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는 마흔의 비밀

2장 자각 -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

by 봄울

2-5) 삶을 통제하지 않고 통제당하는 여자


‘나는 친정에 보내주잖아!’


남편은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다녀오고 싶다는 나의 요구를 거절로 답하며 이야기했다. 우리 엄마(시어머니)는 친정에도 가지 못했다고 하면서. 요르단에서 1~2년에 1번씩 한국에 들어오면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가이드가 직업이다 보니 ‘한국에 들어오면 꼭 연락하세요’ 하는 손님들도 있었는데 결혼 이후에는 만날 수 없었다. 잠시 방문하는 한국 일정은 대략 2주 정도 머물렀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오산에 있는 시댁에서 보낸다. 금전적인 부분에서 남편에게 불편을 준 상황이 많아서였을까? 원하지 않은 답변을 듣고 속상하면서도 ’그래도 만날 거야 ‘ 하는 대답이나 행동은 하지 못했다.


’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결혼하고 친정에만 보내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거야? 어이가 없네~‘


하면서 또 다른 내 자아는 마음속으로 불평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돈문제로 이렇게 주눅이 드는 걸까? 나는 언제부터 표현하지 못하면서 살게 된 걸까?

아버지는 교도관이셨다. 집에서 ‘아니요’라는 말은 금지어와 같았다. 어쩌다가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할 때면 ‘청소해!’하는 명령어가 들렸다. 마음속으로 울면서 생각했다.


‘아빠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하는 거라고! 내가 자유의지로 하는 거야!’


스스로 뿌듯함과 자긍심을 가지고 싶었지만, 아빠의 말로 인해서 나는 ‘시켜서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고, 좌절감이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아빠의 강요에 의해서 하는 행동으로 무기력을 느끼고, 의욕이 싹을 틔워보기도 전에 밟히는 기분이었다. 생각을 해보니 강압적인 아버지의 통제를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학습이 된 것이 있었다.


‘남자는 무서우니까 의견을 말하지 말고 입을 다물어야 해.’


나도 모르게 학습된 잘못된 정보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거나, 갈등이 생기는 충돌 상황을 피하려는 선택을 하도록 했다. 잘못된 학습의 결과로 침묵만 선택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네가 돈을 더 많이 벌어도 집안일은 네가 해야 돼’


가이드를 하면서 남편보다 돈을 더 벌었지만, 상대방이 자존심이 상할까 봐 입을 다물고 집안일을 했다. 함께 사는 동안 청소기를 남편이 잡은 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이다.


‘우리 엄마(시어머니)는 화장대 아래에 속옷을 두었는데, 너는 왜 침대옆에 두는 거야?’


어이없다고 느끼는 사소한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시시건건 시어머니와 비교하는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요르단의 가구들은 제품이 한국처럼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서랍이 제대로 열리지 않다 보니 잘 열리는 가구에 물건을 두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설명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시어머니) 손에는 걸레가 떠나지 않았는데, 너는 왜 안 그런 거야?’ ‘왜 시댁에 전화를 안 하는 거야?’


남자들은 결혼을 하고 나면 효자가 되나 보다. 너무 화가 나는 건 본인이 안 한 효도를 왜 아내에게 요구하느냐는 말이다.


‘네가 하면 되잖아!! 왜 내가 너네 엄마한테 전화해야 되는데?!’


이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마음속 자아의 외침으로 삼키고 입은 꾹 다물었다. 술을 퍼먹고 와서 밤새 시비를 걸고 잔소리에 지쳐있는데, 그런 상태에서 시댁에 전화를 하면 낸들 좋은 이야기가 밖으로 나갈까? 멀리 타국에서 사는 마당에 어른들의 근심, 걱정이 더 쌓이지 않을까? 일일이 설명을 해서 해결될 문제였다면 답변을 했겠지만, 말을 하기도 전에 말문이 턱 막히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대답을 해도 싸움만 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주변에 계신 어른들은 대부분 크리스천이셔서 기도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나도 그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 싫었고,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는 것이 불편했다. 매번 잘못을 저지른 후에 사과를 하는 그의 행동은 발전 없이 같은 실수가 반복되었다.


‘언젠가 바뀌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싫어도 참기만 했다. 그는 나에게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열거하면서 ‘헤어져! 네가 노력하는 것은 알겠는데 내 눈에 안 차!’하는 거절의 말들을 쏟아냈다. 결혼과 연애의 차이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사람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1년에 한두 번 방문했던 한국에서는 오랜만에 시댁에 왔으니 시댁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하기를 바랐다. 돈 버는 메이드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결혼을 하면 다들 이렇게 살겠거니 생각하고 참아야 한다고 여겼다. 튀어 오를 수 있는 스프링을 최대치로 꾹꾹 누른 상태가 되는 줄도 모르고, 누르고 참기만 했었다. 결국 참기만 하며 얻은 결과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쟤는 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야’가 되어 버렸다. 무례했던 남편은 참다가 튀어 오르는 나에게 ‘네가 더 참을 줄 알았지.’라는 말을 했다.

누군가 나에게 무례할 때, 상대방이 누구일지라도 ‘그만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상대방이 악마가 된 것은 ‘내가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차츰 말이 거칠어지고, 욕을 하더니 점점 물건을 던지는 폭력행위에서 신체폭력으로까지 진행되었다. 잘못된 통제에 대해 기본적인 저항을 하지 못하고, 무조건 참기만 한 결과였다.

땅바닥에 누워서 발로 밟히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나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나를 구하기 위해서 경찰의 도움을 받았다. 집을 뛰쳐나와서 알게 된 것은 마음속 깊이 내 자아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이었다.

성경에서는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며, 하나님이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24)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창세기 2:24


신앙이 있어서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참고 기도하고, 상대방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하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꿈꾸었던 예쁜 가정의 모습을 이루지 못하고, 성경대로 따르지 않은 선택을 하기까지 괴로웠다. 절대 넘으면 안 되는 말씀의 선을 넘은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통제와 배우자의 통제를 받으면서 나를 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을 스스로 통제한 적이 있었나?’


나도 선택을 할 수 있어! 다만 상대방과 갈등이나 충돌은 생길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도 권리가 아닐까? 사람이 살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일들인데, 두려워하기만 하지 말자. 나는 나를 지켜줘야 하니까.


‘내 인생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주도권을 넘기며 살았던 삶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원하지 않았던 가정폭력을 겪고 나서야 다른 선택을 할 용기를 얻었다. 나는 나를 구하기 위해 이혼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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