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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Jun 14. 2024

[스코틀랜드] 내가 상상한 스카이섬

퀴라잉(Quiraing)

이드리길(Idrigil) 마을을 지나면서 짝꿍이 지도에서 폭포 지명을 발견하고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다. 폭포라는 이름이 주는 매력이 있기에,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처 길을 들어섰고 그 지명을 지나쳤는데도 폭포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대로 돌아가려던 차에 우리가 들어선 길로 많은 차가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어딜 그렇게 가는 것일까 호기심이 생긴 우리는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오늘은 그렇게 발견하게 된 퀴라잉이라는 장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길이 좁아지는데? 괜찮을까...?" 

"저 앞에 차가 계속 가니까 괜찮을거야. 저들이 어디 가는지 한번 가보자."


우리는 앞에 가는 차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갈림길도 없이 직진만 하면 되는 길이라서 그들을 쫒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마나 갔을까, 길이 조금 좁아지고 전형적인 시골길이 나타났다. 길의 상태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서 가는 길에 차가 통통 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길 양 옆으로는 양들이 정말 많았는데, 차가 지나가도 전혀 아랑곳 않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 길을 올라가면서 우리는 몇번이나 되돌아갈까를 고민했다. 좁은 시골길을 따라 꽤 오랫동안 올라갔는데 별거 없거나 그냥 이 산을 통과하는 지름길일 뿐이라면 크게 실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앞과 뒤에서 우리와 함께 가는 차들이 있어서 그들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갔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멀리 수많은 차가 세워져 있는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저곳을 가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채 그저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확신이 들었다. 여행할 때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면 예상하지 못한 장소를 발견하곤 한다. 지금 우리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서 그런 순간을 마주하기 직전이었다. 과연 어떤 것이 있길래 이렇게 험난한 길을 뚫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이제부터 우리 마음 속에는 불안감이 사라지고 설렘과 기대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우리가 멀리서 바라본 장소에 도착했다. 수많은 차들이 있는 곳은 주차비를 내야하는 정식으로 만들어진 주차장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주차비가 싸지는 않았지만, 이미 기대감에 가득찬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돈을 냈고 당당하게 차를 댔다. 



"언뜻 보기에 트레킹 코스인 것 같은데? 저 위에 사람들 올라가는 것 봐바."

"그러네. 우리도 조금만 가볼까?"


차에서 내린 우리는 일단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는 온통 산이었고, 그 모습이 멋있긴 했지만 하이랜드를 여행하면서 지금까지 멋진 풍경을 많이 보면서 지나왔기에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 주차비도 냈고, 차에서 내렸으니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조금만 가보기로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면 최소한 실패는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와서 산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향해 걸어갔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우리 주변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한쪽을 가로막고 있던 산이 조금씩 옆으로 밀려나면서 그 뒤에 숨기고 있던 풍경을 서서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더 갔을 때 우리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게 만들었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풍경이 나타났다. 


그제서야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험한 길을 뚫고 이곳까지 찾아오는지 이해가 되었다. 오면서 길이 험하다고 몇번이나 불평했지만, 이런 풍경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다면 충분히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차를 돌려서 돌아가지 않은 우리의 뚝심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풍경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을 온전하게 묘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이랜드의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는 나무가 없었고, 산은 풀과 바위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나무가 없어서 오히려 이 풍경의 진정한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일정하지 않은 산의 굴곡과 바위 절벽의 웅장함이 더욱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산 아래로는 평원이 길게 이어지고, 그 끝에는 바다가 보이는 완벽하고 장엄한 절경이었다.  



"내가 상상한 하이랜드의 풍경이 이런 모습이었어. 정말 눈을 뗄 수가 없다."


