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째.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
*영국의 건축가는 다음 12가지의 원칙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1. Be honest and act with integrity
진실하며, 진정성 있게 행동하라
2. Be competent
유능하라)
3. Promote your services honestly and responsibly
본인의 업무를 진실되고 책임감 있게 홍보하라
4. Manage your business competently
사업을 능숙하게 관리하라
5. Consider the wider impact of your work
본인의 일의 더 큰 영향에 대해 고려하라(친환경)
6. Carry out your work faithfully and conscientiously
업무를 충실하고 양심적으로 수행하라
7. Be trustworthy and look after your clients’ money properly
신뢰를 주고 고객의 자산을 제대로 돌보라
8. Have appropriate insurance arrangements
적절한 보험을 준비하라
9. Maintain the reputation of architects
건축가의 명성을 유지하라
10. Deal with disputes or complaints appropriately
분쟁과 불만을 적절하게 대응하라
11. Co-operate with regulatory requirements and investigations
규제 사항과 조사에 협력하라
12. Have respect for others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라
영국의 건축사 시험(Part3의 1년 과정 중 마지막 대면 면접)에는 한국 건축사시험에는 출제되지 않는 건축사 의무조항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에도 '대한건축사협회'에서 발행한 '건축사 윤리 선언서'라는 것이 있지만, 영국 건축사 시험에서는 이 내용을 실제로 물어본다.
한국의 건축사 시험이 부지의 법적 용도를 파악하고 그 용도에 적합한 면적과 높이의 건물을 시간 안에 작도할 수 있는가를 묻는 '압박 실기 시험'이라면, 영국의 건축사 시험은 그래, 네가 5년이나 공부를 하고 지금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어, 하지만 그래서 어떤 건축가로 일하고 싶은 건 데를 묻는 '철학 구술 면접'에 가까운 시험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곰의 동료는 마지막 면접에서 영국의 건축사 12가지 원칙 중 7번 원칙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그해 시험에서 낙방했다.
한국의 건축법은 건축가의 윤리, 규범이나 사회적으로 건축이 철학적, 인문적으로 어떻게 인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문학, 철학적으로 자리 잡기 전에 규제가 먼저 생긴 법이다. 이 법들은 왜 개발되어야 하는 것인가를 묻기 전에 먼저 개발부터 하고 보자로 시작된 결과 중심의 사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문화적 지배를 받던 미국의 법들을 빠르게 가져와 적용해 한국의 사회를 먼저 고려하지 않은 방식으로 혼재되어 있다. 그런 법규 이전에 윤리 강령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규제 전에,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를 먼저 가르치는 윤리 강령이 먼저 나오는 게 당연한 순서여야 하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 나이팅게일 선서는 간호사가 법으로 규제받기 전에 어떤 윤리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업에 임해야 하는가를 먼저 장려하는 것이라면 건축가 윤리강령은, 건축가가 인간이 태어나 죽기 전까지 생활하게 되는 모든 공간을 디자인하는 직업인으로, 어떤 윤리의식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선서다. 이 것을 중요하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 윤리 강령 중 가장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문장이 있다.
12.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
어떤 이가 동네 도서관에 찾아간다. 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어디든 다니는 일이 어렵게 되었지만 램프를 통해 무장애 공간으로 쉽게 출입할 수 있게 만든 새로 지어진 도서관이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민도서관이지만 책을 읽는 곳과,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늑하고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눈이 피로해져 기지개를 켜면서 고개를 들면 천창으로 구름이 움직이는 하늘이 보인다.
어떤 이의 집에는 작지만 정원이 있다. 이 정원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부모가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하되, 위험을 놓치지는 않도록 큰 창이 나 있다. 이 창은 활짝 열리기도 하고 소리나 냄새가 드나들게, 상부만 열리기도 한다. 열린 창문으로 퍼져나가는 빵 굽는 냄새를 맡고 트램펄린에서 튕겨지던 아이들이 주방으로 달려온다.
어떤 이는 매일 다니는 회사가 지겹기도 하지만 몸이 찌뿌둥해질 때는 높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을 최대한 올려 일어나서 근무를 한다. 잠시 동료들과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잠시 나가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아무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은 날은 구석에 있는 부스로 노트북을 가져가 온전히 몰입해보기도 한다. 그럼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인간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일은 이런 것일 것이다. 그 들을 삶을 존중하고 이해해 보는 것, 이 들이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낼 공간을 깊숙이 들어가 보는 것, 그 공간들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그려보는 것. 건축가는 다른 사람들을 다른 삶을, 존중해야만 하는 직업이다. 당연하고, 모두가 다 알 것 같지만 다수의 건축회사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이 대전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라가 영국 건축협회가 재정한 영국건축가 12가지 원칙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원칙이다. 나는 이 윤리 강령을 읽고 영국에서 건축사를 따기로 결심했다.
-끝
'회사 바로 옆에 한식당이 있다니'의 20화 연재를 마칩니다.
연재를 시작하고 마치기까지 6개월 동안 저는 실습 기간을 무사히 넘겼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일하는 것이 힘들어질 무렵 영국 건축사를 따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역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축사를 따고 그것에 대해 쓰고 싶어지면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