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캔디부부 Oct 30. 2022

착한 아이 증후군

음악치료사로 일을 하며 많은 장애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발달센터에서 일을 하면, 발달적 이슈가 있는 장애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시선에 장애아이와, 장애아이를 돌보는 부모는 보이는데 의외로 장애아이의 형제자매는 큰 관심을 못 받는다. 정상발달을 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럴 거라 생각되지만, 형제자매에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아이들도 심리적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희수도 그런 아이중 한 명이었다. 희수는 스트레스 해소를 목표로 의뢰되었다. 처음 문서만 보고, '초등학생이 어떤 스트레스가 있길래 스트레스 해소를 목표로 음악치료에 의뢰가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문서를 살펴보며 점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희수에겐 장애를 가진 언니가 있었는데, 언니의 장애정도가 심한 편이라 부모의 관심이 모두 언니에게 쏠려있었다. 희수의 언니는 중증 자폐스펙트럼을 진단받아 언어적 의사소통, 사회적 의사소통이 어려웠고, 그렇다 보니 희수의 언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언니와 함께 자란 희수는 늘 언니를 챙기고 보살펴야 했고, 언니를 보살피느라 고생하는 부모님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없는, 흔히 말하는 '착한 아이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희수가 겪게 된 환경 탓에 착한 아이로 보여야 하는 일종의 강박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과하게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거나, 힘들다고 투정 한번 부리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다. 희수 부모님의 평가도 비슷했다. 희수가 어떤 아이인지 물었을 때 "말을 잘 듣고, 착한 아이예요."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다행인 건 희수 부모님의 그다음 대답이었다. "희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여건들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희수에게 장애를 가진 언니가 있는데, 늘 희수의 언니를 챙기느라 희수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 같아 참 미안해요. 분명 희수도 힘들 텐데, 어리광 한 번 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워요. 음악을 통해 즐거운 경험들을 많이 하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희수는 아직 어리광 부리는 것이 전부여도 모든 것이 용서되는 10살 어린아이였다. 희수 부모님의 대답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대답 한마디에 희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졌으니까. 희수와 어떤 목표로 활동을 할지가 너무나도 분명했기에, 희수와 함께하는 시간들은 그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희수는 감정카드를 참 좋아했다. 다양한 감정이 그려져 있는 감정카드를 이리저리 살피며,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내게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말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희수는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 슬픈 일은 또 무엇이었는지, 맛있는 것을 먹었고, 어디에 놀러 갔는지 등등 구체적이면서도 실감 나게 한 주간의 일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신나다'라는 감정카드를 고르고, 가족들과 함께 어린이대공원에서 동물을 본 것에 대해 소개하는 희수의 모습은 매우 해맑았다. 처음엔 내게도 긍정적인 감정만 표현하려고 했던 희수는 회기가 진행될수록 부정적인 감정들도 표현하기 시작했다. 늘 긍정적인 모습, 밝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희수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희수가 처음 선택한 부정적 감정카드는 '억울하다'였다. 억울하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까 싶었지만 희수가 표현하는 억울한 감정들은 제법 억울하다고 느껴질 법한 감정들이었다. 답답하고, 억울한 순간들을 악기 연주로 마음껏 표현하도록 도왔다. 희수는 게더링 드럼이라는 악기를 선택하고, 꽤 큰 소리로 악기 연주를 시작했다. 희수가 연주하는 큰 울림의 악기 소리가 치료실을 가득 채웠다. 연주가 끝나고 긴 한숨을 내쉬며 "이제 좀 살 것 같다!"라고 말하던 희수. 그동안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아왔던 감정들이 희수의 마음을 얼마나 무겁게 했을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희수는 이젠 제법 다양한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긍정적인 감정들만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도 사라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나쁘다고 생각하던 모습도 사라졌다. 그 감정들이 모두 희수 자신의 것임을 알게 된 해맑은 희수만 남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