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치료사로 일을 하다 보면 악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일반 음악학원에서 장애아이를 받아주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음악학원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오고 가는데 교사는 한정적이다.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음악학원 선생님일지라도, 장애아이를 경험해본 적 없는 선생님이 대부분이다. 나도 음악치료를 공부하기 전, 음악학원과 유아음악교육 회사에서 일을 했었다. 음악학원에서 알바를 할 땐 정말 매시간 쏟아지는 아이들을 만나야 했다. 아이들의 특성은 다 다르지만, 그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러 왔다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그저 피아노를 가르치면 되는 일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그때 신규 아동이 상담을 왔었는데 발달이 느린 친구라고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원장 선생님은 당시 음악치료를 공부하고 있던 내게 의견을 물어보시더니, 힘들 것 같다고 판단하시고 학부모에게 전화를 하셨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 아이를 책임질 만한 교사도, 그만큼의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유아음악교육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서울에 있는 놀이학교, 영어유치원 같은 기관에 출강을 했다. 나름 서울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기관들이었는데,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기관들이다 보니 담임교사 1명, 부담임 교사 1명이 7-8명의 아이들을 케어했다. 여러 기관에 출강을 다니며 느꼈던 것은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기관이라는 기대하에 장애아동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이다. 음악치료를 공부하다 보니 장애아동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그러다 보니 눈에 띄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소수정예라서 그 아이들이 제대로 된 케어를 받는다기보단, 오히려 방치되는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똑 부러지는 친구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참 많이 마주했다. 어느 날은, 출근을 했는데 장애아이가 등원을 하지 않았길래 담임선생님께 여쭤보니 너무 슬픈 대답을 들었다. "00 이가 옆에 있던 아이와 부딪혀서 옆에 있던 친구 팔에 상처가 났는데, 그 부모님이 신고를 하셔서 00 이가 퇴원 조치되었어요." 정말 물음표 가득한 대답이었다. 만약 다른 아이 었어도 이렇게 유치원을 그만두어야 했을까 싶었다.
호원이는 음악을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듣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드럼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아이. "드럼 칠 때 기분이 어때?"라고 물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요."라고 답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였다. 발달장애를 가진 호원이는 또래보다 인지기능이 조금 낮고, 신체적 어려움도 가지고 있다. 가끔 생뚱맞은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무엇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큰 아이였기에, 호원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많아지도록 돕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드럼이었다. 호원이도 너무 좋아했던 드럼이고, 호원이가 보이는 열정이라면 나도 열심히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호원이와의 악기 연습. 처음엔 내가 음악교사인지, 음악치료사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상황도 많았지만, 그 혼란스러움은 점차 자리 잡혀갔다. 음악치료사로서 호원이의 자신감 향상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왜 호원이와 드럼을 함께 연주해야 했는지 판단이 서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인지기능이 낮다 보니, 드럼을 전문적으로 학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 호원이와 드럼을 연주해나가면 좋을지 고민했을 때, 호원이가 드럼 연주만큼은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했더니 그 답이 나왔다.
호원이가 좋아하는 음악 중 드럼으로 연주해보고 싶은 음악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함께 탐색하기로 했다. 음악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한 토의도 가능했다. 이 노래를 왜 좋아하는지, 이 노래는 언제 주로 들었는지 등 음악에 대해 토의하며 호원이의 마음도 함께 알아갈 수 있었다. 드럼 연주만을 가르쳐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호원이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어간다는 점에서 음악치료사로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함께 연주할 음악 곡을 정하고 난 후, 드럼 악보를 보며 함께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호원이가 연주하고 싶은 대로 연주하도록 할 수도 있었지만, 드럼 악보를 함께 공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호원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달려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호원이의 인지기능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도 드럼 악보 보는 법을 함께 공부해야 했지만 그동안 교회에서 곁눈질로 드럼 연주하는 것을 보고 배운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한곡을 연주하는 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호원이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더 잘하고 싶어서 집에서 음악을 들어오거나, 드럼 악보에 무언가를 빼곡하게 써오기도 했다.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아이의 열정을 보니, 나도 더 열심히 돕고 싶었다. 그렇게 호원이와 한곡, 한곡 연습을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이 되며 동시에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 호원이에게 음악시간이 그런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했다. 그리고 어느 날, 호원이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 처음으로 자신 있게 제 특기가 드럼이라고 말해봤어요."라고. 이렇게 또 한 아이가 조금씩 발전했다니, 음악치료사로서 참 행복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