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를 처음 만난 건 어느 가을날이었다. 새롭게 일하게 된 센터에서 만나게 된 서아는 선택적 함구증이라고 했다. 선택적 함구증은 특정 상황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증상을 말하는데, 말을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느낌보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 증상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다른 치료사에게 인수인계를 받는 과정에서 이미 얼굴을 한번 봤기 때문인지, 아니면 치료환경이라는 특수함 때문인지 서아는 처음 만난 내게도 곧잘 말을 했다. 감정을 모두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서아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꽤 적극적인 편이었다.
어떻게 서아를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서아가 여러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자기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누군가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차근차근 자기표현의 과정을 돕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자기표현은 결국 자기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야 하는 일이라, 누군가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서아의 자기표현을 위해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활동적인 서아와 함께 악기 연주활동을 계획했다. 다양한 악기들을 서아가 직접 탐색하고, 어떤 악기를 선택할지 고르는 것도 서아의 자기표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악기를 골랐다면, 왜 그 악기를 선택했는지, 악기를 연주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등 다양하게 서아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처음엔 "네", "아니요"처럼 단답으로 대답하던 서아에게 끊임없이 모델링을 보여주고자 했다. "선생님은 이 악기를 선택했더니, 비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선생님은 악기 연주하는 방법이 너무 단순한 것 같아서 이 악기를 선택했어."처럼 서아가 대답할 수 있는 표현들을 내가 대신 대답하며 '서아야, 이렇게 대답하면 돼.'라는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아의 대답은 점점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선생님, 이건 진짜 큰소리가 나서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 같아요.", "선생님, 이건 바닷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 서아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웃음소리도 점점 많아져 치료실 밖 대기실에서 우리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 모두가 알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치료실에서 이렇게 적극적인 서아는 여전히 학교에서 입을 닫고, 서아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였으나 그래도 발전이 있었다. 서아가 마음을 여는 친구가 생겼고, 친구에게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고, 담임선생님에게도 귓속말로 서아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의 성장은 놀랍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잘 따라와 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 안에서 놀라운 성장을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반성하게 된다. 서아도 그랬다. 함께 악기 연주를 하고, 함께 노래를 만드는 과정이 서아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했다. 어떻게 생각을 표현하는 건지, 내 생각을 말할 땐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 건지를 함께 연습하고, 배워가는 서아의 모습을 통해 더 좋은 치료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