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고, 이야기를 쓰면서 열심히 타자기를 활용하는 아이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그래! 나도 더 열심히 글을 쓰겠어 라고 다짐한 어느 날. 막상 타자기 앞에 앉으니 쓰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는 타자기 앞에 앉기만 하면 자기 생각을 잘만 쏟아내는데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오히려 쏟아낼 수 있는 말이 없다.
한참을 흰 종이를 째려보며 앉아있다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오늘 있었던 일'을 써보자며, 스스로를 달래어 겨우겨우 한 문장을 써냈다.
-오늘 목욕할 때 너는 나의 등을 소중하게 씻겨주었다.
같이 목욕을 하면서, 작고 맵시 있는 손으로 내 등에 비누 거품을 바르고 조심조심 부드럽게 비누거품을 씻어내던 그 부드러운 손길을 떠올렸다. 그 순간만큼은 내 등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섬세한 존재 같았다.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한 줄 이상 적지 못하고 빨래와 설거지와 청소의 나라로 도망쳐버렸다.
아이가 잠든 늦은 밤이 되어 다시 타자기 앞에 앉았을 때야 비로소 문장이 하나 덧붙여진 것을 깨달았다.
-너는 나에게 숙제 대신 영화를 틀어주었다.
이게 누구지? 누가 쓴 거지? 나는 더 쓴 적이 없는데. 타자기 우렁각시가 다녀갔나?! 순간, 기억과 생각들이 복잡하게 뒤엉켰다가 느슨하게 스윽 풀어졌다. 아이다_! 아이가 쓴 것이 분명하다. 언제 썼지? 떠 올려 본들, 반쯤은 자율주행모드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내 기억 속에 그러한 힌트가 숨어있을 리 만무했다.
어쨌거나 아이가 쓴 것은 분명했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그날은 오후부터 이미 저녁처럼 날이 어둑어둑했다. 덕분에, 아직 열심히 하루 일과를 소화해야 하는 시간대 이건만 우리의 마음은 날을 마무리하는 밤으로 먼저 날아가 누워버리고 말았다. 마음이 이미 누워버렸는데 무슨 숙제니, 같이 영화나 보자며 아이를 끌어안고 해리포터 시리즈를 연달아 보았다. 아이는 그것이 좋았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 내가 쓴 문장을 읽고, '아 오늘 좋았던 일을 한 줄 적는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저런 문장을 쓴 아이의 해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너'로 지칭한 나의 문장을 그대로 받아, 엄마라는 말 대신에 '너'로 나를 표현한 센스 같은 것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럴 땐, 육아가 동전을 넣고 돌리는 뽑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풋에 대한 결과로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때로는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감동'이라는 뽑기가 나오고, 기대를 잔뜩 한 순간엔 '실망'또는 '좌절'이라는 뽑기가 나온다. 여간해서는 무엇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 나의 기대와 육아의 결과가 비슷한 수준에서 만나는 것만큼 이상적인 것은 없겠으나(인풋 <아웃풋 이면 더 좋고), 그건 뽑기 기계가 자판기처럼 작동하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꾸 말하다 보니 육아를 뽑기나 자판기와 비슷하다고 하는 것이 좀 경박한 것 같긴 하지만, 무엇이 나오든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자세를 배우는 것 또한 뽑기와 비슷하다고 한다면 좀 포장이 되려나요.
어쨌거나 그렇게 우리의 릴레이 '한 줄 일기'쓰기가 시작되었다. 하루 중 언제라도 쓰고 싶은 문장이 떠오르면 나와 아이-순서 상관없이 문장을 남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을 쓰게 되는 사람이 그날의 날짜를 기록하면 된다.
어떤 날은 내가 남긴 문장과 아이가 남긴 문장의 온도 차이가 너무나 커서, 우리가 같은 날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하고,
어떤 날의 기록은, 내문장이 너의 문장인듯해서 놀라고 만다.
