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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Jul 13. 2023

전설이 된 27전 27승 27KO

18연속 1회 KO승, 그러나 불운의 복서

27승 중 18연속 1회 KO승. 빈민가 출신이며 복싱 분야에서 기네스북 신기록에 오른 사나이 에드윈 ‘엘 잉카’ 발레로(Edwin ‘El Inca’ Valero, 1981~2010). 그러나 한창 나이인 28세에 자살한 베네수엘라 태생의 천재 복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깊은 어둠 같은 암흑의 터널 속에서 젊음을 보낸 불우한 청년. 그는 프로 데뷔 이후 단 한 번 패배했을 뿐인데, 그 상대는 안타깝게도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안데스 산맥에서 뻗어나오는 잉카의 정기를 받아 야성적이며 저돌적인, 그러나 불운하게도 절제를 모르는 불같은 야망과 폭풍 같은 욕망을 지닌 사나이. 그는 분노로 인해 자신의 아내를 목 졸라 죽인 뒤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갇힌 바로 그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같이 끓어오르는 혈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한창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것이다.  

    그의 두 주먹은 강철과 같았고, 그와 맞붙은 남자들은 모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젊은 나이인 20대에 국민적인 영웅이 된 그는 자신의 조국 베네수엘라 위고 차베스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여서 국기와 함께 그의 얼굴을 가슴에 문신으로 새기기도 한 지독한 애국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경기에서 그가 승리할 때마다 옆에서 환호하던 아내 조셀린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여인이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그는 자신을 제어하는 능력은 타고나지 못했다. 한때 어둠의 세계에 한 발을 들어놓기도 했던 발레로는 무절제한 생활로 인해 술과 마약, 그리고 여자가 끊이지 않았다. 한때는 오토바이를 과속으로 몰고 다니다가 사고가 나서 재기불능에 빠지기도 했으나 곧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복서로서 승리에 대한 열망 못지않게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깊은 불안감으로 인해 남몰래 고뇌하기도 했다.

    태양 가까이로 날아갔다가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는 바람에 땅으로 추락한 이카루스처럼 그의 화려한 비상(飛翔)은 곧 파멸을 의미하기도 했다. 무패의 기록을 보유한, 복싱의 두 체급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기도 한 발레로는 그러나 하늘 높이 태양 가까이로 너무 다가갔던 탓일까, 그만 최정상의 화려함에서 급전직하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국민적 영웅에서 살인자로     


사실 발레로의 성공에는 어렸을 때부터 늘 함께한 여인 조셀린의 힘이 컸다. 그러나 발레로는 유명 복서가 된 뒤 어느 날 밤 베네수엘라 북서부의 옛 수도인 발렌시아의 한 호텔에 아내와 함께 투숙했다가, 발레로의 도를 넘은 여자 편력문제로 인해 아내와 심하게 다투고 나서 밤중에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 시간에 부인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살인 용의자가 되어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으나, 그 다음날 유치장에서 목매어 죽고 말았다. 불꽃같은 젊은 시절을 보낸 에드윈 발레로는 불꽃에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발레로는 이 사건 이전 10대 후반에 헬멧 없이 오토바이를 과속으로 몰고 다니다 큰 사고가 나서 뇌출혈을 일으키기도 했고, 죽기 바로 전 해에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미국 입국비자가 거부되어 뉴욕에서 열리기로 한 경기가 취소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WBC 라이트급 세계챔피언에 올라 생애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을 맞은 뒤 곧바로 짧은 생애를 마감하게 된 것이다.



두 주먹으로 두 체급의 세계챔피언이 되어 베네수엘라 국민영웅에 오르기도 했지만, 대지 속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불화산 마그마와도 같았던 그의 생애는 사실 그리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챔피언 자리를 지키기 위한 불안감으로 인해 마약과 술과 여자에 빠졌던 그의 짧은 영광의 시간들……. 그러나 이는 그에게는 불운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 늘 싸움꾼으로 지냈으며, 12살 때 학교에서 뛰쳐나와 거리를 떠돌다가 잠시 일하던 가게 주인의 격려로 복싱의 세계에 들어간 발레로는 2002년 프로 데뷔까지 아마추어 전적 86승 6패 57KO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기도 한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나중에 여러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2002년 프로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그 경기에서 1회 KO승을 거두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2002년 7월부터 2003년까지 있었던 12번의 경기에서 모두 1회 KO승을 거둔 덕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바로 이때 복싱계의 거물인 오스카 호야(Oscar de ya Hoya, 45전 39승 30KO 6패)가 설립한 골든보이 프로모션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되었다. 오스카 호야는 멕시코 태생의 미국인이며, 복싱 역사상 최초로 6체급을 석권하고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메달리스트이기도 한 복싱계의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불꽃같은 짧은 삶     


