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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Jul 01. 2024

마술사와 오케스트라 (27)

제6장 | 하늘정원 (3)

편지수는 아이들을 안고 손에 잡고 하면서 현관문 쪽으로 달렸다.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이었다. 누군가가 ‘창문!’ 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를 집어들어 창문을 향해 던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커튼에 막혀 퍽 하는 소리만 난다. 어느 누가 커튼 일부를 잡아당겨 뜯어냈는지 우당탕 소리와 함께 창문이 나타났다. 곧이어 이것저것 집어던지자 창문이 깨져 나갔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불길과 연기가 벽과 천장을 타고, 또 바닥에 깔린 여러 물품에 번지면서 순식간에 도장 안 전체로 퍼져나갔다.

    멀리에서 아련히 소방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급박한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온다.

    현관문 쪽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일부는 빠져나가고, 일부는 안쪽으로 들어와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이 검붉은 실루엣으로 보인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 사람 찾는 소리, 쿨럭거리는 소리, 넘어지며 울부짖는 소리…….

    천장에서 시커먼 연기 사이로 검붉은 불길이 여기저기에서 번뜩였다. 툭탁툭탁 소리. 그러더니 천장에서 무엇인가가 쏟아져 내린다. 사람들은 아직도 좁은 현관문 앞에 와르르 몰려 있었다. 그 뒤로 아우성치며 밀어대는 남녀노소.

    그런 중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현관문으로 나가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도장 안은 아우성소리와 시커먼 연기와 여기저기에서 번뜩이는 시뻘건 불길, 그리고 천장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 정신을 아득하게 할 정도로 코로 밀려들어오는 강하고 역겨운 냄새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창문 몇 개가 깨어져 나가서 다행이었지만 그것이 큰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소방차들이 도착하는 듯했다. 건물 밖도 도장 안과 마찬가지로 아수라장이었다. 피신한 사람들, 놀라서 나온 동네사람들, 여기저기 마구 세운 자동차 사이로 비집고 들어서는 소방차들…….

    다행히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관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 몇 사람이 검은 연기 퍼지고 있는 좁은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는 모습을 지수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수는 문득 주원에게 생각이 미쳤다. 밖으로 나간 걸까? 그러나 주원이 사무실 문 쪽에 서 있었던 것이 떠올라 몸서리를 치며 도복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없었다. 어디선가 떨어뜨린 모양이다.

    지수는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 순간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현관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도장 안은 지옥이었다. 천장에서는 화염과 함께 무엇인가가 계속 떨어져 내렸고, 글자 그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커먼 연기가 꽉 차 있었다. 지옥 속 같은 그 연기 속 여기저기에서 검붉은 불들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안 돼.

    안 돼.

    안 돼…….

    지수는 발에 무엇인가가 밟혀서 넘어질 뻔했다. 생수병 같았다. 발을 디뎌보니 물컹거리는 생수병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지수는 생수병을 집어들어서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그리고는 머리와 도복 위로 쏟았다. 그렇게 여러 개를 쏟아부었다. 마지막으로 생수병 두 개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물에 젖은 도복 소매로 코와 입을 막았다.

    지수는 시커먼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발바닥에 여러 물건뿐만 아니라 뜨거운 것들이 마구 밟혔다. 천장에서는 여러 잔해가 계속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의자들이 발에 걸려서 넘어질 뻔했다. 조금 전에 아이들이 앉았던 의자들이었다. 지수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커먼 지옥 속에서 사무실 방향으로 달렸다.

    무대 옆쯤에 이르렀을 때 무엇엔가 걸려 넘어질 뻔했다. 가슴이 철렁하여 손으로 더듬어 보았더니 사람은 아니었다. 지수는 다시 손으로 더듬어 사무실 문 쪽으로 갔다.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안에는 물건들이 바닥에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다.

    숨이 막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약간 숨을 들이쉬었다가 뜨거운 열기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겨운 냄새에 다시 숨을 멈추고 말았다. 조그만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기는 했겠지만, 짙은 연기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원 씨! 주원 씨! 여기 있어요?”

    지수가 불렀다.

    외쳤다.

    부르짖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혹 밖으로 나간 걸까?

    그러나 본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안 돼!

    “주원 씨!”

    지수는 넘어졌다. 무엇엔가 발이 걸린 것이다.

    지수는 손으로 여기저기 더듬었다.

    혹시 혹시 하는 생각을 하며 창고 쪽으로 다가갔다. 손으로 더듬어 가며.

    생수병 하나를 열어 얼굴에 쏟아부었다.

    숨을 쉬어 보았다.

    아주 약간 나아진 것 같았다.

    창고 문이 손에 닿았다.

    엉거주춤 일어나서 손잡이를 돌려 열었다.

    그 안에서 또다시 밀려나오는 아주 독한 냄새.

    그러나 사무실처럼 냄새가 그렇게 짙지는 않았다. 연기도 가득했으나 그것도 아주 짙지는 않았다.

    지수는 벌떡 일어서서 손으로 선반들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물컹.

    무엇인가가 밟혔다.

    사람이다.

    지수는 가슴이 철렁하며 주저앉아 더듬었다.

    틀림없는 주원이다!

    보이지 않았지만 지수는 확신했다.

    그 다음부터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주원을 안아올렸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무실.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검붉은 불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때 입구 너머 저쪽에서 빛이 보였다. 소방관 헬멧의 헤드라이트 빛. 검은 연기 사이로. 그 뒤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물줄기도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소방관!

    지수는 참았던 숨을 뱉어내며 외쳤다.

    “여기요, 여기!”

    천장에서 불덩이가 쏟아졌다.

    지수는 뒤로 주춤거리고는 주원을 두 손으로 붙잡고서 밖으로 던졌다.

    그 순간 천장에서 불덩이가 쏟아져 내리며 지수를 덮치고 입구를 막고 말았다.


[다음 이야기]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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