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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dolf Sep 04. 2024

식물들은 왜?


이 세상은 광물과 동물, 그리고 식물로 구성되어 있다. (미생물은 빼고.) 아, 여기에 형이상학의 세계를 하나 더 추가한다면 우주 삼라만상이 총동원되는 셈이겠다. 이 중에서 식물의 세계, 특히 식물들의 생존전쟁 또는 전략에 대해 잠시 들여다보려 한다.    

  


식물들의 삶     


식물은 어떻게 자신들을 지켜나갈까? 즉 생존전략은 무엇일까? 식물이 살아가려면 다른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특히 여기에서는 방어체계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식물이 자신을 지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가장 바깥쪽, 즉 잎부터 살펴본다. 비가 오거나 식물에게 물을 줄 때 잎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해 보자.

    나무나 화초에 물을 뿌려주면 어떤 현상이 보일까? 나뭇잎이나 풀잎에서 처음에는 물(방울)이 퉁겨나간다. 잎 표면이 두꺼운 왁스 성분으로 코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잎 표면에 잔털이 잔뜩 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도 잎이 젖지 않도록 물방울이 퉁겨나가게 해준다. 이것이 잎에서 벌어지는 1차 방어선이다. 이로 인해 잎이 젖지 않게 된다.

    그다음으로는 잎 아래쪽에 항균물질이 포진하고 있어서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아준다. 이것이 2차 방어선.      



식물의 기공     


잎 표면에서 적이 가장 침입하기 쉬운 곳은 어디일까? 즉 잎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는 어디쯤이 될까? 그곳은 바로 기공(氣孔)이다. 잎 뒷면에는 숨을 쉬기 위한 구멍이 있다. 식물은 이곳으로 호흡하는데, 실은 이 기공이 바로 적이 침입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동물이 코로 숨을 쉬면서, 동시에 그리로 잡균이 들어가는 것처럼. 하지만 이곳으로 병원균이 침입하면 그 즉시 알람이 울리며 식물 내부로 비상신호가 전달된다. 그러면 곧바로 기공, 즉 성문이 철컥 닫혀 침입을 차단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다 끝난 것일까? 천만에! 적은 이쯤에서 포기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침입자 병원균은 곧바로 성벽, 즉 세포벽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반대로 식물은 그 파괴된 곳에 병사들을 보내어 결사적으로 항전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원균이 포기하고 달아나지는 않는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공성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아아,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함락? 방어?)

    이때 식물은 활성산소(oxygen radical)를 이용해서 적을 막아낸다. 이 활성산소는 병원균에게는 독이 되는 물질이다. 활성산소는 다른 분자들에게 쉽게 달라붙어 DNA나 RNA 또는 여러 단백질 등을 손상해서 사멸, 즉 죽게 만든다. 그러니까 식물이 활성산소 병사들을 폭발적으로 분비해서 병원균과 싸우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방법이 예전에는 어느 정도 통했을지 몰라도 이제 더 이상은 효과적인 방어책이 아닌 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활성산소가 여전히 중요한 방어전략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떻든 이 방어선도 곧바로 무너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곧장 주변의 세포들로 위급신호 SOS를 급히 타전하게 된다. 이에 따라 주변 세포들은 성벽, 즉 세포벽을 단단히 세운다. 한마디로 항균물질을 대량 분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물질을 충분히 갖추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있다. 만일 여기에서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고 성벽이 무너지면 적군이 물밀 듯이 세포 내부로 침입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최후의 결전만 남는다. 막을 것인가, 먹힐 것인가?



아아, 그런데 아쉽게도 이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지고 만다면? 이때는 어쩔 수 없다.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없다. 즉, 적군을 껴안고 함께 자폭하는 것이다. 이 현상을 ‘세포자살(apoptosis)’이라고 한다.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한꺼번에 펑!

    그런데 이때 그 세포만 희생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건강한 세포들도 함께 폭발해 버리게 된다. 이것은 산불이 났을 때 더 번지지 못하도록 맞불을 놓거나 나무들을 베어버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로 인해 식물의 잎에는 얼룩덜룩한 반점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이 전투에서 발생한 대량의 활성산소가 이곳저곳으로 퍼져가서 게릴라처럼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다행히도 이 단계에서 구원병이 달려오게 된다. 즉 항산화물질이 등장하는 것이다. 식물 내부에 있는 폴리페놀이나 비타민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들 구원병이 긴급투입되어 활성산소 제거작업을 펼치기 시작한다. (휴우∼, 다행이다.) 사실 이들 항산화물질은 식물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에게도 큰 도움을 주어 몸속의 활성산소를 깔끔히 처리해 주기도 한다. (만세!)     



