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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부부 Oct 30. 2022

스트레스 풀기 딱 좋아

민아는 참 특이한 케이스였다. 보호자를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며 아동보호기관을 통해 의뢰된 아이였다. 내가 모든 일을 다 알 수 없지만, 아동을 위해 일하는 음악치료사로서 그동안 민아가 홀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외로움을 느꼈을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민아와 처음 만나던 날, 긴 머리를 한 민아는 굉장히 높은 텐션을 가지고 치료실에 들어왔다. 마치 나를 원래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가족에 대한 언급은 피하는 모습이었다. 첫 만남부터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잘 알았기에, 조급해하지 않고 민아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음악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민아는 날 처음 만난 그날도 자신이 알고 있는 피아노곡을 소개하고, 피아노, 칼림바,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생각보다 수준급의 실력을 가진 민아였다. 피아노로 자신이 외워서 연주하던 연주곡을 들려주었는데, 치료실 건반이 워낙 가벼운 건반이라 손이 이리저리 막 굴러가는 것을 감안해도 긴 연주곡을 모두 외워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주로 학교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악보는 잘 볼 줄 몰라 듣고 하나씩 연습한다고 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한눈에 보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치료실 내 악기장에 있던 칼림바를 보고 "선생님, 저거 칼림바예요? 해봐도 돼요?"라고 물으며 적극적으로 나서던 민아는 칼림바도 연주할 줄 안다고 했다. 어떤 곡을 연주해줄지 기대하고 있는데, 화음이 들어간 '작은 별'을 연주해주었다. 단순히 칼림바를 한두 번 해본 솜씨는 아닌 것 같았다. "민아야, 칼림바는 언제 배웠어?"라고 물었더니 미소를 지으며 학교에서 배웠다고 답하는 민아였다. 음악에 대한 민아의 굉장한 자부심이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음악이 민아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고나 할까. 민아는 "저는 잘 때도 음악을 틀어놓고 자요. 음악은 저한테 뗄 수 없는 존재예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음악으로 풀고, 우울할 때도 음악으로 위로받거든요."라고 했다. 민아가 음악을 통해 느끼는 안정감이 굉장한 모양이다. 내가 어떤 부분을 민아와 함께 할 수 있을까 고민한 후 내린 결론은, 음악을 통해 정서적 지지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연주든, 노래든 간에 음악이라면 민아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아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민아가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탐색하고, 함께 들어보고, 함께 연주해보기도 했다. 민아가 좋아한다고 한 노래의 가사를 바꿔서 우리만의 노래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함께 만든 노래를 민아가 직접 큰소리로 불러보기도 했다. 평소에도 음악을 통해 편안한 감정을 많이 느끼던 민아라서 그런지, 내가 제안하는 활동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했다. 자신이 없을 때 "이걸 왜 해요?", "이거 이상한데?"라는 부정적인 표현들을 하기도 하였으나, 그럼에도 끝까지 해내고 마는 민아를 보며 '잘 해내고 싶은 욕구를 저렇게 표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민아가 제일 좋아하는 활동은 매시간 조금씩 바뀌었는데, 주로 악기 연주와 노래 부르기였다. 악기 연주를 하는 날엔 피아노나 기타를 꽤 오랜 시간 연주했다. 단순히 악기 연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악기 연주를 했더니 기분이 어땠는지, 오늘은 왜 이 악기를 선택했는지 등 다양한 감정을 함께 표현하고, 민아가 악기 연주를 통해 경험하는 감정들이 매우 긍정적인 감정들인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민아가 꼭 연주해보고 싶다고 표현한 곡들의 악보를 준비해 함께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시간도 가졌다. 민아는 악보 보는 것을 어려워했지만, 평소 쉽게 포기하는 것이 많다는 민아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끝까지 해내려는 의지가 대단했다. 뜨거운 열기가 눈에 보이는듯했다. 기타 연주도 마찬가지였다. 클래식 기타를 쳐 본 적 있다는 민아는 기타 학원까지 다니게 하는 열정을 보였다. 기타를 치면 기타 줄을 세게 누르느라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기곤 하는데, 민아는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저 즐기고, 또 즐기고, 계속 즐기는 모습만 보였다. 함께 악기를 연주하고, 민아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민아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보이는듯했다. 혼자 즐기던 음악을 누군가와 함께 즐긴다는 것 자체만으로 민아에게 굉장한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싶다. 큰일을 해낼 순 없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되는 사람이고 싶다는 나의 작은 꿈이 민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 음악이 이렇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니, 내가 그런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음악치료사라니.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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