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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부부 Oct 30. 2022

인턴 음악치료사, 나를 성장시킨 날들

음악치료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내가 다닌 대학원 과정에서는 임상실습을 진행한다. 임상실습은 실제 내담자를 만나며 음악치료를 실습하며 더욱더, 정말 많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된다. 인턴 음악치료사가 되기 전까지의 임상실습은 학교에서 배정해주는 대상 군에 맞춰 음악치료 실습을 진행한다면, 인턴 음악치료사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대상군에 맞춰 실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자 강점이 된다.      


학교생활을 하며 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세팅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음악치료를 공부하던 새내기 대학원생 시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큰 계기였다. 엄마와 아빠가 맞벌이로 일을 하셨기에,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이 참 많았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몸이 안 좋아지신 할아버지는 완화의료센터에서 통증을 조절하며 임종을 맞이하셨다. 그때의 기억이 내게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환자와 보호자와 함께 화분을 만들기도 하고, 임종이 가까워진 환자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의료진과 봉사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료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다.      


음악치료 인턴십은 3차 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 하게 되었다. 꼭 그 기관에서 인턴십을 하고 싶었기에 인턴십 기관이 정해지기까지 정말 많이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내가 꿈꾸던 기관에서 음악치료 인턴십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턴십은 1040시간 이상을 채워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기관에서 인턴십하면 인턴 시수 채우는 것이 매우 어려울 거야. 다른 기관 하는 게 어때?’라는 말을 해주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못해볼 경험이라는 생각에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던 나의 욕심도 한몫했다. 아, 물론 결국 인턴 시수가 부족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교내 음악치료 연구실에서 인턴십을 함께 수행하게 되었다. 덕분에 더 다양한 대상군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참 다행이다. 

     

완화의료센터에서 인턴 음악치료사로 첫 출근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치료사 선생님들이 한 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아동부터 성인, 노인, 임종기 환자까지 다양한 연령과 진단명을 가진 환자들을 만나기 위해 의사, 간호사, 음악치료사, 놀이치료사, 미술치료사, 자원봉사자 등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근무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멋있다고 느껴졌다. 나도 공부를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기관 내에 음악치료사 선생님 2분이 계셔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암환자에 대한 이해, 임종에 대한 이해, 각 진단명에 따른 통증 부위, 내가 주의해야 할 것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그들이 운다면 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대상 군이었다는 생각에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음악치료사 선생님들이 환자를 만난 후 작성하신 일지를 보며 공부를 시작했다. 어떤 진단명이 있는지, 이 진단명을 의학용어로 어떻게 표기하는지도 공부해야 했다. 의료환경이다 보니 인수인계 과정에서 의학용어로 인계받는 경우가 많았다. 적어도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인턴 음악치료사라는 이름으로 나도 하얀 가운을 입고 일한다는 생각을 하며 책과 논문을 찾아 공부했다. 제일 컸던 고민은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였다. 섣부른 위로를 할 수도 없었고, 침묵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치료사 선생님의 세션을 함께 관찰하며 선생님들이 사용하는 언어적 표현들을 잘 기록하고 집에서 신랑을 앉혀놓고 수도 없이 연습하기도 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며 보낸 하루하루가 모여 성장했다. 간호사 선생님께 인수인계를 직접 받고, 환자를 만나러 기타를 메고 혼자 찾아갈 만큼 성장했다. 처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시절을 뒤로한 채, 그들에게 안전한 음악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인턴 음악치료사로 성장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음악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았다. 함께 노래 가사를 보며 울고, 웃고. 추억을 공유하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환자와 보호자를 보며 처음으로 ‘아, 이게 음악치료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정적이 흐르는 병원환경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면, 너도나도 고개를 내밀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저도 참여해도 될까요?”라고 물으며 악기 연주에 참여하기도 하고, 들리는 노랫소리에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가족에게 노래를 선물하고 싶다며 노래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함께 울고 웃으며 참 많이 성장한 시간이 되었다. 적어도 ‘이런 음악치료사가 되고 싶다.’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에 잊지 못할 음악치료 인턴십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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