활성산소 | 이는 산소 원자가 전자를 잃어버리고 불안정한 상태가 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활성산소는 세포의 대사과정에서 생성되는데, 양이 과도하지만 않다면 세포 내에서 정상적인 신호전달체계를 담당할 뿐만 아니라 항균작용에서도 매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활성산소가 과잉으로 생성될 때이다. 이 경우 세포들이 손상되고 질병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세포 내의 단백질이나 DNA, 지질 등이 손상되고, 염증을 유발하며 노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 더 나아가 세포의 기능이 저하되며 결국 사멸에 이르게 된다.



식물은 어떻게 자신을 지켜나갈까?    

  

식물의 줄기나 잎에는 여러 방어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우선 가시와 털이 그러한 종류에 해당한다. 장미나 찔레 등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어서 적이 달라붙지 못하게 한다. 식물의 줄기에 빽빽이 나 있는 털 역시 제1차 방어선인 셈이다. 그리고 일부의 식물은 독성물질을 분비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일 이들 방어선이 무너진다면 그 다음 수단으로 (나무)껍질이 등장한다. 이 껍질은 심지어 불이 났을 때조차도 방어수단이 된다. 이뿐만 아니다.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방지하고 해충으로부터 나무가 손상되는 것도 막아준다. 또한 특히 두꺼운 잎에는 왁스층이 있는데, 이는 날이 가물었을 때 수분이 과도하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한마디로 각종 외적 상황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해 주는 것이다.

    이밖에 쓴맛과 같은 고약한 화학물질을 분비해서 해충이나 동물이 덤벼들지 못하게 한다. 브로콜리 같은 채소들은 쓴맛을 내포해서 공격자들이 기피하게 만든다. 감자나 토마토 등은 자스몬산이라는 것을 배출해서 적을 퇴치한다. 자스몬산(Jasmonic acid)은 식물이 자라는 데 필수적인 식물 생육 조절제인데, 이는 발아와 성장을 억제하는 동시에 노화를 촉진한다. 또한 어떤 식물은 독성물질을 함유해서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한다.

    이와는 반대로 곤충을 유인하는 물질을 내뿜어서 수분받이를 하거나 뿌리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로 적을 퇴치하기도 한다. 이렇듯 식물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수많은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식물의 종류나 서식 환경에 따라 갖가지 방어책이 동원되는 것이다.     


그러한 종류 중 일부만 소개하면 이러하다.     

가시 | 장미 등에서 접근하기 어렵게 해준다.

 | 쉽게 달라붙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건조기에 수분이 증발하지 못하게 막아준다. 

두꺼운 표피 |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이러한 것을 물리적 방어기능이라고 한다.

표피의 왁스층 | 선인장 등에서 수분 증발을 막아주고 건조할 때 수분 유지를 책임진다. 또한 자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주거나, 여름이나 겨울의 혹독한 외부환경에서 식물 내부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특히 선인장에서 이 기능이 특출하다.



식물을 위협하는 거대한 적들     


식물과 꽃은 겉보기에 정적인 것 같아도 실은 매순간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우선 가장 큰 적은 자연 그 자체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의 전쟁은 물론, 시도 때도 없이 공격해 대는 해충이나 아무 때나 불쑥불쑥 나타나는 크고 작은 동물을 비롯하여 인간과도 치열하게 다투어야 한다. 특히 모든 적들 중 가장 위험한 존재는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라는 최대의 적은 그 행위가 아주 교묘해서 들판이나 산에서 저들끼리 잘 자라는 식물을 온갖 방법으로 교접하고 유전자 조작까지 해서 식물이 보기에는 아주 못생기고 교활한 이상한 존재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기형의 꽃과 잎과 열매들은 인간들이 보기에만 좋을 뿐, 그들 스스로는 여간 고역이 아니다. 서커스의 동물처럼 관상용으로 키우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하는 것도 모자라 줄기 한가운데를 싹둑싹둑 잘라서 끈으로 우지끈 묶어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팔아버리기도 하고, 꽃들이 지쳐서 조금이라도 시들어질라 치면 곧바로 구역질나는 쓰레기통으로 처박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식물들은 인간이라는 최대의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떫은맛, 매운맛, 쓴맛 등 각종 고약한 맛을 배출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간들에게 기호품으로 여기게 되어 커피나 담배 등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상당수의 식물은 약용이라는 해괴한 굴레를 씌워 한약재 등으로 팔려나가게 된다. 그럼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자르고 말리고 찌고 삶고 찢기고 빻아져서 그들 식물의 최대 적, 즉 인간의 만수무강에 이용만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거나 불에 태워지지 않으면 냄새 나는 퇴비가 되어 자연계에서 퇴출, 즉 사라지게 되겠지. 하지만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어서 식물들은 온순히 받아들일 뿐이다. 이에 대해 가해자인 인간은 식물들을 과용, 남용, 오용해서 스스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자기 자신이 아니면 그 후손들이라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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