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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Jul 02. 2024

마술사와 오케스트라 (28/최종회)

제6장 | 하늘정원 (4)


주원은 오열했다.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다가 편가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편가가 주원을 사무실 문 밖으로 던졌다는 것도, 그와 동시에 천장에서 시뻘건 불덩이와 함께 슬레이트판들이 무너져 내리며 편가를 덮쳤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주원은 다행히 그 순간 사무실 너머에 있었던 소방관이 달려와 밖으로 안고 나간 덕분에 살 수 있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지만 인공호흡으로 간신히 살린 것이다. 그러나 폐 속이 망가져 오랫동안 치료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나마 몸은 불에 타거나 그을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주원이 건물 밖에서 심폐소생술로 다시 숨을 쉬게 되자 곧바로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집에 연락하여 대학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지수와 주원 외에 도장에서는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연기를 조금 마시거나 넘어지는 바람에 여기저기 타박상 조금 있는 것 외에는 대부분 멀쩡했다. 대형화재치고는 인명피해가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 한 사람, 질식 한 사람의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질식한 사람은 곧 회복되긴 했지만.     

    


편지수의 발인 전날, 주원은 아버지 정 회장에게 몇 가지를 부탁했다.

    화재로 인한 모든 피해는 정 회장이 보상해 주라고 했다.

    편지수의 가족이 화장장을 원한다고 하니 정 회장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여 양재동에 있는 서울추모공원에서 장례를 치르게 하고, 그곳의 가장 좋은 납골당에 안치해 달라고 했다.

    또한 장례 모든 일정을 정 회장이 주관하고 비용도 부담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국기원에 부탁하여 편지수의 기념비를 세워주고, 편지수 이름으로 된 상을 하나 만들어 매년 정 회장이 상금을 보내달라고 했다.

    또한 편지수가 꿈꾸었던 글로벌태권어린이마술오케스트라를 꼭 만들 수 있게 약속해 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발인하는 날 상여가 반드시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관련 정부기관을 설득해서 꼭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곡히 말을 했다. 그리고 나서 몇몇 가지를 더 알려주고는, 다음날 상여가 잠실운동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모든 것을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다음날, 밤사이에 온 천지에 함박눈이 내린 뒤 거짓말처럼 하늘이 청명해져서 서울 시내는 반짝이는 은색 세상이 되었다.

    운구차가 잠실종합운동장 정문에 도착할 때 주원은 검은 상복을 입고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형버스 몇 대가 운구차 뒤를 따라 들어왔다. 제일 마지막 버스에는 태권도 도장 어린이들이 타고 있었다.

    모두가 차에서 내리자 주원이 앞장서고 그 뒤를 편지수의 영정사진과 관이 따르며, 이어서 편지수의 가족과 나머지 조문객이 그 뒤를 잇고, 맨 뒤에는 도장의 아이들이 줄을 지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장 안은 바닥뿐만 아니라 관중석과 지붕이 모두 흰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사람 허리 높이만 한 아담한 단이 놓여 있었다. 주원이 정 회장에게 부탁해서 만들게 한 것이다.

    그 단 위에는 주원이 아버지에게 아주 특별히 부탁해서 모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태권도복을 입은 자그마한 인형 수십 개가 활짝 편 쥘부채 모양의 반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케스트라 형태로.

    그리고 그 인형 하나하나에는 모두 각종 악기, 즉 조그만 모형악기가 각각 그 앞에 세워져 있었다. 바이올린, 하프, 플루트, 클라리넷, 호른, 드럼, 심벌즈, 오보에, 바순, 트럼펫, 팀파니, 트롬본, 첼로, 콘트라베이스, 드럼 등등의 크기도 다르고 색도 다른 여러 악기들. 그리고 제일 뒤 양쪽에는 그랜드피아노와 오르간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모습 전체를 한눈에 보면 멋진 오케스트라가 된다.

    태권오케스트라.

    그리고 오케스트라 앞에 작은 단이 만들어져 있고, 그 위에는 좀 큼직한 표범이 앞발을 든 채 놓여 있었다. 오른손에는 지휘봉을 들고서.



주원은 편지수의 친구에게서 영정을 받아 오케스트라 제일 뒤쪽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나서 도장에서 온 아이들을 오케스트라 앞에 열을 맞춰 서게 한 뒤 입고 있는 겨울외투를 벗게 했다. 모두들 속에는 눈과 같이 흰 태권도복을 입고 있었다. 주원이 아버지를 통해 도장의 다른 사범들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두었던 것이다. 물론 아이와 부모들이 응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밤사이에 함박눈이 내린 뒤 날씨는 화창하고 다소 포근한 느낌도 들어 그리 춥지는 않았다. 이것 또한 이 특별한 장례행사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주원은 태권 어린이들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들 모두 도장에서 주원을 보았기에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이에다, 이 행사가 어떤 의미에서 치러지는지 또한 알고 있었기에 주원의 의도에 잘 따라주고 있었다.

    주원이 신호를 보내자 아이들이 일제히 양발을 벌리며 허리를 낮추고 주춤자세를 하는 동시에 양손을 허리에 갖다대면서 우렁차게 구호를 외쳤다.

    “태권!”

    그리고는 뒤이어 기본동작인 서기, 막기, 차기, 지르기 등을 순서에 따라 질서 있게 해나갔다. 앞차기, 옆차기, 뒤차기, 돌려차기, 뛰어앞차기 등의 동작을 할 때마다 터져나오는 우렁찬 구호.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멀리까지 가며 잠실종합운동장을 뜨거운 눈물로 적시게 하는 처절한 그 함성.

    “태권! 태권! 태권!”

