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좋아하는 유찬이는 나를 처음 만난 날, "선생님 슈돌 알아요?", "벤틀리 알아요?", "샘 해밍턴 알아요?"를 무한 반복했다.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반응이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이해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은 아동이었기 때문에. 자폐스펙트럼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사회적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상동 행동이라 불리는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 정도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인데 유찬이는 그래도 언어적 의사소통이 가능했기에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을 것 같았다. 유찬이를 만나본 후, 어떤 목표로 유찬이와 함께 활동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집중력이 짧은 편이었고, 자기 조절이 어려워 제시된 과제를 끝까지 해내는 것을 어려워했다. 감정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상황과 맥락에 적절한 감정을 인지하는 것 또한 어려웠다. 다양한 필요들이 눈에 보였지만, 자기 조절과 감정인지를 제일 큰 목표로 정하고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음악을 통해 어떻게 자기 조절과 감정인지를 도울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 역할이었다. 다행히 유찬이는 음악을 참 좋아했다. 정말 많은 음악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물었을 때 끊임없이 좋아하는 노래를 언급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 노래들을 얼추 비슷하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가요, 동요, ost, 클래식할 것 없이 정말 다양한 노래를 알고 있었다. 악기 연주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음악 감상과 노래 부르기를 할 때는 집중시간이 꽤 긴 편이었는데, 악기 연주를 하면 현저하게 집중시간이 짧아졌다. 그런 유찬이와 '노래'라는 막강한 도구를 가지고 활동을 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유찬이가 좋아한다고 표현한 음악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하나의 노래를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 것부터 시작했다. 음악 1곡이 재생되는 동안 유찬이가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해야 했다.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거나,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등의 돌발행동이 자주 관찰되었으나, 점차 그 횟수는 줄어들었다. 성인들에게도 음악한 곡을 집중해서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음악을 감상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종이에 표현해보도록 했다. 그랬더니 노래 가사에 나오는 단어들을 종이에 그리거나, 글씨로 쓰며 음악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땐 노래의 1절을 집중해서 듣는 것도 어려워했던 유찬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노래에 집중을 하고, 노래 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내게 되묻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유찬이의 발전이 보이는 것 같아 참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유찬이와의 시간도 고비가 있었다. 감정인지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큰 문제행동을 초래할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상황은 이러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님께 혼이난 유찬이는 아마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본인도 화가 잔뜩 난 그 상황에 집에서 키우던 물고기를 보게 되었고, 손으로 물고기를 눌러 죽이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너무 놀란 보호자는 또다시 유찬이를 혼내는 상황이 반복되었다고 했다. 급히 연결된 유찬이 부모님의 전화상담에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유찬이의 부모님 목소리의 떨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유찬이에게 왜 물고기를 죽였는지 물어보셨나요?"라고 물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부모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그냥 많아서 죽였대요." 아, 감정인지가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유찬이 부모님께 유찬이의 상황을 잘 설명드리고, 함께 대처방안을 찾아보겠다고 이야기한 후 치료실에서 유찬이를 다시 만났다. "유찬아 잘 지냈어?"라고 물었을 뿐이었는데, 유찬이는 마치 누구에게 답답한 감정을 털어놓고 싶었다는 듯 그때의 상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는 화가 났어요. 근데 그냥 물고기가 많은 게 싫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그랬어요." 유찬이의 대답 속에 내가 유찬이를 위해 어떤 목표로 활동을 해야 할지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랬구나, 너의 감정을 인지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필요했구나.'라고 생각하며 유찬이와 함께 할 활동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어쩌면 유찬이라는 섬에 갇혀 사는 느낌이었다. 언어적으로 의사소통을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사회적 의사소통의 방법을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유찬이를 보며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을 열심히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유찬이 마음속에만 갇혀있는 유찬이의 마음과 생각들이 세상 속에 조금씩 고개 내미는 모습을 기대하기로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그래도 그 길을 꼭 함께 가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