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자각 -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
2-4) 시간을 죽이고 싶었던 여자(시간관리문제)
마냥 노는 것이 좋았던 어린 시절에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무엇이라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시간 아닌가? 그러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정에 닥치면서 나에게 시간은 ‘돈을 갚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내가 쓴 돈도 아닌데, 대신 갚아야 한다는 것이 억울하기만 했다. 이 지루하고 혐오스러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서 삶에 즐거움이 없었다. 부채를 청산해야 자유가 주어질 것만 같았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번갯불에 콩을 볶듯이 눈을 감았다가 뜨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 있기를 바라는 기적을 꿈꿨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중식당 아르바이트, 호이스트 운전, 빚은 돈에 노예로 살게 만들었다. 도망가고 싶고, 마주하기 싫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을 느꼈다. 커다란 실타래가 엉켜있는데 그것을 혼자 풀다가 계속 꼬이기만 하는 실타래를 보며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어.’ 여행가이드. 한국을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벌어야 하는 돈의 합의점을 찾은 곳은 요르단이었다. 사실 한국이 싫어서 도망이 가고 싶은 거였다.
요르단에서 했던 일은 오퍼레이터와 가이드 일이었다. 요르단이 성경과 관련된 지역이어서 보통 2박 3일 일정으로 순례객들이 왔다. 한 달에 4번 정도 일을 하면 2주 일을 하고, 2주는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해외에 있다 보니 비자문제가 생긴다. 요르단은 일반 여행객에게는 한 달 비자를 주었고, 연장을 하기 위해서는 경찰서에 가야 한다. 경찰서에서 2개월 연장을 받은 이후에는 반드시 주변국을 나갔다가 들어와야 했는데 그것을 비자여행이라고 부른다. 비자여행으로 불가피하게 주변국을 여행하게 될 때에 마냥 여행이라고 들뜨는 기분을 마음껏 즐길 수는 없었다.
‘나는 빚이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즐기는 건 죄가 아닐까?’
모든 순간에 빚을 의식하며 죄책감을 느꼈고, 스스로를 빚이 있는 죄인이라 여겼다.
그러다가 요르단 숙소 아래층으로 이사를 온 코이카 단원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오빠, 동생으로 서로의 가정사를 편하게 이야기했고, 가지고 있는 부채가 있다는 걸 공유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달콤하지 않았다. 서류상으로 호적에 결혼을 올리고 나면 배우자의 거주지로 주소지를 이전하게 되었는데, 시댁으로 채무독촉장이 날아간 것이다. 친정엄마는 시댁에 전화를 걸어서 당신 며느리 잘못이 아니라고 사과를 하셨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건 새봄이 잘못이 아니에요! 다 우리 때문입니다.’
변명의 말로 모든 일을 덮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엄마의 전화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 피하고 싶은 상황은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망신의 철퇴를 얻어맞은 느낌은 내 몸이 개미처럼 작아져서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망신’ 창피하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절대로 들키고 싶은 않은 치부를 가장 숨기고 싶은 사람에게 까발려진 상황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감정을 들게 했다. 상황을 헤쳐나갈 용기 있는 어떤 선택을 할 권한이 내게 없고, 그저 상대방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죄인이 된 상황.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용히 이를 악물고 살아내는 것뿐이었다.
‘죽더라도, 혹은 이혼을 하더라도 문제는 해결하고 나서 생각하자 ‘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네가 내 인생 망쳤어’라고 하는 말을 마주해야 하는 건 힘들었다. 무시와 비웃음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삶이 즐거울 순 없으니까. 남편의 도움으로 시댁에 날아온 채무독촉장은 해결했지만, 부채의 규모를 알지 못해서 언제 어떤 고지서가 오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을 느꼈다.
‘내일이 오지 않게 해 주세요.’
눈을 뜨면 정해진 나의 수명이 다해서 천국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아침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크리스천이라서 자살을 할 수는 없으니 편안하게 어느 순간에 내 삶이 멈춰있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무시와 경멸의 시선과 말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왜 그때는 빚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었던 걸까? 예수님이 나의 생명은 구원해 주셔서 천국에 갈 수 있게 해 주셨지만,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 빚의 노예‘로 죽을 때까지 이 굴레에서 절대 헤어나지 못하고 이대로 죽는 삶일 거라 속단하고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답이라고 여긴 것 같다.
귀농을 하고 싶어 했던 남편을 따라 귀국과 동시에 귀농을 하게 되었다. 시골생활에 적응을 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살았던 독촉장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은 끔찍하게 느껴지는 더러운 기분이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이 상황을 마주해야 하나요?’
마음속으로 원망의 감정이 들었다. 마주하는 시간에는 맑은 하늘과 청량한 바람, 녹색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벼이삭의 모습 등 아름다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마음속은 온통 흙비가 내렸다. ‘빚이 있는, 이 악물고 조용히 살아야 하는 죄인’ 나의 시간은 어떤 선택권도 없는,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는 모습 같았다.
그저 태어났으니 살아내고 있는 듯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40살에 둘째 아이를 낳았다. 식구가 늘었으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간제 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입이 생기니 나를 위해 읽고 싶은 책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시간을 만들고 싶어졌다.
‘책을 읽고 싶어.’
어린아이들을 돌보아야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나누어 사용해야 하니 시간이 부족했다. 새벽 4시,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이 시간이 기다려졌다. 이제는 빚을 갚기 위해 슬프고, 고생스러운 시간이 전부가 아닌,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모르는 것을 배워갈 수 있는 시간을 알게 되었다. 시간은 나를 성장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속 스스로를 가두었던 감옥에서 철창에 비치는 한줄기 햇빛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