것이며 그런데 어디에서 이것을 보았을까 의문이 든다.
이곳의 봉화는 서해에서 첫 번째 출발하는 봉화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발이 130m이고 장봉도에서 두 번째로 높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의 봉화는 인접한 강화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봉화봉에서 이제는 가막머리 전망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은 영종도가 이웃한 중요한 곳이지만 조선시대에는 강화가 더욱 중요하였다. 이곳에서 강화를 드나드는 배를 확인할 수 있고 봉화 등으로 전달되면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펄이 보였던 바다가 이제는 바닷물로 가득하다. 서쪽에 저 섬들이 이른 거리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막머리 전망대까지 내려선다. 사실 300m, 150m 이러한 이정표가 있었지만 거리는 더 멀었다.
가막머리다. 옛날에 큰 봉우리란 뜻의 감악산의 끝의 머리라는 뜻으로 장봉도의 서쪽 제일 끝이다. 바닷가에 접근하지 않고 경치를 본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말인 가막소가 있던 곳이란 뜻도 있다고 한다.
봉우리에서. 보았던 섬들이 가까이 있다. 동만도 와서만 도라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5시를 배를 타려면 2시간 30분 이내에 도착하여야 한다. 산객들이 등산로를 가득 메웠다. 장봉 4리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해안 산책로를 타고 온 산객들이다. 산을 오르는데 어떤 여성 산객이 목이 마르고 물이 없다고 하니 내입에는 물이 가득하다고 하니 나도 가득하지만 그것은 목을 축일 수 없다고 대꾸를 한다.
가막머리까지 갈 때보다 돌아오는 속도는 얼추 빠르다. 5시를 배를 탈 것 같다. 내 다리가 주인을 따라 바쁘다. 하지만 1시간을 남겨두고 다리가 이제는 지친다고 신호를 보낸다. 국사봉을 내려서고 말문고개를 지나 구름다리 위에서 고민에 쌓인다. 더가야 하나 도로를 따라가야 하나 고민이다. 모르겠다. 30분이면 도착할 거리이다. 산길을 선택했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투정을 부린다. 벤치에 앉아 다리를 달래 보나 시간은 간다. 다리야 쉬었으면 가자 하자 하고 달래 보지만 다리는 머리는 머리고 다리는 다리다. 20분을 남겨두고 이제 도로를 통해 선착으로 달려간다.
20km 가까이를 4시간 30분에 왔으니 주인 너보다 다리가 쉬고 싶어 한 것이다.
도로를 따라 1km 남짓 걸으니 선착장이다
이제 나오는 배다 저만치 배가 부두에 있고 자동차가 줄을 지어 서있다. 저배가 나를 기다려 주기를 희망하면서 달린다. 5시 2분에 도착했다. 매표소에 여러 사람이 줄을 서있고 끝에 선다. 내가 타면 배는 떠난다. 시골버스 정류장의 정겨운 모습이지만 여기도 불공정이 논의된다. 5시에 출발하는 배가 5분에 출발한다. 5시 30분은 다른 선사다. 하지만 5시에 출발하는 선사가 계속 지연하면서 손님을 빼앗아 간다. 공정을 확보하고 싶지만 30분 먼저 나가고 싶은 것이 이기심인 것 같다.
갈매기에게 아이들이 새우깡을 준다. 새우깡을 먹기 위하여 갈매기는 기웃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