이렇게 해서 승승장구하던 발레로는 미국 뉴욕으로 가서 경기하기 위해 메디컬 테스트를 받는 도중 머리 좌반구에서 뇌출혈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한 오토바이 폭주사고 때 입은 부상 후유증이었다. 그러나 이 후유증은 특히 머리에 타격을 많이 받는 권투선수에게는 경기 도중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부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 입국도 거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골든보이와의 계약도 파기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경기를 할 수 없게 되자 발레로는 아르헨티나, 파나마, 프랑스, 멕시코, 일본 등지로 떠돌며 경기하는 로드 워리어(road worrier)가 된 뒤, 2006년에 당시 WBA 슈퍼페더급 챔피언이었던 파나마 선수에게 도전해서 경기를 갖게 된다. 이때 상대방인 챔피언을 1회전에 두 번 다운시켰으나, 3회전에는 오히려 발레로가 다운된다. 이것이 그의 최초이자 유일한 다운 기록이다. 어떻든 이 경기에서 10회전까지 치열한 경기를 치른 덕에 강한 체력과 맷집을 보여주어 발레로의 인기가 급상승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챔피언 자리에까지 오른 발레로는 젊음의 최전성기이자 자신의 최고 커리어를 점찍는 순간 그만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프로 데뷔 이후 27전 27승 27KO, 18연속 1회 KO승의 기네스북 기록을 남기고서. 그리고 WBA 슈퍼페더급과 WBC 라이트급 등 두 체급을 석권한 세계챔피언으로서 베네수엘라의 국민 영웅이 되었으며, 불꽃같이 피어나다가 불꽃같이 진 불운의 청년 발레로.

    그의 별명은 엘 잉카(El Inca)였는데, 이는 스페인의 유명한 연대기 작가에서 따온 것이다. 그 작가의 본명은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Garcilaso de la Vega, 1539~1616)이지만, 흔히 ‘엘 잉카(El Inca)’로도 불린다. 엘 잉카(El Inca)는 영어로 표기하면 ‘The Inca’가 된다. 즉 잉카제국이라는 뜻이다.



[사족]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발레로와 그의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발레로가 힘들어할 때마다 그녀는 위로해 주고 힘을 보태주었다. 하지만 발레로는 성공한 뒤에 술과 여자와 마약에 찌들어 살았다. 그 모습을 본 아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것을 참다못해 아내는 항의했고, 그렇게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살인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정상인가? 복싱으로 국민영웅이 되고 불후의 복서가 되었지만, 그의 행위는 불한당 살인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성공하면 모든 것이 덮이는 듯이 보이는 작금의 세태. 우리는 여기에 속지도, 넘어가지도, 또한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지도 말아야 한다.

    발레로는 권투에서는 불후의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인성 면에서 그는 인간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를 영웅으로 보면 안 된다. 차라리 그를 반면교사로 삼아 어떠한 경우든 함께 고생한 조강지처를 버리거나 학대하는 인간들을 우리는 심판해야 한다. 그것이 정의다. 복싱보다 정의가 먼저인 것이다.  



잉카제국     


잉카제국은 13세기 초인 1200년경 페루의 한 고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크게 구분하면 전반기인 1200~1438년의 쿠스코 왕국과 후반기인 1438~1578년의 잉카제국으로 나뉜다. 그리고 잉카제국의 수도는 현재 페루의 쿠스코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잉카제국은 후반기를 뜻하는데, 이 시기의 약 100년 동안에는 무력과 강화조약 등을 통해 현재의 에콰도르를 비롯해서 페루의 남서부 및 중앙 볼리비아의 중부와 남서부, 아르헨티나 북서부, 칠레 북부와 콜롬비아 남부지역 등 안데스 산맥 일대 전반에 걸쳐 세력을 뻗친 방대한 제국이었다. 즉 남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지배했던 것이다.

    따라서 발레로의 별명이 ‘엘 잉카(El Inca)’인 것은 그가 곧 남미를 대표하는, 그와 동시에 남아메리카 대륙 최고의 복서라는 뜻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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