    순백의 운동장에 때 아닌 꼬마 태권 제자들의 눈물어린 함성이 울려퍼지며 관중석으로 날아가 지붕에 부딪쳐 돌아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운동장 전체를 감싼 뒤 사라졌다.  

    그 광경을 편지수는 오케스트라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편지수도 박수갈채를 요란하게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동작을 바꿀 때마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함성, 함성, 함성들.

    “태권! 태권! 태권!”

    아이들이 마지막 동작을 마치고 편히서기로 돌아오는 순간 문상객들 모두 흐느껴 울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어린 태권 제자들은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이들이 모두 조문객들 사이 부모들에게 가서 외투를 걸치자 주원이 단상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바라보며 마주섰다.

    그 다음 주원은 몇 가지 마술을 보였다. 옷소매에서 눈송이를 날리고, 두 손으로 구슬을 없앴다 살렸다 하며 여러 마술을 선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리 준비해 온 모자를 들어올리고서 만국기를 한없이 끄집어낸 다음, 텅 빈 것 같은 모자 속에서 비둘기 한 마리를 꺼내어 편지수 눈앞에서 하늘 높이 날렸다. 얼룩 하나 없는 순백의 비둘기.

    비둘기는 눈부시게 새하얀 두 날개를 퍼덕이며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문상객들 위를 한 바퀴 돌고 오케스트라 위에서도 두어 바퀴 돈 다음 새파란 공간 속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높이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저 높이 밝게 빛나는 해 근처까지 올라가면서 눈부셔하며 올려다보는 사람들 시야에서 작은 점으로 변하며 사라져 갔다.

    마치 편지수의 영혼이 새파란 하늘 높이 날아서 영원 속으로 들어가듯이.

    아이들은 손을 들고 하늘을 향해 흔들었다.

    관장이자 마술사인 사범을 향해.

    아이들의 눈에 맺힌 눈물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보석을 모두 비둘기에 실어서 보냈다. 사범에게.

    비둘기가 파란 하늘 너머 영원 속으로 들어가자 주원이 모자를 내려놓고 편지수의 영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사라고 하듯이 고개를 약간 숙여 보이더니 준비해 온 바이올린을 들어올렸다.

    주원은 바이올린을 턱과 어깨 사이에 끼운 다음 활을 현 위에 갖다놓았다.

    그리고는 눈을 한번 감았다 뜬 뒤 숨도 쉬지 않고 곧바로 활을 잡아당겼다.

    뒤이어 흘러나오는 뜨거운 바이올린 선율.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작품 47.



주원은 핀란드로 유학 가기로 한 다음 핀란드의 국보와 같은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이 곡을 선택해서 국제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유명한 교향시 핀란디아를 작곡한 애국자 시벨리우스. 그가 1903년에 작곡하여 그 이듬해 2월에 헬싱키에서 초연했으나 불행히도 실패하자, 2년 뒤 다시 고쳐서 독일 베를린에서 연주되어 세계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인정받은 작품. 이 곡은 지금껏 창조된 모든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애국자 시벨리우스가 핀란디아와 함께 뜨거운 마음으로 조국에 바치는 곡. 바이올린의 미감(美感)을 최대한 살린, 그러면서도 북구 백설의 나라 핀란드의 광대함과 장엄함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명곡. 바이올린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미를 최대한 대로 끌어올려 창조한 우주풍의 작품.

    주원은 제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allegro moderato, 적당히 빠르게)를 힘차게 시작했다. 1악장은 이 곡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며, 북유럽의 눈부시도록 희디흰 눈으로 뒤덮인 신비로운 산봉우리들 사이에서 웅장한 기운이 치솟으며 새파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듯한 강렬함이 폭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1악장이 끝나자 주원은 숨을 한번 크게 쉬고 곧바로 제2악장으로 들어갔다. 아다지오 디 몰토(adagio di molto, 매우 천천히).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선율. 신비로운 설산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은밀한 이야기들이 요정들의 속삭임처럼 귀에 파고든다. 이처럼 달콤한 유혹들이 인간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 한바탕 헤집어 놓은 다음 클라이맥스처럼 터져나오는, 온몸을 휘감는 전율. 주원은 자신의 영혼이 폭발하듯 그 마지막을 웅장하게 장식했다.

    제3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llegro ma non troppo,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바이올린 독주로 시작되는 환상의 축제. 주원은 거의 무아지경을 빠져들듯 북유럽 전설들이 쏟아내는 다종다양한 요정들과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오로라 펼쳐지는 백설의 황홀한 설원 위에서 펼쳐지는 요정들의 잔치. 마지막으로 여기에 관현악이 삽입되면서 이단의 침입으로 인해 어지러워지는 설국의 세계는 주원의 바이올린 위에서 점차 환상으로 몰입되어 멀고 먼 태곳적 전설 이야기로 막을 내리게 된다.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눈으로 장식된 잠실종합운동장의 설야(雪野) 위에서 펼쳐지는 북유럽 요정과 전설들의 화려하고도 장엄한 잔치가 끝나자, 땀으로 범벅이 된 주원의 온몸은 환희로 뒤덮였다. 얼굴은 흘러내린 눈물 자국으로 아롱졌고. 주원은 지금껏 이렇게 열정적으로 몰입하여 연주한 적이 없었다.

    주원은 바이올린과 활을 아래로 내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편지수의 영혼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살피듯이.

    은빛 눈물 한 방울이 또다시 주원의 눈가에 맺힌다.

    주원은 심호흡을 한 뒤 다시 바이올린을 들어올려 턱에 갖다댔다.

    그리고 활을 들어 새로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미자 선생의 ‘그리움은 가슴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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