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왜 이 일을 하려 하는가

by 봄울

“혹시 다음 주 목요일, 진안 보듬센터 방문 어떠세요?”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고 있는 기자 엄마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은 세금계산서 마감일이라 업무에

파묻혀 있던 중이었다.


‘아, 맞다. 보듬센터!’


일상 속에 잊고 있던 그 이름이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이 일을 정말 하고 싶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지난 일주일은 정신없이 흘러가 버렸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거래처가 남아 있고,

오늘은 급여까지 보내야 하는 날이다.
디테일하게 스케줄을 챙기며

치열하게 산 것도 아니고,
그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긴 듯

지나온 시간이었다.

그 사이 가족센터 상담도 있었고,

첫째 아이 개별화교육 상담도 있었으며,
주말에는 가족센터 1박 2일 프로그램으로 경주까지 다녀왔다.




“제가 쉬는 날에 가면 좋은데, 일정이 이렇게밖에 안 돼요.”


기자 엄마는 빡빡한 일정표를 캡처해 보여주었다.
나는 회사에 연차를 내기로 하고,

방문 일정을 맞춰 달라고 부탁했다.

요즘의 나를 돌아보면,

몸 컨디션은 좋지 않았고 에너지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늘 따라다녔다.
생각이 멈춰버린 것 같은데,

동시에 그 멈춤을 인지하고 조급해하는 내 모습.
‘발전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답답함과

화가 함께 차올랐다.

정작 집중해야 할 일과 중요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면서,
사소한 불만과 불평만 마음속에 비집고

들어오려는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둘째 아이가 아침에

혼자 유아용 변기에 소변을 누었을 때,
이불에 지도를 그리지 않았을 때,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유치원 키즈톡에는 아이의 소식과

사진이 올라온다.
1학기 때보다 짜증이 줄고,

웃는 날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냥 그게 행복이지’ 싶었다.


더 바라지 않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멈춰 있었던 건 아닐까.


아이를 목욕시킬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반가사유상.
매끈한 허리와 몸통의 라인이

내 눈엔 꼭 닮아 보인다.

말하지 못하는 유적과, 말하지 않고 있는 아이.
그 둘은 나에게 메시지를 건네는 듯하다.


어쩌면 신께서 깨달음을 주시려
둘째에게 ‘침묵의 은사’를 주신 건 아닐까.




말은 하지 않지만 아이는 감정 표현을 한다.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마음에 들면

꼭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며 기쁨을 전한다.
시어머니는 같은 표정으로 방긋 웃으며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신다.

또, 내가 퇴근하면 아이는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찾는다.
원하는 걸 찾지 못하면 짜증을 내며 화를 표현한다.

이런 모습들이 이제는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도 했다.


‘만약 둘째 아이가 말을 하게 된다면,

나는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할까?’


솔직히, 아이가 발달이 느리기 때문에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시작한 길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발달이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마음을,
또 느린 아이들을 향한 세심한 배려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신께서 물으시는 것 같다.


‘둘째 아이가 말을 하게 되더라도,

넌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니?’


그리고 또렷하게 마음에 들려오는 음성.


‘너의 아이가 말을 하게 되더라도,

넌 그 일을 해야 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와 능력이
나에게 부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직 둘째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스스로 쓰는 게 아니라,
부모가 요청할 때, 또는 자신이 뭔가 받아야

할 때만 말한다.


k-mooc에서 발달장애 아이에 대한 교육 강좌를 신청했지만, 아직 강의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얼마나 발달장애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조금 느린 아이들이 세상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며,
단순히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그들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조금이나마 시도해보고 싶다.


어쩌면 세상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할지라도,
나는 상상하고, 시도하고, 기록하고,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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