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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Jun 28. 2024

마술사와 오케스트라 (25)

제6장 | 하늘정원 (1)

제6장 | 하늘정원 

                        

주원은 저택 사건에 대해 편가를 통해 나중에 자세히 들었다.

    우선 가장 궁금한 것, 바로 그 여자.

    그러나 경찰이 저택에 도착했을 때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도주한 것으로 판단하고 경찰은 수배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날 오후 전문가를 동원해서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자는 천장에 설치된 철제 구조물에 줄을 매달고 목을 매어 죽어 있었다. 소녀상 옆에서.

    경찰이 동물상 아래 받침대를 깨뜨려 보자 그 안에는 조각상 동물의 뼈들이 들어 있었다. 머리뼈부터 꼬리뼈까지 모두.

    그리고 더욱 끔찍한 것, 즉 소녀상 아래의 두툼한 받침대. 그것을 깨뜨려 열어보자 미라가 나왔다. 작은 소녀의 미라. 그러나 서양 아이는 아니었다. 동양인. 아마도 한국인이겠지만. 그리고 사망한 지 7~8년 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소녀의 신원은 훨씬 나중에 밝혀졌는데, 강원도 양구에서 실종신고된 9살 소녀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 소녀가 어떻게 조각가와 연결되었는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이 사건은 일주일 동안 신문과 TV를 포함한 모든 언론의 주요기사로 장식되었으며, 이 사건을 경찰에 알린 편지수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주원에 대해서는 어느 언론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주원은 그 사건 당일 집에 와서 곧장 이층으로 올라갔다.

    남궁 여사는 딸의 옷이 여기저기 찢기고 뜯어진 데다가 안색도 어두운 것을 보고 기겁을 해서 이층으로 따라 올라갔다.

    “얘, 어떻게 된 거야? 옷은 왜 그래?”

    남궁 여사는 주원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나 놔둬.”

    “아니, 얘, 말 좀 해봐? 무슨 일 있는 거야? 어디에서 다쳤어? 병원 안 가봐도 돼?”

    주원은 대답 없이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얘! 주원아!”

    남궁 여사는 화장실 문을 탕탕 두드렸다.

    그러나 주원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찢어진 옷을 입은 채 변기 뚜껑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허리를 구부린 채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왜 그런지는 주원 자신도 몰랐다.

    따지고 보면 서러울 것도 없었고, 슬플 이유도 없었다.

    그것보다는 너무 엄청난 일을 겪고 나서 긴장이 풀린 탓 같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가? 그것도 주원 자신에게.



그 지하실의 기괴한 장면들…….

    자신이 추측한 것이 맞다고 한다면 그 받침대에는 시체가 들어 있을 텐데, 주원은 자신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스스로는 알지 못했다. 그냥 생각이 난 것이다. 그럴 것이라고. 그리고 그 생각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거나 망설여지지 않았다. 경찰이 가서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주원은 자신의 추측이 올바를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몸서리가 쳐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너무 무서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자기 자신에게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총이라니!

    그게 말이 돼?

    영화 찍은 거야, 오늘? 말도 안 된다.

    하!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아슬아슬했다.

    혹 그때 총에 맞기라도 했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주원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하실에 갇혀 있었다는 것. 자칫 그 속에서 그대로 굶어죽거나 질식해서 죽었을 수도 있었다.

    주원은 이런 생각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졌다.

    안 돼, 안 돼, 안 돼…….

    주원은 자신도 모르게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죽음과 소녀’.

    ……그래, 내가 그 소녀였어. 내가 죽을 뻔한 거잖아. 그 악한 여자는 죽음이었어. 죽음. 악마.

    주원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탕탕탕!



아까부터 남궁 여사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부르고 있었으나 주원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주원은 눈물을 닦은 뒤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남궁 여사가 새파랗게 질린 채 주원의 팔을 붙잡는다.

    “얘……, 너 무슨 일 있었던 거지……?”

    남궁 여사는 울음을 터뜨렸다.     

    주원은 열이 펄펄 났다.

    남궁 여사가 병원에 연락해서 앰뷸런스를 보내달라고 했다.

    주원이 입원한 뒤 정 회장이 달려왔다.

    그러나 남궁 여사는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알리지 않았다. 일하는 아주머니에게는 절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놓았다.

    주원은 해열제와 진정제를 먹고서 얼마 뒤 잠들었다.



주원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정신없이 잔 것이다.

    주원이 눈을 뜨니 남궁 여사와 정 회장이 옆에 있었다. 근심 어린 얼굴을 한 채.

    남궁 여사가 얼른 다가와서 주원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정 회장도 의자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와 주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말은 없이. 주원이 정 회장을 마주 바라보자 정 회장은 머리를 끄덕인다.

    “배고프지? 목 안 말라? 물부터 줄까?”

    남궁 여사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주원을 바라보며 묻는다.

    주원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주원은 그날 있었던 일을 부모님에게 모두 말해 주었다.

    남궁 여사는 사색이 되어 주원을 끌어안았다.

    “아이구, 하나님!”

    정 회장은 앞으로 흘러내린 주원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며 말을 했다.

    “큰 다행이다. 다치지 않은 게.”   


  

TV, 신문, 인터넷 모두 난리였다. 엽기적인 사건, 희대의 미스터리, 여류 조각가 지하실의 비밀, 소녀 조각상 위에서 자살, 검은 지하실의 공포…….

    그러나 주원은 그런 기사나 뉴스는 읽지도 보지도 않았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 뉴스가 나올 때마다 편가도 함께 등장했다. 그러나 평소 편가의 성격과는 달리 말을 많이 아끼고 가능한 한 피하려 하는 듯한 느낌을 주원은 받았다. 편가가 주원을 의식해서 그렇게 하는 모양이라고 주원은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사건도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주원은 이틀 동안 병원에서 지낸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 동안 주원은 한국 핸드폰을 꺼놓았다.

    주원은 몇 번 망설이다 핸드폰을 켰다.

    편가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우르르 쏟아졌다. 카톡을 열어서 읽었다. 대부분 주원을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언론에 시달려 힘들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제 더는 만나고 싶지도 않고, 여기저기 이름이 나는 것이 부담도 되고 싫다고 했다. 평소 편가의 성격을 보아서는 즐거운 비명처럼 여기지기도 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어딘지 편가의 말이 진심 같은 느낌도 들었다.

    사실 주원 못지않게 그 사건은 편가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마터면 그 지하실에서 나가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될 수도 있었고, 조각가 여자의 총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잖은가. 편가가 아무리 남자에다 담대하더라도 그런 사건에서 초연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주원은 카톡에다 고개를 끄덕끄덕해 주었다.

    거기까지였다.      

    


주원은 응답해 주지 않았지만 편가에게서 종종 메시지가 왔다.

    어떻게 지내느냐, 몸은 괜찮느냐…….

    그리고 간간이 자기 소식도 전했다. 개인적인 것, 도장에 대한 것, 여러 행사에 쫓아다닌 것 등등.

    며칠 뒤 편가는 또다시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태권도 도장에서 연말 페스티벌 쇼를 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와달라는 말은 없었다.       


[다음 이야기]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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