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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Mar 01. 2021

공무원이 진정한 경찰이 될 수 없는 이유

22살 파출소 순경으로 시작하여 41살 강력형사의 이야기...


공무원이 진정한 경찰이 될 수 없는 이유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

경찰공무원법이라고 있습니다. 야간 근무와 비상동원 등 일반 공무원과는 다른 특수한 근무 환경이지만, 경찰은 국가로부터 신분을  보장받으며 공무원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도둑을 때려잡겠다거나, 조폭을 일망타진하겠다는 일념 하에 경찰을 지원하는 후배는 거의 없습니다. 제 생각에 아마도 지원 동기 1순위는 철밥통이라는 공무원이란 신분일 것이며, 저 역시 그런 맘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청운의 꿈을 품고 경찰에 들어와 현실과 이상의 벽에 수없이 부딪치고 그 벽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제가 경찰관인지, 월급을 받는 직장인인지 점차 모호해져 갈 때 즈음... 경찰 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할 때쯤이 되어 형사과에 지원하였습니다.

형사과에 들어와 제가 본 강력팀의 선배들은 이제까지의 선배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공무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막노동꾼에 가까웠고, 노동자는 일한 만큼 월급을 받아가지만 형사들은 수당도 없는 휴일 잠복근무에 심지어 자기돈까지 써가면서 범인을 쫒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외근형사들에게는 '초과근무수당 지급제도'가 없었습니다)

불교를 믿으시던 한 선배님은 저에게 "너는 아마 전생에 큰 죄를 지었을 거야. 그래서 그 죄를 씻으라고 현생에 강력형사를 하는 걸 꺼야"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범인들은 형사를 은어로 '곰'이라고 부릅니다. 은신처에 숨어 설마 이제는 형사가 없겠지 하고 나섰을 때... 그때만을 기다리며 잠복 중인 형사가 손에 은팔찌를 들고 나타난 모습을 보고, 깊은 동굴 속에서 마치 겨울잠을 자는 듯이 잠복중인 형사의 모습을 일컬어 곰이란 은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희 동료들도 저희를 '곰'이라고 부릅니다. 얘들이 커가는 것도 제대로 못 보고 진급도 느린 데다, 누가 알아준다고 그 힘든 근무를 불평 한 마디도 없이 묵묵히 한다며... 속된 말로 미련하다고 미련 곰탱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진급이 느리더라도, 월급이 똑같더라도 살인적인 근무를 묵묵히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형사로서의 '마인드'였었고, 그 마인드는 단지 악인을 잡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겠다는 단순한 소명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후배들에게 일을 알려주기보다는 먼저 경찰관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전적이고 미래 지향적동물이기도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간사하고 편한 것을 찾게 되어있습니다.


경찰의 업무는 일반 공무원의 업무보다 몇 배는 위험하며 체력적 한계에 부딪칠 때도 많습니다. 또한 사건 현장에서 짧은 시간에 법률적 판단을 내려야 하여, 그 순간의 판단으로 수사 주체에서 수사대상인 피의자로 전락할 수 있으며 법정에서 힘든 싸움을 홀로 외롭게 견둬내기도 해야 합니다.


단지 철밥통에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란 생각에 안주고, 경찰관으로서의 굳은 자긍심이 없다면... 앞으로 매 순간순간마다 마주하게 될 현실과 이상의 벽 앞에서 쉽사리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그런 비현실적인 경찰은 현실에는 있을 수 없지만,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권한과 함께 경찰관으로서의 소임을 이해하고 자긍심의 뿌리가 단단하다면 어떤 어려움과 역경이라도 충분히 해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국민 그리고 경찰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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