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농업역사는 잡초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잡초 중에는 오히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있겠지만, 적어도 농업 분야에서만큼은 잡초는 해충과도 비견될 만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일부의 잡초는 나중에 여러 효용성이 발견되어 오히려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처음에는 귀한 대접을 받다가 나중에는 여러 이유로 잡초로 취급되어 냉대받는 종들도 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잡초의 개념이 상대적일 수 있다. 순전히 인간의 관점에서만 보아 유익한지 않은지에 따라서.
잡초 같은 인생. 무슨 뜻일까? 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끈질긴 생명력. 이 한마디로 잡초의 성질을 대변할 수 있을 테니까.
인간이 농업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논과 밭 같은 경작지의 각종 잡초와 글자 그대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인간이 원하는 작물은 생존력이 약하고, 반면에 잡초는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자라는 것을 넘어서 아예 온 들판을 장악해 버리니까. 이에 따라 잡초를 제거하기 위한 여러 수단이 개발되었다.
아차, 여기에서 우선 잡초의 정의나 그 종류들부터 제시해야겠다. 잡초(雜草)는 사전에 의하면 대강 ‘사람이 가꾸거나 돌보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잘 자라는 풀’이라고 되어 있다.
식물이 생존하기 위한 3대 요소는 물과 햇빛 그리고 영양분이다.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핍되면 비상상황에 빠진다. 그리고 이들 필수요소를 차지하기 위해 잡초는 다른 식물, 특히 인간이 기르는 재배식물과 다툰다. 그래서 말이나 양들을 방목하는 지역의 잡초들은 동물에게 먹히지 않도록 맛이 없거나 심지어 독성을 품기도 한다. 그래야만 먹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잡초들은 식물을 병들게 하는 미생물의 숙주가 되어 자신들을 먹지 못하도록 방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잡초 중 일부는 오히려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 익초(益草)로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하루아침에 신분이 변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익초가 나중에 잡초나 독초로 취급되어 신분이 강하되는 일도 있다. 따라서 잡초의 범주에는 항상 변화성이 있다.
잡초는 인간사회에서는 일단 제거 대상이다. 자신들이야 당당한 생명체로서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인간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많은 잡초가 다른 식물에게 병을 일으키거나 또는 숙주가 되어 해를 입히기도 한다. 게다가 잡초는 번식력이 강해서 인간의 재배식물을 몰아내기도 하며, 잡초의 씨는 땅속에서 몇 년은 물론 수십 년간 살아남는 경우도 있어서 그야말로 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잡초를 악초(惡草)라고도 하는데, 사실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편견일 뿐이다. 인간사회뿐만 아니라 생태학적인 면에 있어서 잡초는 꼭 필요한 존재다. 잡초가 땅의 표층을 단단히 해주어 지층을 보호해 주기도 하며, 잡초가 깊이 뿌리를 내리는 덕에 땅속 깊은 곳의 영양소를 끌어올리는 역할도 할 뿐만 아니라, 땅의 표층을 단단히 해주어 표토층을 보호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잡초를 몽땅 제거하면 토양이 침식되고 모래바람이 극성을 부려 농사를 망치게 되기도 한다.
자연 생태계에서 필요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생물은 나름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생존해 나가지만, 동시에 자연에게 조화를 이루게 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사회에도 갖가지 직업이 분포하며 그들 모두가 합력하여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른 말로 하면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자연계에도 귀천이 없다는 말씀. 그러하니 장미라고 너무 보듬지 말 것이며, 잡초라고 악착같이 짓밟지 말라는 뜻이다.
과수원의 경우 나무들 사이에 잡초를 심어두는 경우도 있다. 과수원에서 잡초를 완전히 제거했을 때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잡초들 중에서도 특히 쇼트그래스(short grass)라고 하는 키 낮은 잔디류는 뿌리에 물을 간직하고 흙을 단단히 해주는 역할을 한다. 만일 이들이 사라지면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땅의 표층이 다 날아간다. 이로 인해 먼지 눈보라가 발생하고, 심지어 미국의 경우 심한 바람이 불 때 표토(表土)가 다 날아가서 흙먼지가 대지를 뒤덮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 ‘먼지 눈보라’ 또는 ‘먼지 폭풍’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사막화가 진행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더스트 보울(dust bowl)이라고 한다나 보다.
이와 같이 잡초를 완전히 제거했을 때는 오히려 여러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1930년대에) 미국에서 거대한 폭풍이 몰아쳐 한때 2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고도 한다.
잡초는 들판에 놓아 기르는 가축들의 중요한 먹이도 된다. 소나 말, 양뿐만 아니라 돼지나 염소, 산양 등은 물론 꿀벌들에게도 중요한 식량이 되는 것이다. 비록 가축이 기피하는 잡초라도 이들의 배설물이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 건조해지는 것을 막아주어 황폐되지 않게 해준다. 여기에 더해 잡초들로 인해 그늘이 생겨서 땅이 마르지 않게 되기도 한다.
이렇듯 자연에서는 균형이 중요하다. 당장 눈앞에 가시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유익한 경우가 많다. 이는 비록 자연에게뿐만 아니라 인간사(人間事) 모든 면에서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