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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부부 Oct 30. 2022

나의 첫 내담자, 안녕.

누구나 처음에 대한 기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설레지만, 또 처음이라서 긴장되고 떨리는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는 특권의 시간이다. 이번엔 인턴 음악치료사로 완화의료센터에서 근무하며 만난 나의 첫 내담자에 대한 기억을 꺼내볼까 한다. 사실, 정말로 나의 첫 내담자는 어쩌면 내가 첫 실습을 나가 만났던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늘 그룹으로 구성된 음악치료 실습이었기에 그들이 나에게 ‘나의 첫 내담자’라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에게 내가 소홀했거나,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내가 생각했던 나의 첫 내담자의 기억이 아닐 뿐. 


내 기억 속 나의 첫 내담자는, 인턴 음악치료사로 3차 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 근무할 때 만나게 되었다. 이름도 또렷하게, 얼굴도 또렷하게, 그가 좋아했던 음악까지 또렷하게 기억나지만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아마도 저 파란 하늘 어딘가에서 아픔 없이 행복하게 계시지 않을까. 그녀와의 첫 만남은 간호사 선생님과 음악치료사 선생님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며 시작되었다. 자궁경부암 말기였고, 나이가 많지 않은, 하지만 임종을 앞둔 그런 환자였다. 임종 준비 중이라는 인수인계를 받을 때부터 덜컥 겁이 났다.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내가 어떤 치료사로 그녀를 만나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녀와 비슷한 나이대를 가진 분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 가사지를 프린트해서 인사를 하러 갔다. 처음 가자마자 세션을 진행하기보다, 나를 소개하고, 음악치료를 소개하며 음악을 통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아니, 어쩌면 내 마음의 준비시간이 필요했는 걸 지도 모른다. 1인실을 사용하고 있는 그녀의 방에 처음 노크를 하고 들어갔을 땐 침대에 누워 눈을 뜬 채, 가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인사를 하며 내 소개를 했다. 음악치료라는 것을 처음 들어본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선명하지만, 그녀는 흔쾌히 음악을 감상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녀보다 그녀 곁에 있던 가족들이 더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우리 언니가 음악을 진짜 좋아해요.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듣는 것도 좋아해요.” 괜히 반가웠다. 이런 반응이라면 내가 마음 편히 세션을 준비할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기력이 없어 의사소통이 힘들었던 그녀는, 동생의 입을 빌려 좋아하는 가수와 좋아하는 노래를 내게 소개했다. 무표정이던 그녀의 얼굴에 잠깐 미소가 번지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얼굴 뵙고 인사를 하러 왔다고 다시 한번 설명하며, 좋아하는 음악과 노래 가사지를 준비해서 다시 찾아뵙기로 했다. 꽤나 힘들법한데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를 뒤로한 채 병실을 나왔다. 


병실을 나와 완화의료센터 사무실로 돌아가 그녀와 함께할 음악을 고르고, 가사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팝송을 즐겨 듣는 그녀는 ABBA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맘마미아’. 웃음이 났다. 내가 기타 치며 불러주려 했는데, 차마 내가 불러줄 수가 없는 곡이었다. 원곡의 느낌과 비슷하게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이 어려울 거라 판단하고, 음원을 재생하여 감상하기로 다른 음악치료사 선생님과 토의했다. ‘맘마미아’ 곡 이외의 다른 곡들도 준비해서 다시 그녀를 찾아갔다. 노크를 하고 병실 문을 열자,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환하게 나를 맞이하는듯한 표정의 그녀가 침대에 앉아있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음악을 들려드리려고 한다. 제일 편안한 자세로, 오로지 음악에 집중해달라.”라고 말하며 가사지를 내밀었다. 그녀는 가사지를 손에 든 채, 두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했다. 아무 기력이 없어 보였던 그녀였는데 음악이 시작되자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고, 손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음악에 반응했다. 두 눈을 감고 그 누구보다 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곁에서 가족들이 지켜봤다.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편안한 시간이 되고 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음악이 멈추자 그녀는 손가락을 내게 세우며 한번 더 듣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녀가 비언어적으로 표현한 음악적 반응을 한번 언급하며 ‘내가 당신을 지지하고 있어요.’라는 마음을 표현한 후 다시 한번 음악을 감상했다. 이번엔 침대에 기대 좀 전보다 더 편안한 자세로 음악을 감상하는 그녀였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에도 많은 체력을 써야 하는 그녀이기에, 그녀는 음악을 감상하며 잠시 잠들었다. 전날, 통증으로 잠을 잘 못 잤다는 보호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음악을 들으며 잠시라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그 이후에도 그녀는 다양한 팝송을 듣고 싶다고 의사를 표현했다. 보호자들의 도움을 받아 듣고 싶은 음악을 미리 적어놓는 등의 노력도 보여줬다. 그녀와 매일 만날 수 없었지만 격일로 그녀의 병실을 찾아가 함께 음악을 감상하며 편안한 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그녀와 다섯 번째 만남이 있던 날. 약속한 시간에 노크를 하고 병실 문을 열었을 땐,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수많은 기계음이 소리를 내며, 가족들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그녀는 침대에서 거친 호흡을 하고 있었다. 당황하며 잠시 주춤하는 사이, 그녀의 동생이 내게 와서 “선생님, 음악 들려주세요. 언니가 제일 편안해하던 시간이었잖아요. 언니도 좋아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다시 그녀의 곁에 서서 그녀가 듣고 싶다고 했던 노래들을 함께 감상하기 시작했다. 거친 호흡을 내쉬는 와중에 잠시 눈을 떠 나를 쳐다보던 그녀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며 오열하던 가족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그녀는 더 이상 병실에서 볼 수 없었다. 분명 그날도 그녀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눈을 감은채 거친 숨을 내쉬던 그녀가, 잠시 눈을 떠서 나를 쳐다본 그 순간. 아마도 그녀는, 음악이 들리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눈을 떴던 것이 아닐까. 청각은 우리가 가진 감각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감각이라고 한다. 그녀는 삶의 마지막 순간, 음악을 들으며 조금이라도 편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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