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나 홀로 북유럽 사아레마섬 표류기
소행성 충돌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몇 광년이나 떨어져 있을지 모르는 은하계에서 무한한 우주를 여행해 희박한 확률을 이겨내고 지구에 불시착한 소행성은 그 신비함이나 위험성이 화산 폭발 같은 지질 활동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그리고 어느 문화권이나 신비한 자연현상은 신화의 좋은 재료가 된다. 수많은 숲의 정령에 관한 이야기가 존재하는 북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나 그 소행성이 까마득히 먼 옛날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7500년 전 지구에 떨어졌다면 세월의 흔적이 더해져 그 신비함은 배가된다. 바로 이곳 사아레마섬에 그 소행성 충돌로 생겨난 신성한 호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흥분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아레마섬에서 거의 유일하게 문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쿠레사아레에서 20km 정도 떨어진 그 신비의 호수를 향해 나는 무모한 자전거 로드트립을 감행했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완전무장을 하고 나서 비상식량과 보조배터리를 챙겼다. 그렇게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탐험가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여행을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 눈이 와서 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출발한 지 30분 정도 지나자 장갑을 꼈는데도 불구하고 손발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전거와 내 몸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뿜어내는 온기뿐이었다. 나는 오로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북유럽 특유의 가늘고 키가 큰 나무와 함께 광활한 설원이 펼쳐졌다. 눈길에 장시간 라이딩을 했더니 엉덩이가 아프고 다리 근육이 당겨오기 시작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준비해온 캐러멜을 꺼내먹었다. 너무 오래 쉴 수는 없었다. 해가 지고 체온이 더 떨어지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드디어 혹한 속 20km 라이딩 끝에 ‘깔리 크레이터(Kaali Kraater)’가 있는 깔리(Kaali) 마을에 도착했다. 군 시절 혹한기 행군이나 철인 삼종경기 비슷한 것을 한 것처럼 내 몸은 극한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았다. 정감 가는 이곳은 한국의 읍면에 해당하는 매우 작은 마을이었다. 그날 깔리 마을에는 관광객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숲 속의 계단을 따라 조심스럽게 올라가니 직경 110m 정도 되는 제법 큰 원형 호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호수는 7500년 전 5~10km 정도 크기의 소행성 충돌로 만들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생성시기와 생성 원인이 명확히 밝혀진 몇 안 되는 희귀한 유적지라고 한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신성하게 여겨 주변에 큰 벽을 건설하고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쥐 죽은 듯 고요한 깔리 호수는 7500년 전 지구에 찾아온 소행성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신비하고 영험한 아우라를 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서 호수와 울창한 숲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우주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동안 모른 척했던 내 모든 마음속 상처들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른한살이라는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별다른 직업도 없이 글 쓰며 여행하는 삶을 살기까지 나는 수많은 위기를 넘겨왔다. 인간관계도 금전적인 부분도 자존감도 모두 바닥을 치고 있었다.
대책 없이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과 친지들의 무언의 압박은 자존감을 깎아먹는 도둑이다. 차라리 연을 끊으면 마음이 홀가분할까? 여행을 다니느라 친구들과 마음 터놓고 술 한잔 해본 것도 언제인지 모르겠다. 광활한 우주에 나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홀로 견뎌내기가 너무 버겁다.
그때 7500년 전 우주의 기운이 깃든 숲의 정령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괜찮다고. 7500년 전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때부터 수많은 인간들이 나름의 고민과 번뇌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지만 잘 살아남았다고. 지금의 방황은 기나긴 인생길에서 극히 짧고도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다 잘될 거라고…
그날 하루 종일 흐리던 사아레마섬에 짧은 시간이지만 한줄기 빛이 내려와 나를 비추어 주었다. 나는 눈물을 닦고 어떤 존재의 따스함을 느끼며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아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