며칠 전에는 날씨가 좋아서 아이와 오랜만에 늦은 오후 산책길을 나섰다. 공기에는 겨울의 알싸함이 가득한데, 햇살은 아직 금색으로 가득했다. 나처럼 뒤늦게서야 계절을 반기는, 게으르고 느린 사람들을 위해서 가을이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버텨주는 만큼 나도 이 여운을 하나하나 손에 쥐고 품에 안고 숨으로 들이마셔야지 - 생각하며 어둑어둑해지도록 아이와 늦가을 속을 방황했다.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서야 집으로 향했고 , 집 앞에 와서도 그냥 들어가기가 아쉬워 집 앞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문득 물어보았다.
-엄마, 엄마는 어릴 때 무서운 영화나 책 보고 잠 못 들거나 악몽 꾼 적 없어?
많았다. 어릴 적의 나는 겁쟁이였다. 밤만 되면 악몽을 꾸었다. 그려면서도 이상하게 무서운 영화를 참 잘도 찾아보았다. 오기 같은 것이었을까. 심지어 초등학생 때는 무서운 이야기만 모아놓은 책을 사서 열심히 읽었던 기억도 난다. 그 책이 워낙 유행이어서 읽은 것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 엄마는 왜 내가 그런 책을 사서 읽게 놔뒀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무섭고 잔인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 있지~! 많지. 엄마는 어릴 때 폴터가이스트라는 공포영화를 보고 한동안 피에로 인형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텔레비전을 켜지도 못했어. 그리고 무서운 책을 많이 읽어서 밤마다 악몽을 꿨지.
아이는, 그렇게 겁이 많았다면서 엄마는 왜 무서운 영화를 찾아보고 무서운 책을 읽은 거냐며 황당해했다.
-그건 마치 네가 , 손톱이 매끄러운 종이 표면에 닿을 때 나는 끼익 끼익 소리가 싫다면서 굳이 손톱을 종이에 긁어서 그 소리를 확인하고야 마는, 그런 심리이지 않을까.
-크크크 그게 뭔지 알 것 같아.
같이 서로를 놀리듯 깔깔 웃으면서, 춥다 춥다 호들갑을 떨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타자기 앞에 앉아 간단하게 두문장을 남겼다.
-우진이와 산책을 했다. 햇살에 아직 색이 가득하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또 타자기 우렁각시가 다녀간 모양이다. 한 문장이 덧붙여져 있다.
-엄마와 밤에 집 앞 벤치에 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한 것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실, 아이가 저 문장을 남기지 않았더라면, 그날 밤 벤치에 앉아 아이와 나눈 저 별것 아닌 대화를 다시 떠올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이의 문장을 읽고서야 어젯밤의 대화를 꼼꼼하게 되짚어보게 된 것이다. 되짚어보니 별것 아닌 대화가 아니었다. "크크 그게 뭔지 알 것 같아"라고 말하며 웃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던 아이의 눈빛이 떠올랐다. 남들은 모르는 비밀을 공유하는 자들의 눈빛이었다. 그 순간의 나의 눈빛도 그랬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에는 우리의 긴 산책과 가을 햇살보다 나의 그 눈빛이 더 크게 남았던 것이다. 그날 밤 우리는 , 범죄 대신 이상하고 미묘한 심리를 같이 저지른 공범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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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문득 타자기 옆을 보니, 아이가 쓴 시와 이야기들과 우리들의 한 줄 일기가 뒤섞여서 위태로운 탑처럼 쌓여있었다. 정리를 하며, 아이가 쓴 시는 시끼리 이야기는 이야기끼리 우리가 함께 쓴 일기는 일기끼리 모았다.
총 53편의 시와, 챕터 4개로 구성된 (여전히 진행 중인) 두 개의 이야기와, 여섯 장 정도의 한 줄 일기-그중 아이의 시와 이야기는 다 기억이 나는데, 우리가 남긴 한 줄 일기는 생경한 구절이 많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우리 이날 뭘 한 거지? 싶다가도 아이가 남긴 문장과 내가 남긴 문장, 그 둘 사이에 글로 남겨지지 않은 공백을 들여다보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빛나던 아이의 눈빛 같은 것들, 계곡에서 물고기를 실컷 잡고서도 아쉬워하며 돌아서던 아이의 투덜거림 같은 것들, 각자 반나절의 스케줄을 보낸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의 새삼스러운 반가움 같은 감정들.
'비포 선라이즈'라는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셀린) 이런 말을 한다.
"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너와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신이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한다면, 너와 나의 진짜 이야기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