그 풍경을 처음으로 마주했던 그 순간의 감동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는 한동안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모습만 바라봤다. 너무나 절경이어서 어떤 말을 해도 그 모습을 담아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이 절경을 눈에 담아낼 기회가 나에게 주어져서 감사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천천히 감상했다. 한참을 눈만 움직여서 감상하다가 마침내 우리는 입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내뱉은 첫 말은 'amazing'이었다. 간단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을 그나마 표현해 낼 수 있는 단어였다. 그리고 내가 스카이섬 여행을 꿈꿨던 오랜 기간에 머릿 속에 단편적으로나마 그렸던 스카이섬의 풍경을 현실에서 마주한 순간이었다. 정말 내가 상상했던 풍경이 그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실현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 생각을 하는데 그제서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주차장에서 불과 10분 정도 걸어왔을 뿐인데, 우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눈 앞에 보이는 풍경에 압도당했고, 그저 그 모습을 눈으로 카메라로 담아내기 바빴다. 비슷한 사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소재가 워낙 완벽해서 사진을 대충 찍어도 모든 사진이 작품처럼 나오기에 사진에 대한 만족도가 많이 올라갔다. 하이랜드를 여행하면서 웅장한 자연 풍경을 많이 봤지만, 퀴라잉에서 만나게 된 풍경은 그 어떤 것과 비교를 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 대한 정보를 미리 찾아보지 않아서 이 풍경에 대한 감상이 훨씬 더 극적이었고 강렬하게 다가왔다. 올라오는 길 도중에 그냥 돌아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찔했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추후에 이 장소를 알게 되고 바로 코 앞에서 뒤돌아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땅을 치고 아쉬워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자리에서 한참을 바라보던 우리는 그제서야 길을 따라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트레킹 코스는 정말 길었는데, 우리는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한 곳에서만 보고 그냥 돌아가기에는 이곳의 풍경이 너무도 압도적이고 장엄했다. 그래서 다른 각도에서도 이 풍경을 감상하고 싶었고,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을 우리도 뒤따라 걸어갔다. 우리는 매 걸음 내딛을 때마다 주변 풍경을 둘러봤다. 조금만 가더라도 주변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발걸음은 매우 더뎠다. 그래도 어디까지 갈 거라는 뚜렷한 목적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 되는 대로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보기로 한 거라서 굳이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이 순간 우리의 목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이 장엄한 풍경을 온전하게 담아내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숨이 멎을 듯한 풍경 속에도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줄 요소가 있었다. 바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산양이었는데, 트레킹 길 주변에 산양이 정말 많았다. 우리 바로 옆에서 풀을 뜯고 있기도 했고, 어떤 녀석은 아찔하게도 절벽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절벽에서 살아남도록 진화하여 그들 나름대로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절벽을 이동하는 산양을 볼 때는 '조심!'이라는 단어가 절로 새어나왔다. 자연에 압도당한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의 모습은 정말 한가로워 보였다. 우리 주위에서 풀을 뜯던 산양 몇 마리가 잠시 우리를 쳐다봤다. 그들은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감탄만 하는 우리에게 '새삼스레 뭘 이런 풍경을 갖고 그래'라는 말을 전하는 듯했다. 그들에게는 이 풍경이 그저 집 앞산, 또는 뒷산이기에, 딱히 특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풍경을 처음 본 우리에게는 그저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걸작이었다. 



결국 우리는 멀리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풍경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언제 다시 이런 풍경을 마주할 수 있을까하는 아쉬운 마음을 담은채 우리는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퀴라잉에서 바라본 풍경은 내가 인생에서 한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웠다. 이 풍경만으로도 콘월에서부터 먼 길을 달려온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스카이섬까지 달려올 의향이 얼마든지 있다. 그만큼 너무도 아름답고 찬란한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던 퀴라잉이었다. 

퀴라잉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올라온 길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즉, 스카이섬 북쪽 반도를 일주하지 않고, 퀴라잉을 거쳐 가로지른 것이다. 일정에 없던 퀴라잉을 방문하고, 또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이 반도를 일주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장소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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